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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 송현민 / 연출 : 장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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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락 2015, 첫째 날 김문성의 음반 이야기,
  • 작성자무상초들녁
  • 조회수2497
  • 작성일2015.04.19

반락 2015, 첫째 날 김문성의 음반 이야기,


그 남자의 음반 이야기, 반락(盤樂) 2015, 첫째날 무대 김문성, 이준희의 <불멸의 디바>


반락(盤樂)은  ‘음반을 즐긴다.’는 뜻을 가진 음반 공연쑈이다.
구한말(舊韓末)부터의 우리 음반사(音盤史)와 현존하는 최초의 음원들이 담긴 고음반(古音盤)이 김문성, 이준희, 노재명, 이진원, 배연형, 이규호, 정창관, 최상일, 김호성, 양정환, 박찬호, 이보형에 의해 정리되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문화재재단 한국문화의집(KOUS)에서 이 음반의 세월과 음반 속 가수들의 삶을 찾아보는 반락(盤樂)으로 진행되었다. 소중하고 귀한 행복 가득한 시간이었다.


이 분들의 희생과 헌신 사명감이 아니었으면 영원히 사라져버려 그 흔적도 찾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대한제국 말부터 시작된 우리음악이 실린 음반을 찾아 정리하고 복각하고 보존하는 일 /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우리음악의 음원을 찾아서 기록하고 녹음하고 알리는 일 / 숨어있는 우리음악의 명인 명창을 찾아 이들의 음악을 채록하고 음반에 싣고 보급하는 일/ 이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엄청난 결과를 너무나 쉽고 편하게 체험한 선택받은 영광이었다.


반락(盤樂) 2015는 노령의 ‘박찬호, 이보형’을 제외한 모두가 참여하여 4월 14일, 21일, 28일, 5월 19일, 26일(화요일)에 한 무대에 두 명씩 5회에 걸쳐 지나온 시간에 못 다한 미련을 지워주는 기쁨의 무대이다. 그 첫 번째 무대 김문성, 이준희의 < 불멸의 디바 >을 즐겼다.


한국 고음반(古音盤) 수집가들 중 나이 어린 40대로 1998년~99년 사이 인터넷에 닉네임 ‘나그녀’로 국악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하며 제도권 국악을 뒤집어 놓았고, 이를 계기로 국악계에 인터넷 실명제를 탄생시킨 ‘김문성’이 선택한 3명의 <불멸의 디바> ‘장학선, 김옥심, 선우일선,’ 이들의 공통점은 일제 강점기 해어화(기생)로 민요 소리꾼이었다.


1971년 생 김문성은 일생에 벼락을 세 번 맞았다고 한다. 그 중 두 번이 대학생 시절 90년 초반 팝(POP) 홍수 속 황학동 LP가게에서 우연히 들은 김옥심 명창의 <정선 아리랑>, 같은 무렵 들었던 장학선 명창의 <관산융마> 녹음테이프 소리이다. 여기에 17세 때 가희(歌姬)로 데뷔한 선우일선까지, 이후 이들의 발자취를 찾아 20년을 보냈지만 이를 대체할 그 어떤 동기도 찾지 못했다 한다.


20세기 최고 여창 명창 ‘박녹주’와 쌍벽을 이룰 만큼 유명했던 서도소리 명창 장학선은 1905년 무렵 목사의 딸로 태어나 15살 때 권번 기생이 되었고, 1950년 이후 평생 동안 피곤하고 고단한 삶을 살다, 1970년 연탄가스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서도소리 최초의 무형문화재  보유자(일명: 인간문화재)로 굳건하게 지켜냈다. 그의 소리 공명(共鳴)이 아직도 너울거린다.


1934년 <영변가>를 시작으로 <그리움을 넘기다>, <엮음 수심가>, 1969년 <사설난봉가>까지 이날 들었던 고귀한 생전의 아름다운 소리와 남아있는 사진이 단 3장 밖에 없는 장학선 명창의 65년 가난한 삶이 가슴 속 깊이 파고들어 아련함으로 파동(波動)을 쳤다.
 
하늘이 택한 미녀 소리꾼 김옥심은 취입한 유성기 음반이 100여장 되지만 1969년 음반 녹음 시 목에 문제가 발생하여 방송 생활을 중단하고 스스로 잠적했다. 1974년 복귀 시, 활동 중단과 관련한 잡지사의 왜곡된 기사로 인해 무형문화재 보유자 심사 탈락이라는 아픔의 한을 안고 1988년 아침 식사를 하다 63세로 사망했다.

 
평생 술, 담배, 화투를 좋아했던 김옥심의 1956년 <정선아리랑>, 1958년 <한오백년>, 1963년 <깽꿍타령>은 인생을 술에 담아 즐기며 여기서 일어나는 여흥을 담배 연기에 실어 태워 보내고 화투장을 날리며 한을 달랠 수밖에 없었던 소리 인생을 풀어내는 것 같이 들렸다.


꽃처럼 피었다 꽃처럼 져버린 신민요의 전설 선우일선을 두고 김문성은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목소리라 했다. 15세에 권번에 들어가 17세에 평양기생 권번 대회에서 1등을 하여 레코드사에 전속되었다가 1940년 이후 아편으로 폐인이 되었다. 6.25 전쟁 때 고향인 북한으로 돌아가 이후 최근까지도 우리에게는 잊힌 불편한 소리꾼이었다.


1930년대 중반부터 1940년대까지의 선우 일선의 <꽃을 잡고>, <달 떠 온다>, <원앙가>, <압록강 뗏목노래>에서 들려오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애조의 목소리가 북, 남을 오가며 살았던 그녀의 기구한 운명을 예언하듯 전해졌다.


전라도 임실 오수에서 해질 무렵이면 고갯마루 타고 넘는 술에 흥건히 젖은 할머니의 육자배기가 죽기보다 싫었으나, 어릴 적 할머니의 막걸리 팔아오며 들었던 귀동냥이 한참 젊은 20대에 스스로 열렸다고 한다. 오늘 이렇게 나에게 전해준 우리소리의 아름다움은 생활 속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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