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서울 출생, 자칭 비개비(양반 출신 광대) 먹물광대 이규호는 1979년 26살 봄, 중앙대학 <민속학연구반 > 동아리에서 판소리를 처음 들었다. 이후 김여란, 박봉술, 박초선, 성우향명창에게 소리를 배웠고, 40년 가까운 소리꾼 공력과 고음반을 통해 나름대로 정립한 자신의 소리 관을 고음반에 담겨 있는 명창들의 소리를 비교하여 들려주며 설득력있게 전달하였다.
처음 접한 판소리는 소음 이었지만 몇 달이 지나자 소리가 귀에 들어 왔고 “ 소리의 본질이 무엇인가?” “ 좋은 성음은 무엇인가?” 화두를 품고 살아오며 나름 < 성음이 아니면 소리가 아니다. 판소리는 성음 놀이다 > 얻은 결론을 “ 판소리는 통성으로 해야 한다” “ 판소리에서 수리성을 제일 좋은 성음으로 친다. ” 로 나누어 명창들의 소리로 관객들의 뇌리에 분명하게 각인 시켰다. 판소리를 들으며 ‘좋다’만 외치다, 진짜 맛을 알게 된 희열은 큰 깨우침 이었다.
아름다운 소리 ‘미성’ 김소희 명창의 15세 때 심청가 중 < 심청이 밥 빌러 가는 대목 >과 거친 소리 ‘수리성’ 박녹주 명창의 24세 때 심청가 중 < 심청이 인당수 빠지는 대목 > 그리고 성인 김소희와 박녹주가 각각 소리한 < 숙영낭자전> 한 대목 감상으로 시작 했다.
이선유 춘향가 < 어사된 이몽룡 수청대목>과 김창룡 심청가 < 화초타령 > 이동백의 60세 넘은 소리, 송만갑 제자 박종근의 춘향 하옥 소리, 가장 소리꾼 이었던 59세 정정열의 < 심봉사 곽 씨 부인 죽음>, 통성 소리꾼 70세 송만갑의 수궁가 중 < 고고천변> 등, 짧은 대목 소리로 들려주면서, 쉰 듯한 컬컬한 목소리를 일컫는 말 수리성의 뜻을 “수리먹다: 개암이나 도토리, 밤 따위의 일부분이 상하여 퍼슬퍼슬하게 되다. ”에서 찾아 “썩은 소리”라 지칭하고 판소리를 처음 듣는 사람이라도 ‘미성과 수리성’의 다른 느낌을 찾아내게 하였다.
통째로 쏟아내는 성(聲) 통성은 단전에서 올라오는 소리로 아랫배와 목소리가 붙은 소리이며, 목소리만 쓰는 소리가 미성인데, 수리성은 통성 발성으로 해야 수리성이 될 수 있지만, 해방이후 김소희는 맑은 소리를 내도록 가르쳤고, 안숙선 명창의 스승 ‘강도근’은 여러 번 목이 쉬었다 터졌다를 해야 수리성이 될 수 있고 수리성은 소리가 재주를 부릴 수 있다 하였다 했다.
이렇게, 판소리의 참 맛을 짧은 시간 동안에 터득하게 만들어버린 비개비 먹물광대 이규호의 판소리사랑은 그 깊이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점점 사라져가는 수리성을 찾아 판소리 3요소 ‘ 성음, 선율, 장단, ’에서, 왜 성음이 더 중요한 지를 누구에게나 전달할 수 있는 쉼 없는 노력의 시간들이 위대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