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서 풍물치는 모습입니다.
그냥 읽어 보세요.
우리동네 풍물이야기
지난해 말. 50여년간의 객지생활을 마치고 고향집으로 내려왔습니다. 이른바 귀향(歸鄕)입니다. 대처에 나가 있을 때 가끔 고향을 찾기는 했지만, 반세기 만에 돌아 온 고향에서의 삶은 모두가 낯설게 느껴집니다. 마을 곳곳에는 외지인들이 들어 와 또 다른 마을을 형성하였고, 저는 또 다른 외지인이 되었습니다. 새로 들어 온 사람(?)인지라 행동 하나 하나를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하루는 저녁식사를 일찍 끝내고 마을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꽹과리와 장구 소리가 들렸습니다. 풍장소리를 따라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옮겨졌습니다. 깜깜한 시골길을 후레쉬를 비추며 소리를 따라 가니 면사무소 행복센터 2층입니다. 저는 초면이라 기웃거리며 유리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 봤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장구, 꽹과리, 북을 치고 있습니다. 유리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들어갔습니다.
‘구경해도 되나요?’
‘구경하고 싶으시면 뒤에 앉아서 구경해도 됩니다. 구경만 하면 심심하니 북을 쳐 보세요’하며 북을 하나 내 줍니다.
‘저는 북 보다는 장구를 주세요’했더니 ‘초면에 별 희안한 사람 다 보겠네’ 하는 표정으로 장구 하나를 내 줍니다. 장구를 받아 들고 장구팀들의 맨 뒤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 저는 국악원 문화학교에서 사물놀이와 거문고 수업을 이수한 경력이 있습니다)
막상 장구를 연주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실력(?)이 나옵니다. 저를 안내하시던 분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어디서 장구를 많이 쳐 보셨나요?’
‘아닙니다. 그냥 초보입니다’
‘초보 솜씨가 아닌디?’ 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날립니다.
잠시 쉬는 시간에 ‘어디 사느냐? 몇 살이냐? 언제 이사 왔느냐? 혼자 사느냐?’등등 이른바 신상털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지금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대해 질문을 하였습니다.
면사무소 행복센터에서는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실시하는데 ‘사물놀이반은 매주 토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진행하며, 전문강사는 격주로 참석한다’는 내용입니다. 오늘은 강사님 수업은 없고 회원들끼리 자율연습시간이라고 합니다. 고향에 내려 오셨으니 시간이 되시면 참석하라고 하십니다.
한 주(週)가 지나고 면사무소 행복센터 사물놀이반 수업에 다시 나갔습니다. 전문강사님이 오셨습니다. 별달걸이, 이채 등 정규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강사님은 ‘이곳 수업은 다른 지역보다 가락의 습득 속도가 빠르고 수업 태도도 더 진지하다’고 하십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우리 마을에 OO할아버지가 계셨는데...그 할아버지가 조직한 우리마을 걸립패가 한양 경복궁 낙성식(落成式)에 가서 씨뿌리고 김매고 가을걷이하는 모습을 풍장놀이로 만들어 2등상을 탔단다’ 그리고 2등상을 탄 기념으로 동네에서 노는데...‘발이 땅에 붙지 않을 정도로 신나게 노는 모습을 봤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왔습니다.
지금 보니 아마도 대원군이 경복궁을 지을 때 전국의 소리꾼들을 모아 개최한 이른바 대한제국판 ‘전국노래자랑대회’에서 2등을 하신 모양입니다. 마을 곳간에 소고나 울긋불긋 물들인 고깔을 보았던 기억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운동회에서 각 마을의 풍장팀이 나와서 한 마을(里)의 풍장놀이가 끝나면 다른 마을 풍장놀이가 시작되는...요즘말로 하면 배틀(Battle)을 보았던 기억이 생각났습니다.
풍장소리는 각 고을(里)마다 가락이나 장단의 차이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즘은 다양한 모습의 장단은 사라지고, 모두 국악과를 나온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표준 사물놀이’가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밤 9시가 조금 넘어 수업은 끝났습니다.
‘농사일이 바빠서 4월부터는 8시에 모이기로 합니다 잉! 오늘도 힘든 농사일을 마치시고 여기까지 오시는데 고생하셨습니다. 밤길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하는 안내 말씀으로 사물놀이 수업은 끝났습니다.
수업을 마친 주민들이 댁으로 돌아가시는 모습은 트럭, 사발이, 오토바이, 승합차, 후레쉬를 든 뚜벅이 등등 다양합니다.
‘농사일로 피곤하지만 집에서 텔레비전 보고 잠 자는 것 보다 여기 나와서 노는게 얼매나 재미지고 오진지 몰라. 장구장단을 세다 보면 치매도 안걸리고...성님 안그려?’
어두운 밤길을 헤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시는 주민들의 어깨에는 흥과 즐거움이 가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