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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인물] “한옥마을에 제2의 국악방송을 세우고 싶어”
  • 작성자국악방송
  • 조회수2335
  • 작성일2021.11.01

 

 

유영대 국악방송 사장, “전주는 국악의 성지…인적 · 물적 인프라 갖춰”
창립 20주년 맞아 “세계 시장을 무대로 삼겠다” 비전 제시
오디션 프로 ‘크로스오버’ “아주 긍정적…새로운 시도 나오면서 진화할 것”

유영대(65·남원·사진) 국악방송 사장은 “전주 한옥마을에 제2의 국악방송을 세우고 싶다”고 했다.

한옥마을에 관광객들이 국악을 배우고 즐길 수 있는 국악방송의 새로운 센터를 세워 한옥마을의 랜드마크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전주는 국악의 성지이고, 물적·인적 인프라가 갖춰져 있기에 충분히 (성공)가능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올 9월 1일자로 국악방송 사장에 임명된 이후, 창립 20주년을 맞은 국악방송의 미래 비전을 가다듬느라 바쁜 와중임에도 전주를 특별히 언급했다. 단순 고향이기 때문이 아니라 국악 분야에서 전주가 갖고 있는 중요성 때문이었다.

본보와의 인터뷰 도중에 그에게는 전화가 쉴새없이 걸려왔다. 예산 확보를 위한 국회 차원의 대응, 프로그램 개편과 공연 기획 등에 대한 문의로, 그에 일일이 대응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좁은 의미의 국악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음악’이라는 큰 범주로 확장해 세계화의 물결에 대응하겠다”며 새로운 20년의 비전을 제시한 그를 서울 마포구 상암동 국악방송 본사 사장실에 만났다.

 

 

- 교수에서 방송국 사장으로 변신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적잖게 고민했죠. 그러나 조직을 관리해 본 경험이 있어 자신이 있었습니다. 특히 국악과는 오랜 인연이 있는터라 나름 계획이 있었습니다.”

 

- 본 전공은 국문학인데, 국악과의 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조부께서 고 임방울 명창을 집으로 초대해 후원할 정도로 판소리에 관심이 많았고, 제 자신도 어렸을 때 남원에서 창극을 많이 보고 자랐습니다. 그게 나의 토양입니다.

전주 우석대 재직 시절에 남원 국립민속국악원 유치를 위해 국악과 교수들과 함게 공연했고, 서울로 올라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도 맡았습니다. 특히 당시 ‘청’이와 ‘춘향’를 올렸는데, 국내 대표 방송프로그램 제작사인 박스 미디어에서 지금껏 본 창극중 최고라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그 덕분인지 MB정부 땐 유인촌 장관으로부터 다시 한번 감독직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습니다.”

 

- 국악방송TV 활성화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습니다. 향후 계획은.

“인력과 예산이 너무 부족합니다. 현재는 최악의 상황이죠. 그래서 국악방송 시청자들이 도중에 채널을 절대 돌리지 않고, 직원들이 중도에 퇴직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게 제 기본 목표입니다.

먼저, 방송은 11월 1일부터 프로그램을 개편하는 것을 시작으로 가능한 모든 것을 바꿔나갈 것입니다. TV의 완성도도 높일 것이고요. 오디션 프로는 이미 여러 방송국에서 시작한 터라 내년으로 연기했는데, 내년에 최고 퀄리티의 오디션을 선보일 것입니다.

방송 진행은 국악인만을 고집하지 말라며 열어놨습니다. 대중가수가 진행하는 국악방송을 밤 10시부터 2시간 생방송으로 할 예정입니다. 또 취침 전 시간에는 국악은 50%만 하고, 나머지는 탱고 등 다양한 장르를 방송하라고 했죠. 우리가 하는 도전을 지켜봐 주세요.”

 

- 최고의 오디션 프로를 만들 복안은 있는지.

“현장에선 실력은 최고이지만, 스승의 만류로 방송에 나오지 못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끌어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 여타 방송국에 비해 국악방송이 갖는 경쟁력은 무엇인지.

“물량 등의 면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갖고 있는 콘텐츠는 너무 좋습니다. 문제는 콘텐츠를 어떻게 포장하느냐인데, 잘만 해놓으면 충분히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상대는 방송국이 아닙니다. 세계화입니다. 그래서 슬로건·로고도 바꾸라 했습니다. 앞으로는 K-MUSIC으로 쓸 계획입니다. K팝처럼 K브랜드로 가는 것이죠.”

 

- ‘세계 시장을 무대로 삼겠다’고 했는데, 가능성은 어느정도 입니까.

“가능성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의 정통성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국악 밖에 없습니다. K팝이나 K컬쳐가 있으나, 자칫하면 다 무너져 버립니다. 그런데 국악이라는 베이스가 탄탄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 한류는 국악에 있죠. 외국인들은 우리의 민요나 판소리를 들으면 전율을 느낄 정도로 감동합니다.”

 

- 외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 정도가 아닌지.

“호기심은 10분 정도면 충족됩니다. 그런데 4시간을 앉아서 듣는다는 것은 호기심 차원을 넘어 에너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감흥된다는 것이죠. 파리에 가면 퓨전처럼 가는 아이들은 큰 인기를 얻지 못하지만, 안숙선 선생이 가서 완창을 하면 숨도 안 쉬고 다 지켜봅니다. 세계 시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 좋은 작품 못지 않게 외국인들과 소통하는 방법도 중요할 것 같은데.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시절에 주한미군을 초대해 공연한 적 있는데, 모두들 황홀해 했습니다. 공연 후 평가를 보내와서 월 1회 미8군에 가서 창극단 공연을 했습니다.

그 때 느낀 게 외국인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게 쉽다는 것이었죠. 그들이 훨씬 감수성이 예민하고, 우리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우리의 국악을 모릅니다.”

 

- 최근 방송국 오디션 프로에서 소리꾼들이 K-팝과 ‘크로스오버’(특정 장르에 다른 장르 요소를 합친 음악)한 곡들을 선보이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두가지 입장입니다. 정통국악 고수론자의 입장에 보면 냉소적이지만, 국악방송 사장 입장에서는 아주 바람직합니다. 자꾸 저렇게 돼야 합니다. 그런다고 판소리가 훼손되지 않죠. 오히려 원형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 위와 같은 형태가 나온 이유가 있습니까.

“2000년대 초반에 제가 시도했던 것인데, ‘(국악이) 어떻게든 박제화되지 않고 살아서 움직이게 해야 되지 않겠느냐’라는 생각이 표출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형태가 또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진화하는 것이죠.”

 

- 전주는 대사습놀이 등 판소리 중심지였는데, 최근엔 예전 같지 않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주 한옥마을에 제2의 국악방송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서울 본사 처럼 국악방송의 새로운 본부로 말이죠. 현재의 위치보다 좀 더 큰 극장을 인수해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공개 생방송하고, 관광객들이 모두 들어와서 배우고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할 생각입니다. 자치단체에서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준다면 훨씬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제2의 국악방송을 굳이 전주에 세우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전주는 국악의 성지같은 곳입니다. 특히 전주는 인적·물적으로 충분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습니다. 국악을 관람할 수 있는 관람객도 이미 훈련돼 있죠. 한옥마을에 들어서게 되면 한옥마을은 더욱 살아날 것입니다. 전주의 랜드마크가 한옥마을이라면, 한옥마을의 랜드마크는 국악방송이 될 것입니다.”

 

- 국악방송이 2001년 개국 때 서울 본사와 남원의 중계소로 시작했는데, 그 이유가 있습니까.

“남원이 민속 음악의 본 고향이기에 당연한 것이죠. 그 만큼 남원이 중요하다는 의미죠. 남원을 살려야 되는데, 안타깝습니다. 한 때 기회가 있었는데, 그 것을 살리지 못한 게 아쉽기도 합니다.”

 

- 그 기회라는 게 무엇이었는지.

“남원에 국립민속국악원을 유치할 때 기획했던 게 북한과의 교류였습니다. 북한은 민족 가극 춘향전이 있고, 우리는 창극 춘향전이 있기에 남북교류하자고 했죠. 그 때가 1993년으로, 당시 키를 쥐고 있었던 고 윤이상 선생을 만나러 베를린을 갔죠. 계획안을 들은 윤이상 선생은 이후 김일성을 만나 제안을 했고, 김 주석은 한다고 했죠. 그런데 그 해 김 주석이 사망하는 바람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그 때 그 계획이 성사됐으면 남원이 세계적으로 클 수 있었죠.”

 

 

유영대 사장은...

1956년 전북 남원 보절면 출생. 남원에서 중학교를 마친 후 상경, 서울 배문고-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 졸업 후 1985년 우석대 국문학과 교수로 부임해 10년간 전주에서 활동하다 1995년 고려대로 옮겼다. 올 8월 정년 퇴임 후 국악방송 사장에 임명됐다. 임기는 국립국악원장으로 옮긴 전임자의 잔여 임기인 내년 9월 1일까지다.

국문학자보다 판소리 전문가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과 국립중앙극장 창극단 예술감독, 판소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국립창극단 예술감독(2006~2012년) 시절, 총괄했던 공연 ‘청’을 비롯해 창극 ‘산불’·‘춘향’ 등의 작품은 지금까지 많은 국악인들에게 회자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그 같은 공로로 이데일리 문화대상 국악대상을 비롯해 다수의 국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사 논문을 ‘심청전 연구’로 썼던 그는 이후 국악과 연을 본격적으로 이어간 그는 전주MBC에서 10여년간 판소리 기행을 진행한데 이어 KBS FM-판소리 기행(3년간)과 국악방송 ‘유영대의 판소리 여행‘(12년간)을 진행했다. 국악방송은 시청자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고 박재윤 초대 국립민속국악원장을 “내 자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며 “나의 스승이시다”고 했다.

실용·응용학문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지난 2000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대학원에 문화콘텐츠 과정을 개설하기도 했다.

출처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http://www.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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