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청취자 참여

게시판 운영 원칙!

국악방송 자유게시판은 청취자 여러분의 자유로운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건전한 의견 공유와 원활한 게시판 운영을 위하여 게시 글 작성 시 아래 이용 원칙을 준수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래 내용에 해당되는 게시물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 될수 있으며
해당 게시물의 게시자는 글쓰기 권한을 제한 받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1 유언비어 및 비방성 게시물
    • 유언비어, 인신공격 및 비방성 글(실명이 거론된 비방성 글로 인해 상대방이 불쾌감을 느끼는 글)
    • 욕설 및 욕을 변형한 단어가 포함된 글
    • 분란이나 분쟁을 유도하는 글
    • 타인 또는 타 단체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2 음란물의 게재 등 공공질서와 미풍양속을 해치는 게시물
    • 음란물 게시 또는 음란 사이트를 링크한 글
    • 폭력행위를 미화하거나, 퇴폐적인 행위를 미화하여 혐오감을 주는 글
  • 3 광고 홍보성, 상업성 게시물
    • 특정업체 상품소개 및 홍보 글
    • 돈벌이 광고 게시 및 돈벌이 사이트 링크, 경품 및 추천가입제 광고 글
    • 특정 단체(업체)의 이해 관계와 관련된 글
  • 4 스팸성 게시물
    • 도배 및 게시판에 중복해서 올리는 글
    • 말이 되지 않는 단어나 이미지 조합 및 장난성 글
    • 행운의 편지
  • 5 게시판 주제에 맞지 않는 게시물
    • 해당 게시판의 성격에 부합되지 않는 글
  • 6 개인정보 유출 게시물
    • 공개된 게시판에 휴대전화번호 및 주소, 연락처 등의 개인정보가 노출된 글
    • 타인의 ID를 도용하여 작성된 글
  • 7 관계법령에 위반된다고 판단되는 게시물
    • 저작권자에 의해 저작권 보호요청이 된 글
    • 국악방송 퍼가기를 허용한 콘텐츠 이외의 자료(동영상,사진,음원,링크 등)가 포함된 게시 글
    • 각종 법에 저촉되거나 범죄행위에 결부된다고 인정되는 글
  • 공개된 게시판에 휴대전화번호 및 주소 등의 개인정보를 노출하지 말아 주십시오.
  • 저작권자에 의해 저작권 보호 요청이 된 글을 포함하여 각종 법에 저촉되거나
    범죄행위에 결부된다고 인정되는 게시물은 관계법령에 의하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쾌적한 게시판의 이용을 위하여 여러분의 협조를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진행 : 권미희,강길원 / 연출 : 서수정,
조연출 : 정승아 / 작가 : 진경은,이은정 · 기술: 심재선
토~일 | 14:00~16:00

고 최종민 교수님, 전에 올립니다.
  • 작성자무상초들녁
  • 조회수3558
  • 작성일2015.05.14

사람에게는 자기 땅, 자기 말, 모국어가 있듯이,  늘 < 우리 음악의 모국어 ‘국악’을 잊지 말자 >를 전해 주시던, 국악계의 큰 별 < 최종민 교수님 >이 2015년 5월 14일 오늘 새벽 별세 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제는 임의 정감 넘치며 포근한 목소리로 ‘국악방송’에서 전해 주시던 ‘국악 이야기’가 그립고,  따뜻하신 성품에서 우러나시던 ‘국악사랑’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복받치는 슬픔을 주체할 길이 없습니다.


임의 생전 모습을 다시 한 번 뵙고 싶어, 임의 글 <국악의 종류 >를 원문 내용 그대로 옮겨와 국악방송 애청 벗님들과 함께하며, 임의 한 평생 걸어오신 ‘국악보국(國樂保國)’을 오래오래 가슴에 담고자 합니다.


<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揭諦揭諦波羅揭諦波羅僧揭諦菩提娑婆訶) >
부처님 전에 엎드려 삼배 합장 올립니다.


국악의 종류                                  -최종민-


1, 민 요
2, 잡가(雜歌)
3, 농 악
4, 판소리
5, 산 조
6, 가 곡
7, 시 조
8, 영산회상
9, 수제천(壽齊天)
10, 여민락(與民樂)
11, 종교음악
12, 무속음악
13, 불교음악
14, 유교음악


국악의 종류


지금부터 감상하고자 하는 여러 종류의 국악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 온 서양 음악의 여러 종류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것이 하나의 음악으로서 음을 통한 인간 정신의 표현이라는 점에서는 공통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재료(음)나 방법은 전혀 다르다는 뜻이다. 이것은 마치 국어나 영어가 다 같은 언어이지만 그 표현 양식은 단어에서부터 문법이나 형식 등에 이르기까지 다른 점이 많은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국악에서 쓰는 음은 국악기를 통해서 나오는 음, 즉 가야금이나 대금의 소리 같은 것이다. 즉 그것은 판소리나 시조를 노래할 때 내는 발성과 같은 것인데 그것이 서양 음악에서 쓰는 악기들의 소리나 서양 성악의 발성에서 나오는 소리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또 그러한 음을 연결하여 만드는 가락(선율)에 있어서도 그 만드는 방법이 다르다. 바꾸어 말하면 음계가 다르고 박자(장단)법이 다르다. 음계는 흔히 우조니 계면조니 평조니 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양악의 장조니 단조니 하는 것과 다르고 박자는 진양조니 중모리니 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서양의 3박자나 4박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소리를 결합시키는 방식이 다르고 한 바탕의 소리를 담는 그 큰 형식이 또한 다르다. 우리의 합주에서 소리를 결합하는 방식은 서양음악의 화성이 중심되는 소리의 결합 방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여 서양음악의 단선율(unison)도 아니다.

 

우리의 합주는 가 악기의 특징적인 음색이나 시김새는 최대한 살리면서 골격이 되는 음은 같은 식으로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합주를 감상할 때는 각 악기들의 음색을 먼저 알아야 하고 그 악기들이 모두 같은 골격음을 연주하면서 각기 독특한 장식음과 시김새를 구사하여 그 악기의 개성 있는 선율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성악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가곡이든 판소리든 그 발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넘어갈 때 어떻게 시김새를 구사하여 효과적으로 발음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또 국악은 한 바탕 한다고 하는 그 음악 형식이 서양 음악의 그것과 다르다. 판소리는 서너 시간 이상을 해야 한 바탕이 되고 산조 음악만 해도 40분 이상을 해야 한 바탕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한 바탕이란 서양 음악의 한 스테이지처럼 한번 시작하면 그것이 끝날 때까지인데 그 단위가 그토록 길다는 것이다.
 
이렇게 끊어지지 않고 오래 계속되는 형식이기 때문에 그 음악이 죄였다 풀렸다, 하는 식으로 긴장을 고조시켜 절정에 이르면 다시 풀어 주고 또 긴장을 고조시켜 주고 풀어 주고 하는 식으로 계속된다.
 
따라서 국악과 양악과의 다른 점은 무척 많은데 그 다른 점은 서로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오히려 피차의 존재 가치가 더 높은지도 모른다. 그동안 서양 음악을 통하여 서양 음악의 아름다움을 체험한 많은 사람들이 새로 국악을 통하여 또 다른 국악의 아름다움을 체득한다면 훨씬 풍부한 정서의 소유자가 될 것이고 훨씬 더 많은 아름다움의 경험자가 될 것이다. 더구나 우리들은 한국사람이기에 우리 조상들이 남긴 그 독특한 우리 음악을 내 것으로 소화한다면 보다 우리다운 멋과 풍요한 아름다움을 누리게 될 것이다.


1. 민요


우리 민족은 예부터 노래부르기를 좋아하고 또 노래를 잘 부르는 민족이다. 고대 중국인들이 한국 민족에 대하여 기록해 놓은 역사를 보더라도 유난히, 노래부르고 춤추며 노는 풍속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 그들의 눈에 한국 민족들의 노래부르고 춤추며 노는 모습이 퍽 인상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근래에까지도 우리 민족은 일을 하거나 어떤 행사를 한 때에 함께 노래부르는 것이 풍속처럼 되어 왔다. 논에서 모를 심거나 김을 맬 때에도 노래를 부르면서 일하고 어느 집에 초상이 나서 상여를 메고 갈 때에도 반드시 선소리를 메기고 뒷소리를 받으면서 운구를 한다. 집터를 다질 때에도 노래하면서 다지고 재를 저어 나갈 때에도 노래하면서 저어 나간다. 그물을 걷을 때에도 노래하고 그물 속에 든 고기를 잡아올릴 때에도 노래를 부른다. 길쌈할 때에도 노래하고 베 짤 때에도 노래를 부른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생활이란 것이 온통 노래와 함께 영위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생활의 갈피갈피에 들어 있는 노래, 그것이 곧 우리의 민요이다. 그래서 민요는 생활 속에서 저절로 배워지는 노래이고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노래이다. 특별히 배우는 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가사나 곡조가 꼭 고정되어 있지도 않다. 작사자도 모르고 작곡자도 모르는 채 그냥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음악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호흡을 맞추어 일할 때에는 한 사람이 메기고 여러 사람이 받아 주며 부르는, 메기고 받는 식으로 하기도 하고 혼자 일하거나 몇 사람이서 따로따로 일할 때에는 그냥 입 속으로 흥얼거리는 듯이 혼자 부르기도 한다. 우리 나라의 노동요(일할 때 부르는 민요)는 대게 메기고 받는 식으로 되어 있고 받는 소리의 부분은 같은 곡조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노동요의 종류는 일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는데 논농사와 관계있는 농요가 제일 많고 그 다음이 고기잡이와 관계있는 어요이다. 부녀자들의 길쌈노래도 꽤 많고 어떤 의식에서 부르는 민요나 그냥 놀 때에 부르는 민요도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민요는 그 기능으로 불 때에 퍽 다양하게 발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민요들은 지방에 따라 독특한 토리(idiom)를 가지고 발달했기 때문에 음악적으로는 민요권이라는 것이 형성되어 있다. 가령 같은 김매기 소리라도 경상도의 김매기 소리와 전라도의 김매기 소리는 다르다. 또 평안도의 김매기 소리나 강원도의 그것과도 다르다. 이것은 마치 각 지방이 그 지방 고유의 사투리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민요는 몇 개의 민요권으로 나뉘어 분류되기도 하는데 평안도 · 황해도 지방은 서도 민요권에 해당되고 경기도 · 강원도 일부 · 충청도 일부는 경기 민요권에 해당되며 전라도와 충청도 일부는 남도 민요권에 해당된다. 또 함경도와 강원 · 경상도를 잇는 동쪽 지방은 따로 동부 민요권으로 분류 되고 제주도는 그냥 제주 민요권으로 분류된다. 각지방의 민요들은 겉보기로 느끼는 창법에는 차이가 있거 그 속을 따져 보면 음계나 시김새가 서로 다르게 되어 있다. 그래서 민요를 전문적으로 부르는 국악인들도 대개는 한 지방의 민요만 전공한다. 서도명창, 경기명창, 남도명창, 하는 것이 다 그래서 생긴 이름이다.


민요는 본래 누구나 부를 수 있는 것이고 특히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명창이란 것이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민요를 전문으로 부르는 명창들이 나와 민요를 공연하게 되고 또 디스크로 만들어 민요를 보급하게 되면서 자연, 어떤 민요는 전국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이른바 창 민요니 통속 민요니 하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한편 본래 생활의 노래 형태로, 어떤 지방에서 소박하게 전승되는 민요는 향토 민요나 토속 민요라 부른다.

예를 들어 아리랑이니 도라지니 수심가니 육자배기니 하는 것 등은 다 통속 민요에 속하고 각 지방의 김매기 소리나 상여소리 같은 것은 토속 민요에 속한다. 우리가 많이 들을 수 있었던 민요는 통속 민요여서 보다 세련된 맛이 있고 시골이나 나이 많은 노인들로부터 들을 수 있는 것은 대개 토속 민요여서 소박한 맛이 있다. 어떻게 보면 통속 민요가 더 노래다운 맛이 있고 각 지방의 음악적 특징도 잘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민요 감상에서도 주로 통속민요를 다루고 약간의 토속 민요를 곁들이고자 한다. 감상하는 순서는 경기민요, 동부민요, 서도민요, 남도민요 제주도 민요의 순으로 하였다.


▶ 경기민요
「창부타령」「노래가락」「방아타령」「잦은 방아타령」「양산도」「경복궁타령」「풍년가」「한강수타령」등은 어느 것이나 창 민요(통속 민요)의 대표적인 것들로 널리 보급되어 있는 노래들이다.

경기민요는 맑고 자연스러운 발성으로 노래하고 또 각 음의 음정이 퍽 분명한 편이다. 그래서 서양 음악으로 훈현된 사람일지라도 그 음정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다만 복잡하고 미묘한 시김새에 유의하면 된다.


시김새란 음과 음 사이를 연결할 때에 장식음 비슷하게 목으로 꾸미며 넘어가는 것을 말하는데 민요의 지방적 특징을 알기 위해서나 민요의 맛을 느끼기 위해서 꼭 알아 두어야 할 요소이다. 시김새는 대개 가사의 발음을 보다 확실하게 하고 멜로디가 원활하게 흘러가도록 하는 기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래하는 사람마다 스스로 터득한 방법대로 개성 있는 시김새를 구사한다.

 

그러므로 시김새는 지방적인 특징도 강하지만 노래 부르는 사람 각자의 개인차도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경기민요를 전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민요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휘모리 잡가나 긴 잡가, 산타령 등을 함께 공부한다. 또 그런 것 이외에 동부민요에 해당되는「신고산타령」「정선아리랑」「밀양아리랑」등도 함께 공부한다. 그래서 레퍼터리도 다양하고 기교도 대단하다.


▶ 동부민요
동부민요란 태백산맥 이동의 동부 지방 민요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별로 널리 쓰이는 용어는 아니다. 함경도 · 강원도 · 경상도의 동부지방에서 불리는 민요들이 서로 비슷한 음악적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민요권으로 묶어 본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동부 지방 민요는 지금 통속 민요로 보급된 곡수도 많지 않고 이것만 전문으로 부르는 명창도 없다. 그래서 경기명창들이 동부민요를 함께 부른다. 다만 경상도 민요로 알려진「성주풀이」만은 남도 명창들이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동부민요로는, 통속 민요에 해당되는 함경도의「신고산타령」「궁초댕기」, 강원도의「강원도 아리랑」「한오백년」, 경상도의「뱃노래」「성주풀이」「밀양아리랑」과 토속 민요인 함경도「애원성」, 강릉의「영산흥」, 경상도의「쾌지나칭칭」등이 있다.

동부민요의 음계 구조는 메나리토리라고 하여 경상도의 김매기 소리와 같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동부민요의 시김새는 경기민요의 시김새를 그대로 적용하여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경기민요를 전문으로 부르는 명창들이 동부민요를 함께 부르기 때문이다.

 

▶ 서도민요
서도민요는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불리는 민요들을 가리키는데 널리 알려진 통속 민요로는 「수심가」「엮음수심가」「긴아리」「잦은아리」「산염불」「잦은염불」「긴난봉가」「자진난봉가」「사설난봉가」「병신나봉가」등이 있다. 이것은 경기민요와는 다르게 입 안에서 목을 막았다 떼었다 하면서 떠는 창법을 쓰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대개 악보상으로 떠는 음을 표시한 것이 그러한 부분인데 그 떠는 음의 위치나 떠는 방법이, 판소리나 전라도 민요의 경우와는 다르다.

 

판소리나 전라도 민요는 세음이 골격을 일는 선율에서 아래 쪽음을 굴곡이 심하게 계속 떨어주는 식이지만 서도민요는 대개 중간의 음을 막았다 떼었다 하면서 잔잔하게 떨어주는 식이다. 서도민요는 매우 구성진 맛이 있고, 장단도 일정한 틀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매우 융통성이 있다. 특히「수심가」의 장단은 일정한 장단형으로는 칠 수 없을 정도로 들쑥날쑥이 심하다.


서도민요의 시김새는 평안도 사투리가 바탕이 되어 우러나오는 것으로 매우 구수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갈수록 남한에서는 평안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의 숫자도 계속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 남도민요
남도민요는 전라도를 중심으로 충청도 일부와 경상남도 서남부 일대의 민요를 가리킨다. 민요의 토리가 판소리나 산조 음악의 기본과 같은 것이어서 민속 음악의 바탕이 되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세음을 골격으로 하는 선율일 경우 미 · 라 · 시가 중심이 되는데 ‘미’는 심하게 떨어 주고 ‘라’는 그냥 뻗어내고 ‘시’는 도에서 퇴성하거나 꺽어 내게 된다.

남도민요로는 토속 민요에 들노래(논농사 과정의 모심기, 김매기 노래), 상여소리, 뱃노래 등이 많고 통속 민요로는 육자배기, 농부가, 새타령, 흥타령, 남원산성, 진도아리랑 등 매우 세련된 것들이 많다.


▶ 제주도 민요
제주도는 두 개의 군으로 되어 있는 조그마한 도지만 민요 유산에 있어서는 어느 도 못지않게 때묻지 않은 토속 민요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 밭농사와 바닷일이 주된 생산 방식이었기 때문에 그런 일과 관련된 민요가 많이 발달되었다. 말을 몰아넣어 발 밟을 때에 하는 노래며 말로 연자방아를 돌리며 하는 노래는 제주도 지방만의 독특한 제주도 사투리로 되어 있어 육지의 자장가와는 그 맛이 다르다. 여자들의 활동이 활발한 제주도는 밭일 노래나 바다일의 노래분만 아니라 심지어 상여소리까지도 여자들이 참여한다. 특히 제주도 여자들이 물 길 때 사용하는 허벅을 악기처럼 부르는 민요는 매우 인상 적이다.
그 허벅은, 입구 쪽을 짚신으로 두드리면 장고의 북편처럼 붕붕하는 소리가 나고 질그릇으로 된 몸통을 두드리면 장고의 채편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래서 제주도 여자들은 허벅을 민속 악기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2. 잡가(雜歌)

잡가는 민속적인 예술 노래로서 조선조 말엽 19세기 소리꾼들이 발달시켰다. 민요보다는 규모도 크고 사설과 곡조가 일정하며 창법에 다양한 기교를 사용한다.

잡가라는 명칭 차체는, 가곡(歌曲)이나 가사(歌詞) 등의 정가(正歌)에 대칭되는 노래라는 의미가 있다. 정가는 유교의 덕목에 부합되는 점잖은 노래라는 뜻이 있는데 비하여 잡가는 그러한 유교의 덕목보다는 서민들의 노래하는 재미를 보다 부각시켜 현실에 대한 구체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을 한다든지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을 거침없이 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잡가를 발달시킨 소리꾼들은 서울 교외에서 채소장사를 하던 사람들이라든지 놋갓장이 노릇을 하던 사람 등 비교적 평범한 잡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 무렵에 모여서 노래를 배우든지 또는 여름철에 돈을 벌고 겨울철에 집중적으로 노래를 배우든지 하여 서울지방의 잡가를 발달, 보급시켰다고 한다. 19세기 추 · 조 · 박으로 일컬어지는 추 교신(秋敎信), 조 기준(曺基俊), 박 춘경(朴春景) 등이 그러한 사람들이었고 그 뒤를 이은 장 계춘(張桂春), 최 경식(崔景埴), 박 춘재(朴春載), 같은 사람들도 다 평범한 서민들이었다.


현재 경기잡가의 명창들은 대개 최 경식(崔景埴)의 제자들로서, 정 득만, 이 창배, 안 비취 등이 이에 해당된다.

잡가가 선한 지방은 서울 지방이었고 그래서 「12잡가」「산타령」「휘모리잡가」가 모두 서울을 중심으로 발달한 노래들이다.「12잡가」는 앉아서 부른다하여 ‘경기좌창(坐唱)’이라고도 하고 또 노래의 길이가 길다는 의미로 「긴잡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서도지방에도 비슷한 형태의 잡가가 있어서 이는 「서도잡가」라고 한다. 「12잡가」는「유산가」「적벽가」「제비가」「선유가」「집장가」「소춘향가」「형장가」「십장가」「출인가」「평양가」「달거리」「방물가」등인데 대개 6박도드리 장단으로 되어 있고 「집장가」만이 세마치 장단으로 되어 있다. 현재 경기잡가는 12잡가 외에도 「금강산타령」과「장기타령」이 많이 불리고 「풍등가」나 「장대장타령」등이 전해지고 있다.

 

서도잡가로는 「공명가」「사설공명가」「초한가」「제전」「영변가」등이 많이 불리고「관동팔경」「적벽부」「관산융마」「추풍감별곡」등이 전해 온다.


한편 앉아서 부르는 좌창에 비하여 서서 부르는 ‘입창’이 있다. 입창은 순 우리말로 하면 선소리라는 뜻으로 서울 지방의 잡가 중「산타령」이 바로 선 소리로 불려지고 있다. 흔히 선소리 산타령이라고 붙여서 부르는 이 노래는 혼자서 부르는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함께 소고를 들고 모가비가 장고를 치며 이끌 때 그에 맞추어 발림을 하며 노래부르는 형식이다. 대개 처음은 한 사람이 메기고 나머지 사람들이 그 뒤를 한 목소리로 받아 나가는데 민요의 후렴처럼 짧은 것이 아니라 아주 긴 선율을 함께 받아 부른다.

 

산타령이란 노래 제목은, 그 가사의 내용에서 나온 말이다. 산타령의 구성은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자진산타령 식으로 되어 있는데 앞산타령은 서울을 기준하여 앞쪽에 있는 산들을 가사에서 다루고, 뒷산타령은 역시 서울을 기준해서 뒤쪽에 있는 산들을 노래한다. 그리고 자진산타령은 노래의 속도를 조금 빨리하면서 관동팔경의 경치들을 사설로 부른다. 결국 산타령은 산을 주제로 한 노래이기 때문에 그러한 명칭이 붙은 것이다. 선소리 산타령은 서도지방에도 파급되어 서도산타령이 되었고 남도지방에 가서는 화초사거리 같은 노래가 되었다. 그리하여 요즘은 서도입창하면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경발림(경기자진타령과 같은 것)을 들고 남도입창하면 보렴과 화초사거리를 든다.


또한 서울 지방의 잡가 중에서 아주 익살스럽고 해학적인 노래가 휘모리 잡가이다. 휘모리 잡가는 대개 긴잡가를 한참 하고 나서 마지막 판에 흥에겨운 소리꾼이 함께 부르던 노래라고 한다. 가사의 표현이 “얼른, 냉큼, 수이, 빨리”식으로 반복이나 과장이 많고 가사의 내용 또한 하류층들의 생활을 매우 재미있게 그리고 있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노래부르는 방법도 어떤 음악에 얽매이는 법이 없고 우스운 내용을 재미있게 표현하여 주섬주섬 엮어 가듯 부른다. 휘모리 잡가 중 많이 불리는 것은 「6.7월 흐린날」「바위타령」「곰보타령」「기생타령」「병정타령」「맹꽁이타령」「비단타령」「만학천봉」등이다.


3. 농악

농악은 농촌을 배경으로 농민들이 주도하는 음악이라는 뜻이 있다. 그러나 지방에 따라서는 풍물놀이니 굿친다느니 풍장굿이라느니 하고 부르는 곳도 많다. 농악은 꽹과리, 징, 장고, 북을 중심으로 음악을 만들어 가고 소고나 버꾸, 무동, 잡색들로서 놀이를 벌인다.


농악을 치는 경우는 의식용으로 마을의 당굿이나 정초 지신밟기에 치기도하고, 두레용으로 일터에 나갈 때나 들어올 때 김매면서 치기도 하며, 걸립이라 하여 각종 공공 기금을 모으기 위하여 가가호호 돌아다니며 치기도 하고 공연용으로 많은 인원이 판굿을 치기도 한다. 이 중에 당굿으로 치는 경우는 호남지방에 많이 남아 있고 지신밟기 농악은 영남지방에 일부 남아 있다. 걸립 농악이나 두레용 농악은 좀처럼 구경하기 힘들고 판굿 형태의 농악만이 각 지방에 활발히 전승되고 있다.


판굿이 성하게 된 이유는 각종 농악 경연 대회가 판굿 중심으로 경연을 벌이기 때문인데 요즘 농악 공연이란 대개 이 판굿 공연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판굿의 편성은 40여 명 정도의 인원으로서 크게, 악기를 연주하는 역할과 각종놀이를 연출하는 역할로 나눌 수 있는데 악기의 종류는 꽹과리 · 징 · 장고 · 북 · 날나리 등이 공통으로 쓰이지만 어느 악기를 몇 개씩 배치하느냐 하는 것은 농악대마다 다르고 각종 놀이의 배역이나 놀음 방식도 역시 농악대마다 특색 있게 하기 때문에 일정치 않다.


그래서 농악도 민요처럼 각 지방마다 그 특징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농악 중에서「호남좌도농악(임실, 화순)」「호남우도농악(이리, 영광)」그리고 경상북도의「청도차산농악」「대구고산농악」「김천빗내농악」, 경상남도의「부산아미산농악」「진주농악」「삼천포농악」, 충청도의「부여추양농악」「홍성형산농악」,경기도의「평택농악」「안성농악」, 강원도의「강릉농악」「평창농악」등은 그동안 전국 민속 예술 경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얻었던 유명한 농악들이다.

 

본래 농악은 민요처럼 누구나 다 참여하여 함께 즐기던 것이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져서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 함께 연습하고 또 어떤 경연 대회에 나가곤 한다. 충청북도에서는 매년 군별로 농악 대회를 하고 있고 강원도 강릉에서는 동별 농악 경연 대회를 매년 단오에 거행하고 있다. 전라남도에서는 ‘남도문화제’에 농악 부문 경연이 있고 경상남도에서는 ‘밀양 아랑제‘ 같은 행사에 농악 경연 부문이 있다. 그리하여 한동안 뜸하던 농악이 새로 붐을 일으키며 각 지역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또 각 지방의 농업 고등학교가 농악을 유성하고 있어서 좋은 성과를 거주고 있다. 특히 광주 농고나 전주 농고, 금산 농고 등 호남 농악 계통과 김천 농고 · 진주 농고 등의 경상도 농악은 수준도 높고 널리 알려진 농악이다.

 

▶ 사물놀이
요즘 사물놀이라는 농악 계통의 연주 단체가 생겨서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
사물놀이란 농악에서 쓰는 징 · 꽹과리 · 장고 · 북을 가지고 무대에 앉아서 연주 형식으로 농악가락을 짜서 연주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농악의 안진반 같기도 하지만 음악 내용을 새로 짜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음악으로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사물놀이 연주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가락을 개발하고 기존의 무악(巫樂) 장단 등도 배우며 레퍼터리 확장을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보다 다양한 사물놀이 음악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사물놀이는 앉아서 연주하는 것으로 비나리, 영남 농악, 호남 농악, 경기 농악 등을 하지만 서서 벌이는 판굿도 짜임새있게 할 수 있어서 다양한 레퍼터리를 가지고 있다. 결국 사물놀이는 농악에서 출발했지만 새로운 타악 합주로 발전한 연주용 농악이라고 할 수 있다.


4. 판소리

판소리는 우리의 힘으로 발달시킨 가장 경제적이고 가장 효과적인 극음악(劇音樂)이다. 한 사람의 명창이 한 사람의 고수와 함께 「춘향가」나「심청가」같은 길고 복잡한 얘기를 소리로써 가장 감동적으로 표현해 가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종합적이고 다양한 표현기술 때문에 판소리를 연극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이야기 줄거리의 흐름 때문에 판소리를 훌륭한 문학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판소리는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타당한 것 같다. 왜냐하면 우선 판소리를 부르는 사람을 명창 이라고 하고 공연 형태가 독창이라는 음악 공연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노래란 가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음악 공연은 그 공연 내용으로 청중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즉 판소리는 ‘이야기’라고 하는 문학적이 것과 ‘노래’라고 하는 음악적인 것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공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이야기+노래’의 공연물이 서양에서는 오페라라는 형식으로 발달한 데 반하여 한국은 판소리라는 형태로 발달한 것이다. 오페라가 무대장치를 하고 배역을 정하여 많은 인원으로 하는 것이 데 비하여 판소리는 한 사람이 모든 역할을 감당한다는 것이 서로 다르다. 얼핏 생각하면 극중 장면을 무대에 꾸미고 배역도 실제 인물로 정하여 연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 같지만 예술이란 감상자의 상상력을 보다 더 풍부하게 자극시킬수록 좋은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냥 병풍을 둘러치고 노래 내용으로 춘향의 모습을 그리고 음악 자체로서 인당수에 빠지는 심청을 그리는 식의 판소리 방법이 훨씬 더 효과적인 공연 형태이다.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렛타는 오페라에서 그 역을 맡은 사람의 용모 정도로밖에 안 보이지만 판소리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 속에 그려지는 춘향의 상은 훨씬 더 미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긴 요즈음 판소리를 해체해서 서양 오페라 식으로 공연하는 창극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연극적인 효과를 노린 형태이고 음악적인 면에서는 역시 판소리라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판소리는 긴 이야기를 혼자서 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말처럼 장단 없이 상황을 설명하는 아니리도 나오고 못진 곡조를 장단에 맞추어 노래 부르는 소리(唱)도 있다. 또 어떤 때는 그 극적인 내용을 보다 더 잘 표현하기 위하여 앉았다 일어섰다 하기도 하고 손수건을 눈에 갖다대고 우는 시늉을 하는 등의 발림을 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고수는 북으로 장단만 치는 것이 아니라 “으이”“좋지”“잘한다”“얼씨구”등의 추임새를 하면서 흥을 돋우기도 하고 청중을 이끌어가기도 한다. 이런 아니리나 소리 · 발림 · 추임새 등은 판소리 예술의 중요한 요소로서 철저한 연구와 재창조가 요망되는 것들이다.


이러한 판소리는 대개 18세기경에 확립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그래서 우리가 좋아하는 숫자인 12를 머리에 내세워 판소리 열두마당이 그 무렵에 형성된 것으로 본다. 판소리는 어느 한 개인이 작사하고 한 사람이 작곡한 작품이 아니라 광대라고 하는 많은 음악가들이 오랜 세월 동안에 걸쳐 옛것을 배우고 다듬으며 거기에 떠 새것을 보태어 이루어 놓은 역사적인 산물이다. 즉 연주가가 곧 창작을 겸했다는 뜻이다. 연주가가 자신의 음악성을 표현해 가는 과정에서 창작 행위도 하게 된다는 것인데 그런 창작을 판소리 용어로는 ‘바디’ 또는 ‘더늠’이라고 한다. 김 창환 더늠의 「제비노정기」라든지 권삼득 바디의「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등이 그런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판소리는 많은 역대의 명창들이 사설을 보태고 곡조를 보태어서 오랜 세월 동안에 축적한 하나의 음악 유산이다. 축적이란 아무것이나 다 남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것은 보완되고 또 못 쓸 것은 버려지고 좋은 것은 보태어지는 과정을 거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해서 남은 현재의 판소리는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의 5마당이다. 옛날의 12마당이 5마당으로 줄어든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판소리 음악의 퇴보가 아니라 남은 것이 보다 발전하는 반면 퇴화한 것들은 대대 전통 사회가 용납하기 어려운 저급 취미의 재미만 좇는 내용들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판소리는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서민적인 취향에서 출발했지만 전통 사회가 지향하던 사회인 덕목(충 · 효 · 정절 · 우애)을 체질화 하면서 더욱 세련되고 확대되어 왔다.


판소리는 명창들에 의해서 발달했기 때문에 판소리의 역사는 명창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기에는 하 은담, 최 선달, 우 춘대 같은 명창으로부터 권 삼득, 송 홍록, 박 유전 같은 명창을 거치면서 발달하였고, 일제시대의 송 만갑, 이 동백에 이르는 현재 명창들의 스승에 이르기까지 전기 8명창, 후기 8명창 등으로 그 계보가 뚜렷이 남아 있다. 이 명창들은 사사계보나 지역적 특성 때문에 송 홍록의 제를 계승하는 ‘동편제’와 박 유전의 스타일을 계승하는 ‘서편제’등으로 나뉘기도 하는데 동편이나 서편은 전라도의 동쪽과 서쪽의 구분이고 충청도나 경기 지방에서 유행하는 김 재철, 김 성옥의 스타일을 계승한 일파는 ‘중고제’라고 하였다.


즉 같은「춘향가」라도 제에 따라 가사와 곡조가 다르고 명창에 따라 듣는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판소리가 다섯 마당이라고는 하지만 엄밀히 레퍼터리로 따지면 수십곡이 되는 셈이다. 계면조의 슬픈 성음이나 우조의 우렁찬 목소리 그리고 화평한 평조의 표현 양식은 능히 사람들을 울리고 웃긴다는 많은 일화를 낳아 가면서 판소리는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판소리의 음악적 구조를 이해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판소리의 조와 장단을 이해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판소리의 조와 장단이, 가사가 갖는 극적인 상황에 어떻게 활용되어 전체 판소리로서 나타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판소리의 조에는 우조 · 계면조 · 평조 등이 있는데 이것은 각각 성음의 개념과 길의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성음의 개념이란 판소리를 부를 때 목소리를 어떻게 쓰느냐 하는 소리의 성질로 나누는 방법인데 가령 우조 성음은 놀보가 흥보를 심술궂게 부르는 대목과 같은 호령조의 엄숙한소리이고 계면조의 성음은 춘향이 이별을 서러워하며 애원하는 대목과 같은 애절하고 슬픈 소리이며 평조 성음은 보다 화평하고 명랑한 소리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성음의 개념으로 쓰이는 조의 의미는 마치 ‘어조’가 어떻다고 할 때의 그 조의 뜻과 통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런 개념의 조에 대한 공부는 보통의 음악 시간에는 배우지 않는 것이어서 우리 학생들이 이해하기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한편 길의 개념으로 조가 쓰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여기서 길이란 판소리가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계속 진행하면서 선율을 만들어 갈 때 그 진행한 흔적을 그 골격을 말한다. 그것은 그 선율이 어떠한 음 체계로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을 따질 때 우조로 되었다, 또는 계면조나 평조로 되었다 하는 것이다. 우조는 보통 ‘솔라도레미’와 같은 음 체계로 되어 있고 계면조는 ‘미라시도레미솔’과 같은 음 체계로 되어있다. 이 음체계는 우리가 음악시간에 배운 장조나 단조와 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 조의 의미는 비슷하다고 이해할 수 있다.


판소리의 조는 이 두 가지 개념이 복합적으로 섞여 쓰이기 때문에 우리가 판단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가령 악보로 보면 평조의 구조로 된 선율인데 판소리 명창이 우조 성음으로 불렀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대목은 무슨 조로 되었다고 해야 할까? 이런 경우는 평우조가 될 수도 있고 우조가 될 수도 있는데 그것은 그때의 상황과 효과를 봐서 판단하여야 한다. 결국, 우조 · 계면조 · 평조는 그것이 성음의 개념으로 쓰이든 길의 개념으로 쓰이든 우조는 우렁차고 엄숙하며, 계면조는 애절하고 슬픈 것을, 평조는 화평하고 담담한 것 등을 표현하려고 하는 표현 기법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성악이 극적인 긴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발달시킨 표현 양식의 하나라는 것이다.


판소리는 고수의 북 장단에 맞추어 명창이 소리를 해 나간다. “일고수 이 명창”이라는 말이 있듯이 고수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판소리 이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고수가 치는 북 장단을 이해하는 것이다. 고수가 치는 북 장단의 종류는 대개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엇모리 정도이다.

 

진양조는 24박 한 장단의 매우 느린 장단이고 극적으로 매우 광활하다든지 엄숙한 장면에 많이 나오며 중모리는 12박 한 장단으로 속도는 보통 속도이며 판소리에서 제일 많이 사용되는 장단이다. 중중모리는 중모리보다 조금 빨라 춤추기 좋을 만큼 흥겨운 장단이며 모든 상황에 두루 쓰인다. 자진모리와 휘모리는 4박 빠른 장단이어서 극적으로 촉급하고 바쁜 대목에 많이 쓰인다. 그러나 판소리에서 엇모리만은 5박 단위 10박으로 된 특별한 장단인데 도사나 중이 나타나는 대목에서만 쓰인다.


5. 산조

산조란 남도가락인 시나위나 판소리와 같은 성격의 선율을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등의 장단에 맞추어 연주하는 기악 독주 음악이다. 그것은 우선 그 선율의 흐름이 매우 한국적이어서 서양 음악의 선율 진행과 판이하게 다르고 장고로 반주하는 장단 역시 24박의 진양조, 12박의 중모리 등이어서 서양 음악의 박자와 다르다. 또 장단이 주가 되어 짜여지는 형식도 처음은 아주 느린 속도의 진양 장단으로 시작하여 차츰차츰 빠르기를 더해가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바뀌어 가는 것도 서양 음악의 틀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선율 · 리듬 · 형식 등이 지극히 한국적인 이 산조는 서양 음악의 소나타 못지않게 훌륭한 음악형식이고 또 널리 사랑받는 음악 장르이다.


현재 산조 음악은 그것을 연주하는 악기에 따라서 가야금 산조, 거문고 산조 등으로 불리고 있는데 각 악기의 산조들은 그 악기의 특성을 잘 살리며 산조 최대한의 표현력을 확대하려고 하기 때문에 매우 다양한 산조의 표현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또 산조 음악은 시나위가 그렇듯이 장단에만 구속되고 선율은 자유자재로 즉흥성을 살려 연주하는 전통이 있어서 사람에 따라서 또는 때와 장소에 따라서 음악이 달라지는 것이 보통이다. 지금은 각자가 연주하는 산조의 음악이 어느 정도 고정되는 경향이 있어서 그 음악을 유파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러므로 같은 가야금 산조라 할지라도 갑이라는 명인이 연주하고 보급하는 산조는 갑류 가야금 산조라 부르고 을이라는 사람이 또한 독특한 산조 음악을 가지고 있으면 을류 가야금 산조라고 부른다.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니 성금련류 가야금 산조가 그러한 예이다.


산조 음악은 그냥 듣고 있기만 해도 그 음악이 이끌어가는 흥의 분위기에 저절로 빠져들게 된다. 처음은 뜸을 들이는 식으로 천천히 풍부한 표현력으로 분위기를 끌고 가다가 중모리쯤 되면 어느 정도 노래 부르는 정도의 흥이 되고 그것이 더 무르익어 중중모리쯤 되면 마치 춤을 추는 듯한 흥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 자진모리, 휘모리 등은 정말로 신나는 대목이어서 흥의 극치를 최고의 기교로 표출해 내는 대목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은 언제나 몇 장단 아주 느리게 타면서 그 신명나던 흥분을 적절히 정리하여 여미는 것이 보통이다.


산조 감상을 잘하기 위해서는 장단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다음에 간단한 산조의 역사와 함께 장단의 기본형에 대하여 설명하기로 한다.


▶ 산조 음악의 형성과 종류

산조 음악의 확실한 발생시기는 알 수 없으나 대체로 18세기 이후에 있었던 민간 음악의 성행과 밀접히 관련된 것으로 추측된다. 음악계에 전해지기로는 김 창조(金昌祚 : 1865~1950)가 시나위 가락을 본떠 가야금 산조를 만든 것이 산조(散調)의 효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근대 가야금 연주의 명인이었던 박 상근(1905~1950)에게 음악을 전수해 준 박 달괘, 또 심 상건(1889~1961)의 아버지 심 창래 등도 이 음악의 발생과 관련된다고 추측된다.
이와같이 가야금으로부터 비롯된 산조음악은 거문고 · 대금 · 해금 · 피리 · 아쟁 등에까지 그 범위가 확대되었고, 또한 여러 명인이 출현하여 자신들의 유파를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각 산조의 종류와 유파(流波)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가야금 산조
가야금 산조는 김 창조가 시나위 가락을 본떠 처음으로 연주하였다고 하며 심 상건, 박 상근 등의 명인에 의하여 그 계보가 이어져 왔다. 현재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는 가야금 산조에는 김 창조의 손녀인 김 죽파에 의해 정착된 ‘감죽파 산조’와 성 금련에 의해 보급된 ‘박상근류’그리고 함동정월에 의해 보급된 ‘최옥산류’가 있으며 이밖에 ‘강태홍류’‘김윤덕류’‘김병호류’등이 있다

가야금 산조는 다른 악기로 연주하는 산조 음악보다 악곡 구선이나 장단 배열 등이 복작하고 유파도 많이 형성되어서 비교적 다양한 표현력을 지니고 있다.


장단 배열은 대체로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로 되어 있다. 그러나 각 유파에 따라 그 명칭이 약간 다른데 김 죽파류의 경우에는 김죽파에 의해 새로이 짜여진 ‘세산조시’라는 것이 휘모리 자리에 붙어 있으며, 그밖의 유파에서는 엇모리나, 단모리 등의 부분이 있는 경우도 있다. 연주 시간도 거의 50~60분네 이르는데 비교적 악곡이 짧았단 박 상근류의 산조는 근래 그의 제자인 성 금련에 의하여 약간의 가락이 붙여지고 다듬어져서 훨씬 길어졌다.
한편 가야금 산조를 연주할 경우에는 산조 가야금을 사용하는데 이 악기는 정악을 연주하는 풍류 가야금보다 통이 작고 줄의 굵기도 가늘어서 빠른 산조의 연주에 편리하도록 되어 있다.


② 거문고 산조
거문고 산조는 1900년대 초에 백 낙준(1876~1930)에 의하여 처음으로 연주되었다. 그의 산조는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단모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이 박 석기, 신 쾌동에게 전수되었다. 이후 신 쾌동이 그의 스승인 백 낙준 가락을 다듬고 장단 배열을 재정리하여 ‘신쾌동류’로 정착시켰으며 또 박 석기에게서 배운 한 갑득이 다시 자신의 유파를 형성하였다. 따라서 현재 연주되는 거문고 산조는 ‘백낙준류’‘신쾌동류’‘한갑득류’가 있고 그밖에 ‘김윤덕류’의 산조가 있다.
 
각 유파에 따른 장단 배열법을 보면 백낙준과 신쾌동류는 다같이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잔모리(자진모리)이며 한갑득류는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늦은 중중모리, 자진모리, 그리고 김윤덕류는 진양조, 중모리, 자진모리로 되어 있다. 거문고는 가야금보다는 운지법 등의 한계가 있어 가야금 산조의 휘모리와 같은 빠른 가락른 연주되지 않는다.


③ 대금 산조
대금 산조는 1920년경에 박 종기에 의하여 가락이 짜여졌다. 박 종기는 전라도 진도 출신으로서 시나위 연주에 뛰어난 인물이었으며, 그의 연주가 음반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같이 생성된 대금 산조에는 편 재준, 이 충선, 한 범수, 한 주환 등의 명인이 배출되어 각기 그들의 유파를 형성하였다.
연주 시간은 30분 안팎이며 장단의 구성은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되어있다.


④ 해금 산조
현재 ‘한범수류’와 ‘지영희류’가 연주되고 있다. 한 범수는 자신의 산조 가락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오선보와 정간보로 펴냈으며 대금 산조도 자신의 유파를 가지고 있는 당대의 명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해금 산조는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구성되어 있다.


▶ 산조의 장단
산조의 장단은 대개 판소리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장단을 사용하고 있으나 느린 장단부터 빠른 장단의 순서로 배열하는 것이 특징이다.
즉 산조에서는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등으로 처음에는 느린 진양조로 시작하여 조금씩 빨라지면서 중모리, 중중모리 등으로 장단이 넘어간다.
장단을 가리키는 용어, 진양조·중모리·자진모리 등으로 악곡의 빠르기를 나타내 주는 동시에 장단의 리듬 형태를 가리키기도 하며 또 24/1 박으로 되어 있는 리듬 구조를 나타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장단 배열은 연주하는 악기나 각 악기의 유파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가야금 산조를 예를 들어 살펴보면,
박 상근류는 진양조―중모리―굿거리―중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단모리로 구성되어 있고 김죽파류는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세산조시로 구성되어 있다.

산조에 쓰이는 기본형을 악보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 네 가지 유형의 장단을 보면 그 속도나 장단 내용은 다르지만 흐름의 세(勢)는 같은 식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진양조의 경우 처음 여섯 박은 합장단으로 시작하여 네 박을 쉰 다음 다섯째와 여섯 째 박을 안정감 있게 ‘딱딱’ 쳐주고 다음 여섯 박은 뒷부분의 5,6박을 풀어 주듯 궁편을 부드럽게 쳐준다. 그래서 이러한 세(勢)의 흐름을 민속 악인들은 ‘치고 달고 맺고 풀고’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이것을 한문식으로 표현한다면 기(起), 승(承), 결(結), 해(解)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세의 흐름은 그 다음 중모리 이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 장단을 네 부분으로 나누었을 때 그 네 부분이 치고 달고 맺고 풀고 하는 식으로 흘러간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 음악의 속도를 빨리하는 방법과 장단과의 관계이다. 장단의 악보에서 보면 속도가 빨라질수록 장단의 박수가 줄어든다. 그래서 진양조는 네 부분으로 나누었을 때 한 단위가 6박이던 것이 중모리에서는 3박으로 줄고 자진모리에서는 1박으로 되어 버린다. 즉 박수를 줄임으로써 속도를 빨리해 나가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산조의 장단은 박수가 많을수록 느리고 박수가 적을수록 빠르다는 것도 알 수 있다.


6. 가곡
‘가곡’이라는 용어가 요즘에 와서는 예술 노래라는 의미로 보통명사화해 버렸지만 본래 ‘가곡’이라는 용어는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였다. 가곡(歌曲)은 한문 투의 말로서 순 우리말로는 그냥 ‘노래’라고도 불렀다. 이 ‘노래’가 보통명사화하면서 이탈리아 가곡이니 김동진 가곡이니 하는 현대식 용어가 유행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곡’이란 이런 것이요 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을 짐작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동안 가곡이라는 음악을 체험해본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과거에 만들어진 김천택의 『청구영언』이나 김수장의 『해동가요』『가곡원류(歌曲原流)』와 마찬가지로 모두 가곡의 가사들을 모아 엮은 노래책이라는 것을 기억할 수 있다.

 

『가곡원류』는 안민영·박효관이 만든 것으로서 간단한 연음표라는 기보법을 써서 소리의 억양을 표시한 일종의 악보이기도 하다. 그런 노래책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된 것은 옛날 사람들이 가곡을 많이 부르고 또 가곡을 사랑했다는 증거이다.


가곡을 좋아하고 숭상했던 계층은 대개 지식인계급인 정신적인 상류층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은 소위 풍류라는 이름의 「영산회상」이나 같은 성질의 음악인 가곡을 즐겼는데 이 음악을 통해서 마음을 수양하고 고상한 취미를 가지려고 했던 것이다. 특히 「영산회상」이나 가곡 같은 음악을 정악(正樂)이라 부르고 이런 음악이야말로 성리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성(性)이 정(情)으로 발하고 그것이 행동으로 연결되어 나타나도 바르게 성의 선성(善性)을 나타내는 그런 음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따라서 가곡은 얕은 재미보다는 깊은 이성적 음악 취미를 만족시키는 높고 고상한 음악으로 발달되었다.


현재 전해 내려오는 옛날 악보(高樂譜)에 가곡의 악보가 대종을 이루는 것도 판소리나 잡가와는 달리 글을 쓸 줄 알고 기록을 할 줄 아는 선비 계층이 가곡을 많이 불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가곡의 악보를 통해서 옛날 가곡의 곡조가 어떻게 변천되어 내려왔는지 그 내력을 알고 또 우리 음악의 역사도 체계 있게 정리할 수 있다.


옛날 사대부 집안에서 누가 음악을 잘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거문고 같은 악기로 「영산회상」이나 가곡, 「여민락」같은 음악을 잘 연주했거나 가곡을 잘 불렀거나 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런 것이 곧 전통사회의 교양 음악이었고 그것을 정악이라고 불렀다는 뜻이다.

 

가곡의 사설은 단형시(短形詩)인 시조이다. 한국이 발달시킨 3장 형식의 시조라는 단형시는 본래 노래로 불리던 노래 가사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데 초기의 노래 형식은 가곡이고 후세에 내려와 영조조에는 시조라는 쉽고 간단한 음악 형식이 발달되어서 그때에는 같은 단형시를 가지고 가곡이나 시조로도 불렀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중요한 것은 본래의 음악 형태는 가곡이었는데 나중에 시조가 생겨났다는 점이다. 또 시조라는 용어는 시용(時用)의 노래, 즉 그전 음악에 대한 새 음악이라는 뜻으로서 문학 형태를 가리키는 의미는 아니었다.

 

가곡은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와 같은 단형시는 5장으로 나누어 노래하는데 그 5장은 처음 대려음이라는 기악(伎樂)을 한참하고 나서 1, 2, 3장을 부르고 중려음이라는 기악의 간주(間奏)를 한 다음에 4, 5장을 부른다. 그렇게 시 하나를 대려음·중려음과 함께 5장으로 나누어 부르는 것을 통틀어 한 잎(葉)이라 하는데 현재 전승되는 가곡 한 바탕으로, 제일 많이 부른다면 26잎을 계속 부를 수 있고 가곡의 곡조가 전하는 것을 양으로 따진다면 1백 60여 곡(葉)이 전해지고 있다.


가곡은 남자가 부르는 남창 가곡과 여자가 부르는 여창 가곡이 있는데 남창 가곡이나 여창 가곡으로 한 바탕을 부른다고 하면 대게 한번 시작하여 계속 10여 잎을 부르게 된다. 남자와 여자가 번갈아 부르는 남·여창일 경우는 좀더 많은 잎을 부를 수 있다. 그렇게 한 바탕씩 불러갈 때 대개는 속도가 느린 초수대엽(初數大葉)·이수대엽(二數大葉)에서부터 차차 속도가 빨라지고 흥이 고조되는 언롱(言弄)이나 편락(編樂)으로 진행되게 된다. 초수대엽이니 이수대엽이니 하는 것은 바로 가곡 한잎한잎의 이름으로서 오늘날에는 스물여섯 가지가 전해져 연주되고 있다.


가곡의 반주는 소규모의 관현악 편성으로 한다. 거문고를 위시하여 세피리·대금·해금·양금·단소·장고 등이 쓰이고 장고 장단은 느린 것이 16박 장단, 빠른 것이 10박 장단으로 되어 있다. 가곡을 잘 부르는 사람을 가객(歌客)이라 불렀는데 이 주환(李珠煥)·이 병성(李炳星)·하 규일(河圭一)·명 완벽(明完璧) 등과 박 효관(朴孝寬)·안 민영(安玟英)·김 천택(金天澤)·김 수장(金壽長) 등이 유명한 가객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가곡은 판소리 범패(梵唄)와 함께 3대 성악으로 꼽혔다.
그러나 요즘 와서 성악가라고 하면 서양 예술 노래 전문가로만 통하게 되고 우리 성악 전공하는 사람들은 의미하지 않게 된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면 요즘 성악가들이 즐겨 부르고 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고파」「봉선화」등의 한국 가곡과 전통 가곡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것은 이미 이 강숙(李康淑)의 「한국가곡의 진(眞)과 준(準)」이라는 논문에서 밝혀졌듯이 가고파·봉선화류는 양악(洋樂) 구조를 가진 것이지만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가곡처럼 굳어져 이를 반만 인정해서 ‘준 한국가곡’이라 칭하고 지금까지 설명해 온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의 가곡들을 한국 가사와 한국인의 음악 동질성에 부합되는 ‘진짜 한국가곡’이라고 할 수 있다.


가곡을 부르는 연주 형태는 가객이 중앙에 앉고 반주하는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반주를 하는 식인데 남녀 두 사람이 번갈아 부르는 남·여창 가곡일 경우는 남자가 오른쪽, 여자가 왼쪽에 앉는다. 남자는 그냥 책상다리 자세이고 여자는 한쪽 무릎을 세우고 두 손을 모아 다소곳이 세운 무릎을 잡고 노래한다. 가곡을 부를 때에는 아무리 높은 소리를 지르더라고 고개를 흔들거나 상을 찡그리는 법이 없다. 정좌한 자세 그대로 단정하게 앉아서 계속 불러 나가야 한다.

 
가곡의 발성은 가장 자연스러우면서도 무게 있는 소리를 내어야 한다. 가곡은 판소리의 발성과도 다르고 민요 부르는 형식으로 불러도 안 된다. 즉 단전으로부터 소리를 밀어올려 확 열린 목을 통해 시원하고 품위 있게 불러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간드러진 소리나 놀량목을 써서는 안 된다.
따라서 가곡은, 가장 자연스러우면서 가장 품위 있게 가곡의 가사를 잘 발음하고 음악을 또 잘 표현해야 하는 양식이다.


7. 시조

시조는 가곡 창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가곡을 쉽고 간단하게 부를 수 있도록 작곡한 새 음악이다. 시조는 영조 때의 가객 이 세춘이 작명했다고 한다.
시조라는 용어의 시(時)는 ‘어떤 스타일의 음악’이란 뜻이기 때문에 시조는 ‘현재의 음악’이란 말이고 영어로 하면 ‘Contemporary Music'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그때까지 부르던 가곡에 대하여 새로 생긴 음악이라는 뜻이다.


지금의 시를 가곡과 비교해 보면, 가곡은 소 관현악 편성의 반주에 대여음과 중여음이 있고 5장으로 나누어 부르는데 시조는 단소나 피리 등 단잽이 반주에 3장으로 짜서 부른다.
가곡은 16박이나 10박 장단으로 부르는데 시조는 5박과 8박을 섞어 사용한다. 예를 들어 “동창이 밝았느냐”를 가곡으로 부르면 “동창이”까지는 11박, “밝았느냐”가 16박이나 되지만 시조로 부르면 “동창이”가 5박, “밝았느냐”가 8박으로 되어 훨씬 간단하다.


그러므로 시조는 가곡보다 반주도 간단하고 형식도 3장이고 선율도 단순하게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전문적으로 배우고 반주를 갖추어야 하는 가곡보다는 훨씬 더 배우기 쉽고 편리하게 부를 수 있는 대중적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시조가 생긴 이래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시조를 즐겨 불렀기 때문에 많은 시조와 시와 곡조가 창작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시조의 곡조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평시조와 지름시조, 사설시조가 그것이다. 평시조는 시조의 원형에 속하고 또 맨 먼저 배우는 시조이다. 평시조에서 그 평자의 의미는 ‘평평하다’ 또는 ‘보통의 높이다’라는 뜻과 통한다. 그러므로 평시조의 처음은 보통 음 높이로 부른다. 여기에 비해 지름시조는 그 이름에 지름이라는 말이 그렇듯이 질러내는 높은 소리로 부른다는 뜻이 있다. 그래서 지름시조의 초장은 매우 높은 소리로 질러내며 부르도록 선율이 되어 있다. 그러나 중장과 종장은 평시조와 같은 곡조로 부른다.


한편 사설시조라는 것은, 사설이란 말이 ‘말이 많다’ ‘가사가 많다’는 뜻이 있어 많은 글자 수의 가사를 시조로 부르는 음악을 가리킨다. 실제 사설시조는 단형시가 아닌 중형시를 노래하게 되고 자연히 글자를 주섬주섬 엮어 부르는 식으로 부른다. 그런데 시조는 평시조이든 지름시조이든 사설시조이든 모두 3장으로 나뉘어지고 각 장을 5, 8, 8, 5, 8식의 일정한 틀에 넣어 부른다. 다시 말해서 글자 수가 많으면 자주 붙여서 사설처럼 되고 같은 지름시조일지라도 초장의 중간을 높은 음역으로 부르는 곡조는 중허리지름시조가 되기 때문에 많은 종류의 곡조가 불려지고 있다.
시조의 음악적 구조는 매우 간단하다. 형식은 초·중·종장의 3장 형식이고 장단은 5 8 8 5 8 /5 8 8 5 8/5 8 5 8로 되어 있다.


음계로 따지자면 평시조의 경우 두음(頭仲)이 주로 쓰이고 간혹 중(仲)보다 한 음 위의 림(林)이 나오는데 그것도 중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역시 선율은 거의 두음으로만 되어 있는 것같이 보인다. 그런데 그 두음 중 인(寅)은 대게 떨어 주고 중은 쭉쭉 뻗다가 다른 음으로 넘어갈 때에 한 음 위로 크레센도하면 떨다가 목을 살짝 돌리고 기교를 부리고 다음 음으로 넘어간다. 시조는 그러한 단순해 보이는 선율을, 부르는 사람의 중심에서부터 주체적으로 긴장감 있게 표출해 내기 때문에 엄청난 다이나믹을 느낄 수 있다. 때문에 사설시조의 어는 한 부분도 그냥 막대기처럼 진행되는 부분은 없다. 마치 음 그 자체가 생명이 있는 것처럼 힘과 크기를 더해 가며 밀고 나갔다가 또 잔잔하게 그냥 잡고 있기도 하는 등 다양한 변화를 꾀하는 식이다.


시조도 지방에 따라 제가 발달되어 있다. 경제니 완제니 하는 것이 그것인데 경제는 서울 지방의 시조 형식이고 완제는 호남 지방의 시조 형식이며 영제는 영남 지방의 시조 형식, 내포제는 충천도 지방의 시조 형식이다. 또 전체를 경·향으로 나누어서 서울시조 형식을 경제로 치고 나머지 완제·영제·내포제를 모두 향제로 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은 석암 정 형태(鄭炯台) 가 시조악보를 창안하고 또 부분적으로 시조를 작곡·정리하여 소위 석암제 시조를 만들어 보급하였는데 그 결과로 석암제 시조가 전국적으로 많이 불리고 있다. 때문에 시조는 마치 경제와 석암제만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석암제의 시조가 형제에 바탕을 둔 것이므로 시조는 역시 크게, 경제와 향제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8. 영산회상

옛날 선비가 풍류를 즐겼다고 하면 그것은 곧 영산회상을, 악기 특히 거문고를 타든지 가곡이나 시조를 즐겼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만큼 영산회상은 교양 음악으로 또 성정(性情)을 기르는 수양 음악으로 존중되고 활용되었다. 지금의 영산회상은 상영산, 중영산, 세영산, 가락덜이, 상현환입, 하현환입, 염불환입, 타령, 군악 등 아홉 곡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아홉 곡은 일시에 작곡된 것이 아니라 가곡이나 판소리의 경우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서 변화·첨가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영산회상이 시대 별로 어떻게 변모하여 그 역사를 만들어 왔는가는 옛날에 이 음악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남겨놓은 고악보(古樂譜)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영산회상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원곡은 상영산이고 그것은 본래 영산회상불보살(靈山會相佛菩薩)이라고 하는 불교적인 가사를 노래하던 성악곡이었다. 성악고이었던 영산회상이 기악화되고 그것이 시대를 거쳐 내려오면서 변주방법에 의한 새 곡들을 첨가하여 상영산, 중영산, 세영산, 가락덜이 식으로 규모가 커졌다.
 
변주하여 새 곡을 만든 방법을 간단히 살펴보면 상영산은 거문고 4괘를 타는 저음역으로 되어 있고 20박 1장단의 아주 느린 음악이며 조금 빠르다. 세영산은 역시 거문고 7괘의 높은 음역으로 되어 있지만 장단이 10박 한 장단으로 훨씬 더 빠르고 경쾌한 느낌이 나며, 가락덜이는 그야말로 가락을 덜어내어 간단하게 만든 곡으로 가장 경쾌하며 속도가 빠르다. 따라서 영산회상은 상영산을 속도를 조금 빨리하면서 음역을 높여 주영산을 만들고 그것을 또 좀 간결하게 하면서 속도를 빠르게 하여 세영산을 만들고 세영산을 더 빨리하면서 가락을 덜어내어 가락덜이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속도의 변화는 산조 음악 같은 데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그 속도가 매우 점진적으로 빨라지기 때문에 초심자들은 쉽게 구별이 되지 않는다.


가락덜이 다음에는 6박 도드리 장단의 상현환입이 있고 그 다음에는 상현환입을 4도 아래로 내려서 변주시킨 하현환입이 있다. 하현환입은 1장과 2장은 거문고 4괘법으로 타고 3장4장에 가서는 거문고 7괘법으로 올라간다. 하현환입 다음에는 염불환입이라는 곡이 있는데 이 곡의 선율은 불교 음악인 “나무아미타불”의 염불 곡조를 기악화한 것이다. 염불환입 다음에는 화려하고 멋스러운 타령이 있고 그 뒤에 마지막 곡인 군악이 있다.


타령과 군악은 모두 4박 한 장단의 타령 장단으로 되어 있어서 거문고로 치면 타령은 7괘로 타고 군악은 5괘와 8괘로 타는 점이 다르다. 군악은 음계 구성에 있어서도 가장 특이하고 또 3장에서부터는 피리 최고의 음역으로 쇠는 권마성(勸馬聲)대목에 있어서 씩씩한 느낌을 준다. 전체적으로 보면 장단은 20박―10박―6박―4빅 식으로 그 단위를 줄여 가면서 속도는 점차적으로 빨리 하도록 했고 음역도 낮은 데서 높은 데로 점점 분위기를 고조시켜 가면서 한 바탕의 긴장이 조화 있게 지속되도록 했다고 할 수 있다.


영산회상의 뿌리를 찾는다면 불교 노래인 “영산회상 불보살”이나 염불인 “나무아미타불”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영산회상을 불교 음악이라 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왜냐하면 영산회상을 수용하고 발달시킨 사람들은 대부분 사서삼경(四書三經)에 물들어 있던 유학 계의 선비로서 그 노래 곡조를 기악 화하고 큰 규모로 발달시키는 과정에서 유교의 음악관이라 할 수 있는 예악사상(禮樂思想)이 작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고악보는 모두 유가 계통의 집안에서는 나왔으나 스님에게 나온 예는 없었고 또 선비들이 이 음악을 존중했기 때문에 그렇게 악보까지 기록으로 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영산회상의 성격은 우리의 전통적인 가락을 유교 이념에 합치시키면서도 재미있게 만든 한국식 유교 음악의 일종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영산회상은 일명 중광지곡(重光之曲)이라고도 하고 거문고 회상이라고도 한다. 영산회상의 악기 편성은 줄 풍류 편성이어서 거문고, 가야금, 세피리, 대금, 해금, 장고인데 여기에다가 단소와 양금을 곁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산회상의 얼개(texture)는 각 악기간의 선율 관계로 전형적인 한국 음악식의 얼개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뼈대는 같으면서도 각 악기는 그 악기의 음악성을 가장 잘 살리도록 선율형이며 장식음·시김새 등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따라서 전체가 합주를 해도 되고 몇 개의 악기만 가지고 연주해도 음악이 된다. 심지어느 하나의 악기로 연주해도 독주가 된다.


9. 수제천(壽齊天)

수제천은 다른 이름으로 정읍(井邑)이라고도 한다. 정읍이란 이름은 백제의 노래 “하 노피곰 도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하는 「정읍사」와 같은 이름이다. 그러나 그때 그 노래와 오늘날의 정읍, 즉 수제천과의 관계는 확실히 밝혀진 바가 없다. 수제천이란 관악 합주의 전통음악 가운데 가장 훌륭한 음악으로 꼽히고 또 가장 유명한 곡이다.

 

연주되는 악기는 피리·대금·해금·당적·아쟁·장고·북 등인데 피리와 다른 악기들이 때로는 교차하기도 하고 때로는 함께 가기도 하는 등 독특한 연주 양식을 가지고 있다. 흔히 말하는 국악 용어의 연음 형식을 가지고 있어서 피리가 주선율을 주욱 이끌어가다가 쉴 때쯤에는 대금·해금·당적·아쟁 등의 다른 악기들이 받아서 연결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본래 이 음악은 궁중에서 연례악으로 쓰이기도 하고 왕세자의 둥가의 위엄을 돋기 위하여 쓰이기도 하였다. 또 궁중무용인 처용무나 아박무(牙拍舞)의 반주 음악으로도 쓰였으나 오늘날은 연주용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수제천의 선율은 남려(C), 태주(F), 고선(G), 임종(Bb)이 많이 나오고 가끔 황종(Eb)과 증려(Hb)가 나온다. 4장으로 되어 있는 선율은 1, 2장이 처음 한 장단만 제외하고는 서로 같고 3장에 가면 전체적인 음역이 4도쯤 위로 올라가서 가락을 쇠는 식으로 되어 있다가 4장에 넘어가면 다시 초장처럼 낮은 음역으로 돌아오며 마친다. 1, 2, 3장은 여섯 장단으로 되어 있는데 4장만은 두 장단으로 되어 있다. 수제천의 속도는 워낙 느린 편에 속하기 때문에 장고의 합장단 치는 법도 먼저 채편을 치고 다음에 북편을 치는, 갈라 치는 법으로 치고 있다. 수제천은 우리 고유의 악곡 중 특이나 아름다운 곡이라 할 수 있다.


10. 여민락(與民樂)

여민락이란 여민동락(與民同樂)이라는 『맹자』의 한 구절과 의미가 상통하는 곡명이다. 여민동락이란 될수록 많은 사람이 음악을 함께 즐긴다는 뜻인데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이 화합하여 함께 좋은 풍속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특히 여민락의 가사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1, 2, 3, 4장과 맨 마지막의 125장이었던 것을 생각해 봐도 세종이 그 노래를 온 국민과 함께 부르기를 원해서 만든 음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그 가사는 불리지 않고 순수 기악곡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여민락의 종류는 관현 합주의 여민락(與民樂), 조선시대에 주로 행악(行樂)으로 쓰인 「여민락만(與民樂慢)」 「여민락령(與民樂令)」, 여민락령을 변조(變調)시킨 「해령(解令)」등 네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여민락을 제외한 나머지 세 곡은 관악 협주로 연주되는 곡들이다.

 

여민락(與民樂)은 다른 이름으로 오운개서조(五雲開瑞朝)라고도 하는데 원래 전부 10장으로 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8, 9, 10장이 없어지고 7장까지만 연주되고 있다. 각 장은 32장단으로 이루어지고 반드시 뒤의 20장단은 여음으로 되어 있다. 전 7장 가운데 1, 3, 5, 7장은 같은 가락으로 되어 있고 2, 4, 6장 역시 같은 가락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두 개의 선율을 번갈아 가며 연주하는 것이다. 또 1장에서 3장까지는 속도가 매우 느리고 4장부터는 점점 빨라지며 가락 또한 간결해진다.

 

관현 합주 여민락의 출현음은 황종, 태주, 중려, 임종, 남려, 무역으로 6음 음계인 것 같지만 옛 악보에 평조(황종, 태주, 중려, 임종, 남려의 5음 음계)로 소개되어 있고 무역이 제 6장 여음 한 장단에서만 나오는 것으로 보아 관현 합주 여민락은 5음 음계 평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여민락은 세종대왕이 온 국민과 함께 즐기자고 만든 음악이어서 깊고 바르고 화평한 맛을 주는 음악이다. 또 여음의 저음역으로 연주되는 부분에서 피리의 수(首)잽이가 한 옥티브 위로 올려 쇠는 가락을 연주하는 것은 여민락의 독특한 점이다.


11. 종교 음악

우리나라의 몇 개 대학에는 종교 음악과가 있다. 그들 대개의 경우는 기독교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한국의 전통음악 가운데에는 종교 음악에 해당되는 많은 음악이 있다. 간단하게나마 한국의 창조적인 음악 문화 가운데에서 종교 음악의 범주에 들어가는 음악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종교 음악이란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신앙행위의 의식에서 사용하는 음악을 말한다. 한국의 신앙 체계는 보는 이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겠지만 현재 남아 있는 의식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대게 무교(巫敎)·불교(佛敎)·유교(儒敎)·기독교 등으로 압축될 것이다. 이들 중에 무교는 종교로 인정하지 않는 시각도 있으나 음악을 수반하는 의식으로서는 어느 종교의식 못지 않게 종교적인 측면이 강하고 또 많은 학자들이 그것을 종교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제가 믿는 것은 종교라 하고 남이 믿는 것은 미신이라 한다”는 식의 속언이 있긴 하지만 그동안 우리들은 우리 전래의 신앙 행위인 굿을 너무 과소평가해 온 면도 없지 않다. 하여간 굿을 포함해서 불교의 재(齋)나 유교의 제례(祭禮), 기독교의 예배에는 음악이 많이 사용되므로 그러한 음악을 통틀어 한국의 종교 음악이라 할 수 있다.


굿에 쓰이는 무악, 재에서 사용되는 범패(梵唄) 또 문묘(文廟)나 종묘(宗廟)에서 연주되는 제례악(祭禮樂)은 모두 한국 역사와 한국인의 생활에서 창조된 한국의 전통 음악 문화이다. 거기에는 한국 문화의 특징과 한국 종교의 색다른 취향, 한국음악의 독특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오히려 현재 각 대학의 종교 음악과에서 가르치는 기독교 음악보다 훨씬 한국인의 창의성이 발휘된 한국의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여기에서도 무교나 불교, 유교의 한국 종교 음악에 대해서 몇 가지 공통점과 독특한 점을 소개하려 한다.


모든 종교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죽었을 때 어떠한 의식을 하며 그 의식에 사용하는 음악이 어떠한 것이냐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죽음과 관련된 의식의 음악이 종교 음악의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가령 재래신앙의 오귀굿이나 씻김굿 같은 의식이나 불교의 재 같은 의식은 모두 사람이 죽었을 때 하는 의식이다.


유교의 제사(祭祀)도 역시 죽은 자에 대한 의식이고 천주교의 미사도 마찬가지로 죽은 자에 대한 의식이다. 죽은 자에 대한 의식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나 엄숙한 것이 공통점이고 또 죽은 영혼을 달래어 편안하게 해 주고자 하는 의도도 모두 공통으로 포함되어 있다.


시기적으로 보면 무악이 가장 고대로부터 자생적(自生的)으로 발달했고 범패는 불교가 유입된 4세기로부터 8∼9세기경에 당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배워와 한국식으로 발달시켰고, 유교 제례에 쓰는 아악은 고려 예종(睿宗)때에 송나라로부터 받아들여 조선조 세종 때에 크게 발달시킨 조선조의 창작품으로, 지금도 쓰고 있다. 어느 것이나 다 기악과 노래(歌)와 춤(舞)을 구비하고 있다는 점도 역시 이들의 공통점이다.


무속이라고도 하는 재래 의식에서 사용되는 각종 춤은 민속 무용의 원형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그저 무당춤이라 하여 겅중겅중 뛰면서 추는 춤은 대개 서울 굿의 무당춤을 흉내낸 것이고 살풀이 같은 고급 춤은 한강 이남의 경기 도당굿이나 전라도 씻김굿 같은 데에서 추는 무당춤을 무대화한 것이다.


동해안 굿의 각종 춤이나 제주도 무당들의 독특한 춤도 앞으로 많이 연구되어야 할 민속 무용의 소재이다. 무당의 노래나 그들이 굿에서 쓰는 악기의 연주도 기막힌 민속 음악의 소재이다. 민속 무용 반주음악으로 많이 쓰이고 있는 염불·타령·굿거리·당악 등은 모두 서울 굿의 반주 음악이고 시나위 같은 음악은 경기도나 전라도의 굿 음악이다.
 
불교 의식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어느 것에나 다 범패라고 하는 노래와 법고춤·나비춤·바라춤으로 불리는 세련되고 우아한 의식무용이 들어 있고 또 삼현육각(三絃六角)이나 태평소 등의 연주가 따른다. 특히 불교 노래나 불교 무용은 매우 귀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유교제례에 사용되는 음악은 소위 아악이라고 하는, 가장 존중되던 음악이다. 그것은 유교의 이념에 맞게 만들어진 음악이어서 그것을 통하여 인간 이성의 최고 수준에 도달할 뿐만 아니라 천인(天人)이 합일(合一)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던 음악이다.


문묘제례악은 중국식 음악 표현법을 썼고 종묘제례학은 한국식 음악 표현양식을 썼다는 점이 다르다. 노래나 춤도 마찬가지인데 현재 문묘제례의 노래는 불려지지 않으므로 차치하더라도 춤은 문묘제례의 것과 종묘제례의 것이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일무라고 부르는 유교제례의 춤은 앞으로 우리 고전 춤의 좋은 모델로, 잘 계승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 종교 의식에는 죽음과 관련이 있는 것만 아니라 산 사람들 개인이나 집단을 위한 각종 의식도 많이 있다. 또한 그때그때에 쓰이는 기악이나 노래·춤 등에 독특한 것이 따로 있어서 매우 다양하고 많은 양의 종교 문화예술 유산이 있다.


12. 무속 음악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은 그 맨 밑바닥에 무속스러운 것이 깊이 깔려 있다는 종교학자의 주장도 있지만 실제로 한국 고유의 신앙 체계는 역시 가장 오래된 무속임이 것의 확실하다. 따라서 무속 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 ‘굿’에서 쓰는 음악이 한국 종교 음악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굿’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그 형태와 내용은 다르겠지만 그 명맥을 이어오며 한국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온 의식이다.


무속에서 행하는 의식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게 발달되어 왔다. 사람이 죽었을 때 하는 오귀굿을 비롯하여 개인의 행운을 비는 재수굿 종류, 또 병이 났을 때에 하게 되는 병굿 종류, 그리고 온 마을이나 한 고을이 함께 참여하는 별신굿이나 도당굿 종류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러한 의식은 어느 것이나 다 무가라고 하는 노래와 무무(巫舞: 민속무용)라 하는 춤, 또 의식의 진행과 노래나 춤에 반주되는 기악이 한데 조화를 이루면서 진행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크게 보아 무속 음악과 무속 춤은 굿이라고 하는 의식을 담는 그릇이다. 신앙 체계를 빼고 보더라도 굿은 우리민족이 오랜 세월에 걸쳐 발달시킨 훌륭한 예술 유산이기도 하다. 특히 자생적으로 발달하여 왔기 때문에 스스로 발달할 수 있는 형성 능력과 또 외래 종교 음악을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능력도 대단히 잘 갖춘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날의 무속 음악을 연구해 보면 한국의 종교음악이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있게 된다.
 
무속 음악은 각 지방의 ‘굿’이 독특하게 발달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방에 따라 특징이 매우 뚜렷하다. 우선 한강을 경계로 하여 남과 북이 매우 다르고 동해안 쪽과 서해안 쪽이 또한 다르다. 강신무(降神舞)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강 이북 지방에서는 또 서울 지역과 황해도 지역, 평안도 지역이 서로 다르다.


세습무(世襲舞) 들이 활동하는 한강이남 지역도 경기도 지역과 호남 지역은 유사하면서도 서로 다르고 동해안 지역과는 전혀 다르다. 또 제주도는 그 나름대로 완전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서울 지역 굿에서는 무가의 곡조가 노랫가락이나 창부타령 조로 되어 있고 피리·젓대·해금·장고·바라 등의 악기를 쓰며 반주 음악으로는 삼현 육각 합주의 염불타령·굿거리·당악 등을 쓴다. 이는 무당의 위세가 당당하고 전반적인 차림이나 의식이 진행이 화려하다. 황해도나 평안도의 굿은 같은 서도(西道)여서 유사점이 많다.


무가는 서도민요 식이라고 할 수 있는 난봉가나 수심가 조가 많고 악기로는 장고·징·꽹가리·바라 등의 타악기가 많이 쓰이는데 해금이나 피리·젓대 등을 갖추어 쓰기고 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선율 악기 없이 타악기 중심으로 의식을 진행한다. 경기도 지방은 도당굿이 가장 유명한데 도당굿을 맡은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굿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배운 세습무들로 그들이 수대(數代)를 거치면서 축적한 예능의 기술은 대단하다. 판소리 비슷하게 들리는 무가의 창법도 세련되어 있지만 특히, 몇 시간씩 계속되는 체계적인 무가의 연창은 하루 이틀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 잡이들의 악기 다루는 솜씨도 그것이 피리가 됐건 젓대가 됐건 모두 어려서부터 개인교수 식으로 배워 훈련한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수준 높은 기량을 가지고 있다. 특히 경기도당굿에서는 소위 경기시나위라고 하는 다성음악적(多聲音樂的)인 즉흥성이 강한 기악 합주를 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상당한 수준의 음악이다. 도 그러한 기악에 맞추어 추는 춤도 도살풀이춤이나 터벌림춤들도 매우 세련되어 있다.
 
세습무들의 의식이란 강신무처럼 그네들이 직접 신이 된 입장에서 굿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신나는 음악과 아름다운 춤으로 신을 즐겁게 하는 인간의 입장이기 때문에 그 음악과 춤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호남 지방의 무속도 경기 지방의 무속도 비슷하다. 인류학적으로 보면 호남 지방의 무속이 오히려 원형에 가깝고 경기 지방의 무속 예능은 호남 지방의 것이 위쪽으로 침투해서 한강이남까지 그렇게 발달시켰다고 볼 수도 있다.

 

현재 호남 지방에는 극소수의 무당밖에 없지만 옛날에는 당골판이 발달되어서 어느 마을이나 무당 없는 곳이 없었고 그들 역시 세습부들이어서 소리 솜씨나 춤 솜씨, 악기 다루는 솜씨는 대단했던 것 같다. 특히 호남의 무의식에서 하는 소리는 그 자체가 판소리를 방불케 하고, 살풀이 같은 춤이나 시나위 같은 기악합주는 민속 예술을 가장 수준 높은 레퍼터리가 되고 있다.

 

동해안의 세습무들은 아직도 그 계보가 확실하고 굳건한 전통과 강한 전승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이 하는 무가는 청보 장단이나 제마수 장단에 얹어 부르는 독특한 형식을 가지고 있고 꽹과리·징·장고·바라로 두드려 대는 타악의 앙상블은 신과 사람들을 하나로 묶으며 신명을 돋우기에 충분할 만큼 현란하기까지 하다. 제주도는 또 그곳대로 대양이나 설쇠·북·장고로 반주하며 역시 신과 사람들을 하나로 되게 하며 인간이 원하는 모든 문제를 신에게 전달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발달되어 있다.


아무튼 무속 음악은 무속의식과 함께 지금까지도 잘 발달해 왔지만 앞으로도 끝없이 존속되어 갈 한국 문화의 한 줄기이다.


13. 불교 음악

오늘날 한국의 많은 불교 신도들은 그들이 매우 우수하고 풍부한 양의 불교 음악을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아예 불교 의식에 음악이 쓰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다.
우리의 불교음악은 통칭 ‘범패’라고 하는데 간혹 ‘법음(梵音)’, ‘어산(魚山)’ 또는 ‘인도소리’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범패는 불교의 여러 가지 의식에 쓰이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의식은 사람이 죽었을 때 행하는 ‘재(齋)’이다.


음악적인 측면에서 산문식으로 된 경이든, 운문식으로 된 시(時)이든, 모든 음악이라는 그릇에 담겨 하나의 공양으로 바쳐지는 것이다. 즉 재 올리는 순서가 옹호게(擁護偈), 할향, 연향게(然香偈), 합장게(合掌偈) 등으로 진행된다면 그 순서의 멋진 곡조로 독창을 하든지 합창을 하든지 하면서 노래로 부르는 것이다. 한마디로 불교 의식에 쓰이는 그런 노래들은 훌륭한 하나의 성악(聲樂)이다.


일찍이 어느 국문학자가 지적한 대로 범패는 판소리나 가곡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성악의 위치를 차지할 만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4세기경이지만 불교음악이 본격적으로 행해지게 된 것은 9세기경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다. 기록상으로 볼 때에는 AD 804년부터 830년까지 당나라에 가서 범패를 배운 진감선사(眞鑑禪師)라는 신라승려가 하동에 있는 쌍계사에 있으면서 범패를 보급했다고 한다. 물론 그러한 사실 이전에 범패가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록상으로 남은 분명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 범패의 시조는 진감선사이다.


불교 음악인 범패는 불교의 융성과 함께 대단히 발달하였었고 따라서 그 음악의 내용과 수준이 한국 음악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당나라로부터 배워온 것이라고 하지만 후세로 내려오면서 범패는 많은 한국의 범패가 창작되었기 때무에 그것은 한국의 불교 음악 문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불교를 억제했다고 하는 조선시대만 해도 범패를 잘 하는 범승(梵僧)의 계보가 뚜렷이 있었기 때문에 『법음종보(法音宗譜)』라는 책이 그 내용을 전해 주고 있을 정도이다. 현재 각 사찰에 범패의 전통이 끊기게 된 원인은 불교계 내에서 노래하고 춤추면서 하는 의식을 반대하는 계통도 있고 일본인들이 1911년 6월에 공포한 사찰령(寺刹令)이 결국은 조선 승려의 범패와 작법(作法)을 금했기 때문에 이러한 지경에 이른 것으로 본다.


범패를 부르며 불교 의식 춤인 나비춤이나 바라춤·법고춤을 추는 작법을 하는 의식은 대개 다섯 가지가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보통사람이 죽었을 때 하는 상주근공(常主勤供)과 그보다 약간 규모가 튼 시왕각배재(十王各拜齋)라는 것과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죽은 다음에 극락왕생(極樂往生)하게 해 달라는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라는 것이 있다.


또 물에 빠져죽은 수중고혼(水中孤魂)을 달래 주는 수륙재(水陸齋)가 있고 무속의 별신굿이나 천주교의 장엄미사처럼 가장 큰 규모의 영산재도 있다. 이러한 재에서 사용하는 음악은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 독창으로 하는 것도 있고 합창으로 하는 것도 있고 독창과 합창을 번갈아 하는 것도 있다. 또 악기도 여러 가지가 쓰인다. 우선 각 사찰이 필수로 가지고 있는 범종·운판·법고·목어 등의 사물이 쓰이는데 이 악기들은 각각 특정한 의미를 가지고 사용된다.


또 범패를 하는 도중에는 간단하게 요령이나 목탁도 주요한 악기 구실을 하지만 징(절에서는 태징이라고 함)과 태평소는 아주 중요하게 쓰인다. 또 영산재같이 큰재가 있을 때에는 삼현육각이나 대취타를 곁들여서 아주 장엄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이렇듯 재라고 하는 의식은 갖추기에 따라서는 많은 악기를 쓸 수 있는 것이지만 대개는 삼현육각이나 대취타는 빼고 태평소 정도까지를 쓰는 것이 보통인데 그것도 없으면 요령이나 목탁, 징만 가지고 범패를 부르며 재를 올리기도 한다.


재 의식에서 부르는 음악의 형식에 따라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안채비소리·홀소리·짓소리·화청축원이 그것인데 이 중 안채비소리는 재올리는 절의 스님이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홀소리나 짓소리는 범패를 전문으로 하는 스님을 초빙해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화청축원은 초빙된 스님 중 가장 유능한 독창자가 하게 된다.

 안채비소리는 요령을 흔들며 재 올리게 된 내력이나 재 올리는 재주(齋主)를 축원해 주는 내용을 낭송 조로 외는 것인데 범패 중에서도 유치(由致)·청사(請詞)등이 이에 해당한다.

 
홀소리라고 하는 것은 범패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가사는 한문의 정형시를 쓰고 곡조는 우리 식으로 변화한 당나라 때의 범패 형식으로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문 가사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곡조는 옛날 곡조가 아닌 한국식으로 변한 곡조라는 말이다. 대개 외래 음악이 한국에 들어오면 그 형식은 오래 지속되지만 곡조나 창법은 곧 한국화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범패 중에서 할향, 합장게, 복청게(伏請偈), 도량게(度量偈) 등은 홀소리에 속하는 것들이다.


홀소리보다 더 어렵고 고형(苦刑)이라고 하는 것은 짓소리이다. 짓소리는 대개 인도말인 진언(眞言)이라 하고 가사와 함께 긴 선율 단위로, 계속되는 곡조를 가지고 있다. 범패 중 가장 한국적인 것은 화청축원이다. 대중 포교용으로 만들어진 화청축원은 순 우리말과 창부타령 비슷한 민요곡조에 알기 쉬운 불교 교리를 담아 부른다. 즉 순 한국산의 범패인 셈이다. 범패는 목소리를 주로 하기 때문에 음성 공양이라고도 하고 작법(나비춤, 바라춤, 법고춤 같은 불교의식 무(舞))운 신공양(身供養)이라고도 한다. 이 범패와 작법은 하나의 공양으로서 중용할 뿐만 아니라 전통 문화 예술 유산으로도 중요한 것이다.


14. 유교 음악

만약 공자가 학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음악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공자는 음악을 좋아했고 음악에 대한 식견이 높았다는 얘기이다. 실제로 공자는 음악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을 철저히 구별했다. 한 사람을 두고 그 인품을 말할 때에는 예(禮)와 악(樂)으로 양면을 이야기 할 정도였다.

 

『논어』에는 “사람이 인(仁)이 없으면, 예를 하면 무엇하며 음악을 하면 무엇하겠는가”라는 대목이 있어 한 삶의 인격 표현에 있어서 음악을 예와 함께 거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공자는 순(舜)임금의 음악인 소(韶) 음악을 듣고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잊어버렸다고 하는 정성(鄭聲)은 나쁜 음악이어서 세상을 어지럽힐까 두렵다고 비난한 대목도 있다. 그러한 공자의 도(道)를 따르는 유교에서도 음악은 예와 함께 중요한 것으로 되어 있다. 특히 제례(祭禮)에 쓰이는 음악과 교양의 음악을 중히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종교 음악의 범주를 종교 의식의 음악으로 한정하면 유교의 음악은 실상 제례악이 되는 셈인데 그 대표적인 것은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과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이다. 문묘제례악은 말할 것도 없이 공자와 그의 제자인 안자(顔子)·증자(增資)·자사(子思)·맹자(孟子) 등을 모신 문선왕묘(文宣王廟)에서 석전(釋奠)을 베풀 때 하는 음악이다. 종묘제례악은 조선조 이대왕의 신위(神位)를 모신 종묘에서 종묘대제를 지낼 때 하는 음악이다. 석전은 봄·가을 로 거행하고 종묘제사는 사맹삭(四孟朔)이라 하여 음력 1, 4, 7, 10월의 상순 안에 4번 지내는 것이 원칙이나 요즘은 5월 첫 번째 일요일에 한번 만 제사를 지낸다.


이러한 문묘제례악과 종묘제례악은 다같이 유교식의 제사에 쓰이는 음악이지만 그 음악의 성격이나 내용은 판이하게 다르다. 두 음악이 조선조 세종 조에 작곡되었다는 것은 공통점이지만 문묘제례악은 원나라 임우(林宇)가 쓴 대성악보(大成樂譜)에 준거하여 만든 중국 구대식의 아악이다. 이에 비해 종묘제례악은 향악과 고취악(鼓吹樂)을 바탕으로 해서 만든 한국식 아악이다. 문묘제례악은 악곡명으로 「응안지악(凝安之樂)」이라고 하는데 음악의 작곡 조건이 모두 중국식으로 되어 있다. 사용하는 악기에서부터 음계의 구성·선율법·악곡의 형식·전체적인 배치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중국 주나라 때의 것을 복원할 의도에서 만든 것이다.


세종대왕이나 박 연등이 동양 음악 이론에 맞는 완벽한 아악을 만들려고 하여 내놓은 작품이다. 당시의 중국의 제례악을 모델로 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완전치 못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든「응악지악」의 악보는 「세종실록」과「악학궤범」에 실려 있는데 그 악보의 내용대로 오늘날도 연주되고 있다. 따라서 「응안지악」은 동양 음악 중 가장 고대의 음악에 속하고 동양 음악 정신의 고전적 모습을 살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한편 종묘제례악은 유교의 예약사상을 한국식 음악어법(音樂漁法)으로 표현해 낸 한국식 아악이다. 본래 세종 조의 종묘제례악은 지금의 보태평(保太平)이나 정대업(正大業)이 아니었다. 그 당시 음악 정리 사업에 있어서 중시했던 것은 제례악이었으므로 문묘제례악과 함께 종묘제례악도 중국식 아악으로 만들었었다. 그러면서도 회례연향(會禮宴享)의 음악은 한국식 음악어법을 살린 한국식 음악을 만들어 쓰도록 했다.


정대업이나 보태평은 당시 회례연향의 음악으로 잔치 같은 행사에 쓰이던 악곡이었다. 그런데 세조조(世祖朝)에 이르면 종묘대제의 음악을 중국식 아악에서 한국식 아악인 정대업과 보태평으로 바꾸어 버리게 된다. 한국의 왕실 제사에 한국식 음악을 쓰는 것이 당연한 일일는지 모른다. 세종도 종묘제향을 모시고 돌아오면서 자기 조상에게 “중국식 아악을 들려 드리는 것이 옳은가”하는 의문을 표시한 적이 있다.


생전에는 한국식 음악인 향악을 듣고 살았는데 죽은 다음이라 하여 중국식 음악인 아악을 들려주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의문이다. 어쨌든 종묘제례악에 쓰는 정대업과 보태평은 연례용(年例用)으로 세종 때 만든 것을 세조 때부터 종묘제사에 쓰게 된 것이다.


문묘에 쓰는 「응안지악」은 악기 편성에 있어서 8음(금(金) 석(石) 죽(竹) 사(絲) 토(土) 목(木) 포(匏) 혁(革))이라 하여 여러 가지 재료로 된 악기를 구비하고 중국악기인 아악기만 사용하여 등가(登歌)와 헌가(軒架)로 나누어 배치한다.

 

대성전(大成殿) 댓돌 위에 배치하는 등가에는 음려(陰呂: 대려(大呂) 협종(夾鐘) 중려(仲呂) 임종(林鐘) 남려(南呂) 응종(應鐘))의 음악을 연주하고 정문 안 뜰 아래에 배치하는 헌가에서는 양률(陽律: 황종(黃鐘)·태주(太籒) 고선 유빈(蕤賓) 이칙(夷則) 무역)의 음악을 연주해 음양지합(陰痒之合)의 이론을 사용하고 있다. 종묘제례악은 아악기뿐만 아니라 당악기나 양악기까지 포함한 큰 편성으로 5음 음계를 쓰고 노래로 부르는 악장(樂章)이 있다. 문묘악은 7음 음계를 쓰고 박자가 일정하여 한음한음의 길이가 똑같으며 4음이 한 구를 이루고 8구가 한 곡을 이루는 데 비하여, 종묘악은 박자가 길고 짧은 것이 결합하여 장단(長短)으로 되어 있고 계면조나 평조 같은 한국식 선율 법을 쓰며 잔가락이나 요성(搖聲, 비브라토)을 사용하여 한국적인 맛을 낸다.
이런 유교제례음악의 영향을 받은 유교의 교양음악도 가곡(만년장환지곡)이나 풍류(영산회상 도드리 등)로 발달하여 조선시대 정악의 전통을 확립하게 된다.

이전 다음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