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9일 월요일 ‘KBS 가요무대’, 1974년에 대중가수 송창식이 발표한 ‘밤눈’을 젊은 판소리꾼 ‘박애리’가 첫 출연자로 어깨 들어 내보이는 무대 복을 입고 나와 불렀다. 노래를 단순 평하면 특별한 느낌 없이 그저 그런 노래이었다.
KBS 가요무대는 1985년에 시작하여 흘러간 노래와 트로트를 부르며, 향수와 추억을 되새기는 중장년층 대상 30년 장수 음악 프로그램이다. ‘박애리’를 잘 모르는 청취자들은 무명 대중가수가 얼굴 한번 내밀었다 생각 했을 것이다.
국악을 사랑하는 범부(凡夫)의 시각으로는 안타깝지만 도(度)를 넘어 버렸다. 예능인 ‘박애리’ 개인의 이름은 조금 더 알려질 수 있겠지만, 국악인 박애리는 희미해져 버렸고 오늘의 박애리를 만들어 준 ‘국악’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다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아닌, 예능인 박애리로 기억 되는 것이 서글프다. 또 한 사람의 국악 인재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국악인이 대중들에게 자신의 재주를 보여주기 위해 가끔 하는 외도는 대 환영한다, 국악이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청량제로서 ‘국악 스타’ 이미지 확립에 도움 되며, 필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하지만 늘 ‘국악’이 앞에 서야 한다. 우리 전통 악(樂)가(歌)무(舞)가 점점 박물관으로 들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이것이 국악인의 자세이며 사명이다, 생각한다.
박애리는 몇 년 전 부터 국악인으로 남상일과 함께 TV를 통해 오락프로에 가끔씩 출연하여 ‘국악’을 알리는데 일조를 해왔다. 국악인으로 대중적 스타가 거의 없는 현실에서 두 젊은 국악인의 활약은 가뭄에 단비 같은 역할이라 생각 하며 마음에서 우러나는 축원과 응원을 했다.
해가 바뀌어 가면서 박애리의 출연은 TV 장르를 구별 하지 않고 점점 많아졌다, 특히 매주 토요일, 여러 가수들이 다양한 장르의 대중가요를 재해석해 부르는 프로그램 ‘KBS2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단골 출연자로 나와 국악이 아닌 대중가요를 열창 한다. 이와 비례하여 국악인 박애 보다는 예능인 박애리로 점점 변하는 모습에 가슴 한 구석이 허전 하였다.
나의 ‘국악’ 사랑에 동조 하지 않고, 우리 집 아침 식사 시간에 흐르는 국악방송 ‘창호에드린 햇살’을 가끔 꺼버리는 아내가, 오늘 밤 ‘KBS 가요무대’에서 박애리를 함께 보면서 < 이건 아니다, 도를 넘었다. > 한마디 한다. 무척 가슴 아팠다, 그리고 무딘 글을 쓴다.
국악인 박애리, 국악방송 ‘창호에드린 햇살’ 진행자일 때 마음에 담았다. ‘한국문화재재단’ 무대에 오를 때 마다 기쁨이 가득 찼다. 여러 행사장에서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무대에 오르면 ‘국악’이 날개 단것 같았다. 2010년 ‘제37회 한국방송대상 국악인상’을 받을 때 감동이 아직 남아 있다. ‘KBS 국악 한마당’ 봄 향기 이었다. 국립극장 창극단 ‘홍보가, 심청전, 배비장전, 산불, 청,’ 등 주연으로 늘 행복을 전해 주었다,
나의 아집이며, 집착 일 수도 있겠지만 생각 보다 훨씬 멀리 가버린 ‘박애리’를 바라보며 가슴 아프며 ‘국악’이 점점 더 초라해 지는 것 같아 무지 서럽고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