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은 7개의 채로 우리악기 북, 징을 두드리며 한국 프리 째즈의 최고봉이다. 음악의 형식과 틀을 깨 ‘김대환 타법’이라는 새로운 음악어법을 창조해낸 ‘Free music’의 선구자로 독보적 타악(퍼커션) 주자이었다. 가왕(歌王) ‘조용필’이 어린 시절 군밤 맞아가며 음악을 배웠고,한국의 '록의 대부'로 불리는 신중현이, ‘한국 그룹사운드의 맏형’이라 부르는 사람이다. 이 김대환을 사랑하는 한(韓), 일(日), 최고 음악인들이 2016년 3월 1일 한국문재재단 ‘풍류’ 극장에 모여 오후 4시부터 약 3시간 동안 올리는 12번째 헌정 공연이었다.
사랑방처럼 온화하고 포근한 느낌 속, 위로부터 급경사로 펼쳐진 다섯 줄 관람석과 맞닿은 그냥 작은 마당 같은 평면 무대에, 예고 없이 젊은이 2명이 나와 투박하고 서투른 솜씨로 노래를 불러 재롱을 떨었다, 이렇게 공연은 시작 하였고, 이어서 한국문화의 집 예술 감독이며, 책 ‘노름마치’저자, < 진옥섭 > 의 한국 최고 입담 사회가 관객을 사로잡았다.
첫 출연자로 김덕수와 함께 ‘사물놀이’ 창시자이며 꽹과리 명인 < 이광수 >가 비나리로, 고 김대환의 명복과 관객의 만복을 빌어주고, ‘유인상’등 민족음악원 사물놀이 팀과 함께 화려한 가락으로 약 30여분 동안, 3, 1절의 아픔과 초봄 꽃샘추위를 녹여 버리는 듯 공연장에 열기를 불어넣어 뜨거움으로 들뜨게 하고, 희망으로 채워 버렸다.
두 번째, 일본 노가쿠(가면음악극) 오쿠라(大倉)류 북반주자 < 오쿠라쇼노스케 >가 아주 작은 일본 전통 장고 쓰즈미를 왼팔로 감아쥐고 오른손과 손가락으로 극히 단순하게 두들기며 간간히 주문 같은 소리를 내 지를 때 마다 ‘존경과 숭배’라는 단어가 뇌에 떠오르며 숙연(肅然)해 졌다.
세 번째, 공손히 무릎 꿇고 경건한 모습으로 한 현, 한 현을 튕겨내는 < 나가노 치카코 >의 아주 작은 하프에서 울려 퍼지는 맑고 청아한 소리는 더러움에 쪄들은 귀를 씻어주며 전해주는 전율(典律)이 마음에 평화를 선물 했다.
네 번째, 어쿼스틱 기타 한국 최고 연주자로 들국화 객원 단원 < 김광석 >은 기타의 매력이 무엇이며, 왜 사람들이 기타를 가까이 두고자 하는지를 감탄과 감동으로 보여 주었다. 화려하면서도 현란한 손놀림으로 만들어 내는 감미로운 소리를 눈앞에서 듣고 보는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 이었다.
다섯 번째, 두 줄이 만들어 내는 소리의 오묘함에 빠져들면 몽환 속에서 헤어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리는 < 강은일 >의 해금 연주, 행운이었고 넘치는 기쁨 이었다, 맑고 깨끗하며 늘 익숙한 음악 소리가 아닌 혼(魂)을 불러내고 잠든 백(魄)을 일으켜 세우는 귀성(鬼聲) 같은 소리가 퍼지는 고요함은 한 줌 숨소리마저 불편 했다.
여섯 번째, 카리스마 넘치는 개성강한 연기, 묵직한 울림이 있는 깊숙한 음색의 시 낭독의 < 박정자 >가 아니었다. ‘박정자’ 하면 생각 할 수 없었던 노래를, 아무런 반주 없이 자기만의 형식으로 앙코르 곡인 김소월의 ‘진달래’ 까지 불러주었다. 나에게는 ‘박정자’의 새로운 탄생 이었고, 목소리로 들어보는 또 하나의 커다란 행복이었다. 놀라움과 벅참은 교차 하였고, 고정관념과 알량한 정보의 상식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깨달았다.
일곱 번째, 일본 전통 예술인 노(能)와 가부키(歌舞伎)가 서양의 현대무용과 만나 탄생한 무용으로 아름다운 것만이 미가 아니라는 무용 의식의 확장을 의미하며, 주로 죽음이란 주제로 무용수의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몰개성을 나타내며 징그럽고 흉물스러운 육체로 춤을 춰 ‘암흑의 춤’, ‘죽음의 춤’으로 불리는 부토(舞踏)를 보여준 < 도모에시즈네 >, 현장에서 처음 접하는 신선함과 또 하나의 일본 문화를 깨우치는 현장이었다.
여덟 번째, 일본 전통 악기로 횡적(橫笛) 가구라부에(神樂笛)와 일본 돌 피 이와부에(いわぶえ)를 연주한 < 요코자와 가즈야 >, 가구라부에(神樂笛)는 우리 중금(中笒) 소리를 감상 하는 것 같았고, 어린 시절 초여름 동무들과 불던 보리피리 소리 같지만, 쇠 소리 같은 강한 한 음으로 높고 굵게 끊어짐과 이어짐이 이어지는 돌 피리 이와부에(いわぶえ) 소리는 특별함이 전해주는 새로움과 전통을 지켜내는 한 예인의 아름다움이 춤추었다.
아홉 번째, 중요 무형문화재 제 16호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 이수자로, 전통과 창작의 경계를 넘나들며 젊은 세대 선두주자로 실력을 인정받는 거문고 명인 < 허윤정 >, 거문고 산조 하면 떠오르는 소리는 없었다, 전자 기타 음과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으로 빠르며 격동적으로 뻗어내는 소리는 현대음악의 정서를 거문고의 웅장하고 묵직한 소리에 담아 자연의 소리 울림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현(絃)의 춤사위 이었다.
열 번째, 금년 2월 목 수술을 하여 현재 노래를 할 수 없는 < 장사익 >의,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 ’ 시 낭송은 오늘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 자리에 함께 하는지, 내가 오늘을 사는 이유를 되돌아보게 하는 이유를 제공 했다.
열한 번째, 무형문화재 제 68호 밀양백중놀이 보유자 < 하용부 >가 흰색 무명 바지저고리를 걸치고 ‘장사익’의 노래 ‘서풍부’ 가락을 타고 추는 형식 없는 정중동의 아름다움은 글로 표현하기에는 나의 부족함이 아쉽고, 몸동작을 따라가는 나의 호흡은 눈으로 보는 행복을 앞서고 있었다.
열두 번째, 1998년 세종문화회관 ‘ 장사익 ’ 공연에서 양손에 7개의 채를 들고 우리 북과 징을 두들기는 모습과 장사익의 노래, ‘민들레’를 드럼 반주 하는 10여분의 실황 영상은 ‘김대환’의 삶을 느낄 수 있었고, ‘김대환’의 영혼을 이해하는 시간 이었다.
열세 번째, 한국 프리 뮤직의 창시자, 최고의 트럼벳 연주자, 가수 ‘알리’의 대학 스승, ‘김대환’과 함께한 째즈 트리오 ‘강트리오’의 한명 < 최선배 >가 들려준 검은색 트럼펫의 소리는 30대 때 오른손을 다쳐 왼손으로 트럼벳을 연주하는 80대 노장 음악가의 마지막 소리가 아니었다. 지난날 논산 훈련소 기상나팔의 힘찬 내디딤과 타오르는 막연한 희망이 눈앞에서 달리고 있었고, 지금은 거의 사라져버린 트럼벳 소리와 함께 하는 아련한 옛 추억이 담겨 있었다.
끝으로 전 출연자와 관객이 하나 되어, 무대에서 춤추며 아리랑을 목 놓아 부른 147석 작은 공간에서 소문내지 않고 조용히 열린 공연이었지만, 우리가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최고의무대, 아름다운 시간, 훌륭한 공연이었다. 전석 ‘3만원’ 정말 저렴한 상징적인 관람료도 ‘헌정금’으로 쓰이는 뜻 깊은 만남의 시간 이었다. 다만 이 찬란한 보석 같은 위대한 공연을 좀 더 많은 세상 사람들과 함께 행복을 나누지 못해 지금도 무지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진은 이날 함께한 < 안광덕 >님의 작품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