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창관 ’ 1987년 최초로 국악 음원들을 찾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국악음반사 역사를 만들고, 이 땅 모든 국악 음반의 99%이상인 4500여장을 소장 한 국악음반 뿌리이며 기둥으로 살아있는 국악 음반 역사 이다.
1994년 음악 잡지 ‘ 음악동아 '를 통해 국악음반 평론 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만들고, 누구나 무료로 국악을 쉽고, 편하고,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정창관 국악CD음반세계( www.gugakcd.kr ),와 정창관의 국악이 보인다(www.gugakebook.com)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잃어버릴 소리, 날아가 버릴 소리를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나이 60이상 되신 분, 이때까지 독집 음반이 없으신 분, 음악적으로 계승 가치가 있으신 분을 찾아 ‘ 정창관국악녹음집 ’ 제작을 매년 1집씩 1998년에 시작하여 2014년, 79세 한학자 소사영님의 서당에서 글 읽는 소리, <명심보감 계선편 ~ 효행편 성독(聲讀)과 시창 영남루>를 마지막으로 15집을 발간했다.
2007년 1896년 7월 24일 한민족 최초로 녹음한 국악음원( 미, 메린렌드대학 프로바인 교수 발굴)을 찾아내 복각 음원을 세상에 무료로 선물하고, 일제 강점기 victor 음반사, 국악 유성기 음반 587매를 일본에서 찾아내어 근대 문화재로 등록되게 하였고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하게 하였다.
현재도 세계 유명 도서관 국악음반 기증 사업과 인도한국 문화원에‘ 한국악’ 자료 보내기 운동을 하고 있고, 국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 서초국악포럼 ’을 이끌어 세상으로 처음 나아가는 국악인, 제도권에서 소외된 국악인을 찾아 경제적 도움을 주고 있으며. 국외 소재 한국음악 원반 찾아오기 사업을 쉬지 않고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오늘 ‘ 반락 ’에서는 이런 거창한 이야기는 없었고, < 최초의 반락을 만나다! 에디슨 원통 음반 > 제목 그대로, 그냥 음반 역사를 들려주고, 보여 주고, 이야기 하였다. 인류가 언제부터 어떻게 자기 소리를 녹음 하였고, 이걸 들을 수 있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발전 해 왔는가의 시작점인 원통음반 이야기이었다. 90여분 동안 받은 감동을 짧은글 몇 자로는 후기를 쓸 수가 없고, 한권의 책은 써야 하기에 이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의 상상속에 남긴다.
1857년 프랑스인, 래옹 스콧 드 바르탱빌(Leon Scott de Martinville)이 재생 목적이 아닌 소리의 기록을 알아보기위하여 먹지에 그으름을 입혀 소리의 파장을 기록한 포노토그래프(Phonautogragh)가 소리의 최초 녹음으로 음반의 시작이지만, 유성기의 시작은 아니고, 2008년 150년만에 컴퓨터에 의해 이 소리를 재생 하였다, 한다.
유성기의 역사는 1877년 에디슨이 작은 원통형 실린더에 소리를 녹음하고 바늘이 압력을 가해 나팔관을 통하여 소리를 재생시킨 포노그래프(Phonograph)가 최초이며 이때 녹음된 <메리는 어린양을 가지고 있었다(Mary had a little lamb)> 를 100년이 넘은 에디슨의 나팔관 유성기를 통해 오늘 ‘정창관의 반락’에서 들었다.
19세기 러시아 연해주 일대 한인 이주자 후손들이, 러시아 군인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독일군 포로로 1916년경 독일에서 녹음한 <그리움의 노래> 등, 이날 나의 가슴을 파고들고 나의 귀를 황홀하게 하여준 귀하고 귀한 음원들은 한결 같이 이 땅에서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이와 같이 한사람의 집요한 열정과 노력으로 우리 음반사의 역사를 세웠고 미래를 만어 주었다는 사실에 감탄과 경의(敬意)를 표 한다.
‘ 정창관 ’은 말했다, 『1899년 독립신문 기사를 근거로 이 땅에도 원통 음반의 역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살라진 역사가 되었다고, 만약 어느 부자집 어디에서 원통 음반이 발견 된다면 ‘대박’ 이라고 』 참 소박한 욕심이다. 나는 ‘정창관’을 사심없이 세상에 널리 자랑하고 싶고 함께 한 ‘반락’의 행운을 오래오래 기억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