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지는 온갖 것을 대어주거나 일을 돌보아 준다는 “바라지하다” 뜻의 순 우리말로, 국악 에서 판을 이끌어가는 주된 소리에 더해주는 반주자들의 즉흥소리를 의미 한다. 오늘밤 바라지는 망자의 넋을 위로하고 천도(薦度)시키기 위해 벌이는 진도씻김굿을 무대로 끌고나와 공연예술화를 추구하며 일반인들에게 보여주는 무대 놀이판이며, 8명의 20대 젊은이가 모인 공연 식구 이름이다.
씻김시나위/ 비손/ 정(情)의 노래 한(韓)의노래/ 생사고락/ 무취타/ 바라지축원/ 만선, 으로 이어진 ‘바라지’는 아직 완성도에서는 거칠고 덜 다듬어 졌지만 뜨거운 열정과 행복한 미래가 있었다. < 국악의 세계화 >란 이름으로 서양 5선 악보와 각종 서양 악기 속에 묻혀 점점 사라져가는 ‘국악’ 현실에서 21세기, 국악 세계화가 무엇인지 분명한 방향 제시를 하여 주었다.
마치 진도 씻김굿 현장의 구경 판이요, 진도 동네 아낙들이 돌아가며 장구 반주에 한 대목 뽑아내는 초상집 행랑방 육자배기 소리판이요, 흥이 넘치고 정이 쏟아지는 망자 축원, 다시래기 놀이판 같았다. ‘바라지’의 대부분이 진도 예인들의 자식들로,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익은 진도 특유의 흥과 끼가 하나로 뭉쳐져 스스럼없이 표현 되었기에 더욱 아름다웠다.
<씻김시나위>, 둥, 둥, 북소리 같이 궁편을 두들기는 장구 소리가 이 곳이 굿청이요 말을 하며, 가슴을 저미는 아쟁소리가 신이 오신것을 알리는듯 시작하여, 태평무가락을 밟아가는 쇠가락에, 한의 무게를 얹는 징소리, 농현 선율이 춤추는 가야금, 몽한속으로 빨려가는 순간 순간을 잡아 주는 피리소리, 이들이 어우러진 화려한 진도 씻김굿 소리와 반주 음악이 하나로 펼쳐 졌다. 누군가 최고의 우리 음악이 흐터지면 ‘산조’, 뭉치면 ‘시나위’라 표현 하지만 시나위의 근원이 무악(巫樂)이고 그 경지가 너무 높아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닌데, 20대의 젊음 악기잽이들의 신명놀이에서 ‘시나위’가 들렸으며 씻김 소리 속으로 빨아 드렸다.
어릴 적 잠을 자다, 이른 새벽녘 소변 마려워, 눈을 뜨고 앞마당으로 나서면, 마당 한 모퉁이 우물가에서 정한 수 떠놓고 두 손 비비며 ‘그저 복 많이 주십시오’ 빌고 계시던 할머니의 모습을 생생하게 떠 올리게 한 < 비손 >, 어두운 조명 아래 주발 두들기는 소리가 정적을 깨고 신 내림 받은 무녀가 읊조리는 주술 소리 같은 청아한 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풋풋한 젊은 여인이었기에 아직은 소리가 덜 영글어져 여리며 거칠었지만 두 손 모아 비는 자태와 뿜어져 나오는 신기(神氣)가 관객을 몰입으로 이끌었다. 무교의 기원(祈願) 형태 하나가 무대 위 예술의 하나로 훌륭하게 자리 잡을 수 있다니, ‘감탄과 경이(驚異)’ 그 자체 이었다.
< 정(情)의 노래 한(韓)의노래 > 남도 시나위와 경제(京制) 웃다리 운율에 실린 남도 육자배기가 계면조 가락의 한(恨)의 소리 아쟁 울음과 밝고 따뜻한 정(情)의 장구소리와 어울려 관객의 입이 저절로 따라가는 구음을 만들어 냈다. 누가 소리꾼이고, 누가 반주자인지도 필요 없었으며 출연자 모두의 소리와 악기가 하나 되어, 주고받고 끌어주고 이어주며, 새로운 국악 형태의 판굿 이었다.
‘ 생생함 넘치는 네 고수의 북 가락 ’의 뜻 < 생!사고락生四鼓樂> 농악놀이, 사물놀이, 판소리, 어디에서든지 단조롭고 단순하게 느껴지며 소리의 변화를 크게 느낄 수 없었던 북소리가, 공연예술의 한 자리를 꽉 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한 편견을 깨뜨려 버렸다. 흥부가 중 <제비노정기> 대목을 앉은 반 자세로 네 명의 고수가 직접 소리하며 가지고 논 현란하며 다양한 북 놀음의 폭발은 국악의 매력과 무한한 가치를 실증해 보였다. 북이 그냥 두들기는 악기가 아니라 생활 속 흥을 만들어주는 즐거움의 도구라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무취타巫吹打> ‘무속가락으로 불고 친다. 뜻으로 무대 위에서 불고치고 한판 놀아난 희로애락(喜怒哀樂)의 모음 이었다. 취지와 구상 표현 형식은 좋았으나 의도가 무대 위에서 녹아내리지는 못했다. 취타는 행진 음악으로 형식과 질서가 필요하다. 그런데 무질서와 거칠음, 혼란이 난무(亂舞) 했다. 무대에 올리기에는 많이 덜 다듬어 졌고 부족 했다. 아직 더 익혀야 하는 젊음이라는 것을 보여준 현장 이었다.
<바라지축원> 진도씻김굿의 제석굿을 무대 공연화 한 현대판 굿 놀이 이었다. 무의식(巫儀式) 중에서 악(樂),가(歌),무(舞)의 최고가 모두 담겨있고 표현 되는 ‘제석굿’을 보여주며 즐기는 작품으로 구상하여, 관객과 밀접한 소통을 통해 하나의 끈으로 연결시키려 노력 했지만 완성도 면에서는 미진했고 산만 했으며, 순간 공연의 맥을 끊어버리는 연결성의 부족이 나타났다. 하지만 관객의 참여와 호응도는 좋았고, 관객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전달되었기에 이 또한 행복 이었다.
<만선滿船> 거문도 뱃노래에 타악과 풍물놀이 가락, 여러 가지 무교 의식 형태들을 결합하여 만선의 기쁨을 표현해 보인 흥겨운 놀이 판이었다, 꽹과리, 징, 태평소, 장구, 북, 피리, 바가지를 엎어놓은 옹기 물 함지박에, 맨발의 춤꾼과 악사들이 소리와 어울러져, 신명을 만들고 만복의 기쁨을 즐겼다. 어딘가 조금 어색 하지만 자연스러움과 풋풋함이 넘치고, 그냥 즐거워 주체 할 수 없는 흥이 담긴, 어느 작은 어촌 마을의 동네 축제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었다.
‘바라지’의 강민수/ 김태영/ 김민영/ 조성재/ 정광윤/ 원나경/ 이재혁/ 김율희, 8명의 20대 젊은 식구들에게 엄청난 찬사를 보낸다. 요즘 무대 위에 올라온 국악공연에 악기 두개가 있으면 하나는 서양악기인 현실에서, 오직 우리악기로, 우리 소리, 우리 춤을 시대 흐름에 따라 아름답게 표현하며, 국악의 옳은 미래의 길을 보여주고, 즐거운 희망을 선물한 젊음에 더 없는 고마움을 전한다. 아직은 최고, 최상이라 할 수 없지만 지금이 시작이니 남은 건 무한함뿐이라 모두가 기쁨이다, 말하고 싶다, 먼 훗날에도 ‘바라지’를 바라보며 더 없는 행복에 빠지고 싶다.
‘바라지’를 탄생시킨 ‘한승석’ 음악감독과 무대에 올린 ‘한국문화의 집(KOUS)’에 경의(敬意)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