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락 2015, 첫째날 이준희의 음반 이야기,
신민요와 고전가요에 빠진 이준희가 서도소리 늪을 헤치는 김문성과 한 무대에 오르면서 두 사람의 고민은 ‘한정된 시간 속에서 서로 형평성을 잃지 않고 자신들이 사랑하는 음반 속 여인들을 어떻게 대중 앞에 선 보일 수 있을까?’이었다. 고민 속에 내린 결론이 각각 3명의 여인을 소개하고, 그 시대 최고의 가수이자 소리꾼이었던 이들에게 <불멸의 디바(여신)>로 최고의 예우를 하기로 했다. 이준희의 디바는 황금심, 박단마, 장세정이다.
1985년 중학생 시절 라디오 프로 ’세월 따라 노래 따라’를 들으며 ‘신민요’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신라의 달밤>은 일 년에 1,700번 이상을 들었고, 고교 2년 시절 야간 자율 학습 시간을 자주 조퇴하며 ‘KBS TV 가요무대’를 보았다. 대학 시절 ‘신민요’ 역사를 찾기 위해 매일신보 영인본을 3번, 동아 조선 마이크로필름을 2번, 대학학보를 2번, 1회부터 탐독하며 손에 닿는 모든 메모지에 깨알같은 글씨로 정리했던 이준희의 <불멸의 디바>들은 나를 감동의 블랙홀로 빠뜨렸다.
꾀꼬리 가수 황금심의 본명은 황금동이다. 1922년 생으로 7자매 중 6녀로 태어나 1938년 16살 나이에 데뷔하여 30년간 신민요의 보루(寶樓)이었다. 데뷔 당시 빅타 음반에는 황금심의 <알뜰한 당신>, 콜럼비아 음반에는 황금자의 <지는 석양 어이하리>로 각각 음반을 발표하는 전무후무한 역사를 남겼는데 가수 고복수가 남편이다.
선우일선이 북한에서 노래한 <조선팔경>은 남한에서는 황금심의 <대한팔경>이었고, 남편 고복수와 함께 노래한 <풍년이 왔네>, 6.25 전쟁 중에 황정자가 발표한 노래를 1960년 재 취입한 <삼다도 소식>, 1961년 KBS 드라마 주제가 <장희빈>, 고음반에서 들려온 황금심의 노래들은 한 곡도 빠짐없이, 왜 황금심이 ‘가요계의 여왕’ ‘꾀꼬리의 여왕’라 불리었는지, 감동으로 이해 시켜주었다.
박단마는 1921~1922년에 태어나 1937년 빅타음반에서 <날두고 진정 참말(상사 구만리)>로 데뷔했다. 비음(鼻音)을 구사하는 창법으로 신민요부터 재쯔까지 다양한 노래를 선보였다. 음악성과 대중성을 갖추고 쑈무대와 가수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1957년에서 1958년 사이, 어느 날 홀연히 미국 이민을 떠나 13년이 지난 1970년 딱 한번 귀국했다, 1992년 로스엔젤레스 한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수술을 받고 종교적인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다 사망했다
1938년 째쯔풍의 <아이고나 요 맹꽁>, <나는 열 일곱살>, 1954년 <슈산보이>, <장미색 앵도꽃과 흰 능금꽃>, SP음반의 <체리핑크만보> 박단마의 음원에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타국에서 죽음을 맞아야 했던 이유, 혼열아 아들을 사랑한 어머니의 아름다움이 숨 쉬고 있었다. 박단마는 도미 당시 미군 헌병 중위 사이에서 난 10살 아들이 있었고, 피부색이 달라 양공주 자식이라 길거리에서 돌팔매를 맞는 아들은 최고 인기가수 자식도 의미가 없었다.
1988년 미국으로 찾아간 KBS 가요무대에 휠체어를 탄 중풍 걸린 여인이 무대 위 가수들을 뒤로 하고 앞에 있었다. 1973년에 미국 이민을 떠나 얼마 되지 않아 십 수년 동안 병고에 시달리다 2003년에 타계한 장세정이다. 1921년 생으로 보통학교 졸업 후 평양 악기점 점원으로 일하다가 OK레코드 이철 사장에게 발탁되어 1937년 <연락선은 떠난다>로 데뷔, OK레코드와 조선악극단 간판 가수가 되었다. 이 무렵 18살 차이가 나는 이철의 연인이 되어 아들 둘을 낳았다. 1941년 경 일본에서 서양 발성법을 배워와 악극무대 최고 인기 가수로, 무대 공연을 위해 그때 그때 결성되었던 ‘저고리씨스터즈’ 핵심 가수로 이난영과 함께 활약했다. 이 그룹이 ‘우리나라 걸그룹의 원조’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한정된 시간에 쫒겨 몇 곡 들어 보지는 못했지만, 1957년 <그리운 고향길>, 1942년 이난영과 함께 노래한 <목화를 따며> 속, 중후한 듯 시원한 장세정의 목소리는 <불멸의 디바> 6명 중 돋보이도록 나의 귀에 착착 감겨 왔다. 더하여 1944년 이철이 사망하자 그의 부인이 장세정에게 하였다는 말 ‘나는 사랑을 하고 너는 사랑을 받았다’ 가 장세정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하며 그녀의 노래가 더욱 더 나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우리 노래 <불멸의 디바> 황금심, 박단마, 장세정의 말로는 누구보다도 가슴 아프고 쓸쓸했기에 위로가 필요했고, 이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이준희’가 나타나 그녀들의 노래를 통해 이날 밤 나에게 따뜻한 박수를 끝없이 보내게 하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