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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 송현민 / 연출 : 장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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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락 2015, 다섯째 날 <김호성의 음반 이야기>,
  • 작성자무상초들녁
  • 조회수2638
  • 작성일2015.05.30

반락 2015, 다섯째 날 김호성의 음반 이야기,

 

<반세기 국악인생 소회(所懷)의 판> 1941년생 김호성은 요즘 무대에 서면 ‘인생의 마지막 무대, 느림의 무대라 생각 한다’ 말한다 했다. 2015 < 반락>에 출연한 최고 고령자답게 자신이 한  평생 걸어온 ‘정가’ 성악가로 국악을 지켜보고 사랑하는 소회(所懷), 마음에 품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곧 몇 명 남아 있지 않은 제도권 국악의 살아있는 근 현대 실증 역사 그 자체 이었다. 약 70여분의 시간은 너무 짧은 아쉬움 이었다.


1951년 6.25 전쟁 중 부산에서 국립국악원이 탄생하여 1960년부터 체계가 확립되었고 1961년 문교부에서 공보부로 소속이 이전 되었다. 이 시절 까지만 해도 국립국악원장의 직급은 낮았지만 공보부장관도 정중한 예의를 갖추었으며, 원장 승용차가 움직이면 교통경찰이 호위를 하며 ‘국악인’이 최상의 대우를 받았다 한다.


1960년 ‘수제천과 상령산’이  세계음반 명반에 등재 되었고, 1964년 중요무형문화제 제도가 생겨 제 1호로 <종묘제례악>가 선정 되었으며, 2001년에 종묘제례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무형 유산이 되었지만 지금까지 <종묘제례악> ‘성악’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를 한명도 지정하지 않는 것은 커다란 슬픔이요, 엉첨난 화 삵임이라 했다.

 

해방 후 부터 2002년까지 수집하여 궁중음악, 풍류방음악, 민속음악 등이 망라되어 있는 국악 명인, 명창의 연주 실황을 녹음한 귀중한 자료를 2003년 영동 난계국악박물관, 2009년 국립국악원에 기증한 ‘김호성’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 되었다.


고려시대 때 중국에서 건너와 궁중 의식에 연주되던 ‘아악’은 현재 <수제천, 보허자, 낙양춘,> 뿐이다. 이제는 중국음악이 아니고 변천을 거쳐 이미 우리 음악 향악이 되어버렸다. 이 ‘아악’은 누가 소금(당적)을 부느냐에 따라 음악의 질이 달라지지만 현재의 ‘아악’은 아름다움, 열성, 등이 1960대 아악의 1/2, 1/4, 수준도 안 된다 하며 들려준, 미국으로 이민 가버려 딱 한곡, 1963년 녹음으로 소금 명인 박종길의 소리가 남아 있는 <수제천>, 아정(雅正)한 소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나라 3대 성악은 가곡, 범패, 판소리, 이지만 가곡은 식자층이 즐겨 부르는 격조 있는 노래로 관현악 반주가 따른다. 그러므로 평시조 한수할 줄 알아야 학식이 있다 하였고 정재계 인사도 대우를 받았다 하며, 1972년 작고한 스승 이주환의 뛰어나게 잘 부른 노래 절창(絕唱)  가곡, 진국명산만장봉 <편수대엽>,  스승을 흠모하는 마음이 담긴 김호성의 가곡 <편락>, 가곡은 첫 장보다, 2장이 느린 것이 특징이라 하던데, 느림의 미학(美學)은 눈을 감고 감상 하게 하였다.

 

20대에 스승인 한갑득을 뛰어넘은 거문고 명인으로 스승이 제자 시대가 저문 후에야 명성을 알리게 되었다는 김윤덕의 1960년 <거문고 산조> 소리, 이 시대에 100만 장이 팔렸다는 임방울 <쑥대머리> 이야기, 그냥 100만장이 아니고, 이때만 해도 음반을 사는 사람들이 자기 장구 장단에 소리를 맞추어 보고 음반을 구입 했다 한다. 얼마나 대단한 명인이고 명창 이었는지, 수 만장 판매 소리도 들을 수 없고, 피아노 소리로 음을 맞추어 연주하는 거문고 소리가 춤을 추는 지금의 국악 현실 속에 익숙한 나는 감(感)은 고사하고 상상마저 꿈이었다.


정악에 사용되던 궁중악기 아쟁(대아쟁)을 민속악기 산조 아쟁으로 새롭게 탄생 시킨 명인 한일섭의 1960년 < 아쟁산조>, 지금과 같은 첼로 활대가 아닌 개나리 활대로 연주하는 영상을 보며 느껴지던 거칠고 둔탁하면서도 매끄럽게 가슴을 파고드는 애절한 소리는 또 한의 커다란 행복 이었다.

  

1920년 생, 줄타기 명인 김영철이 미국을 다녀온 친구가 가지고온 하와이언 기타를 가지고 철현금을 처음 만들어 명인이 되었고, 제자를 두지 않았지만 1981년 38세로 요절한 보성소리 명창 안향련이 김영철에게 연주법을 배워 1970년에 연주한 귀한 음원  안향련의 <철현금 산조>


1961년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권농일’을 만들어 6년간 김포 고촌 평야에서 모심기를 할 때 국안인들이 논두렁에서 풍장과  함께 불렀다는 남도민요 <농부가>를  1960년대 초 시립국악관현악단 창단 시 박초월, 박보아가 실황 녹음으로 남긴 <농부가>

 

1950년대 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현 국립국악중고등하교 전신인 국악사양성소에서 6년 동안 국악의 거의 모든 분야를 섭렵하고, 그 후 국립국악원 초대원장이었던 이주환 선생을 만나 ‘성악’ 명인으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음악을 업으로 삼아 생활을 영유하지 않고, 그저 국악이 좋아 60여년을 함께 하였다는 ‘김호성’이 들려준 최초의 소리들과 이 소리에 담긴 명인 명창의 애환은 감탄사와 함께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는 아름다움이었고 따뜻한 봄볕의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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