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大笒)
신라 삼죽(三竹)의 하나로“젓대”라고도 한다. 전해 오는 여러 관악기 중에서 길이가 길고 관이 굵은 편이며, 청공(淸孔)을 통해 다양한 음악성을 구사하는 표현력을 지니고 가로로 잡고 부는 한국의 대표적인 횡적(橫笛) 관악기이다. 궁중음악과 줄풍류 연주 및 가곡 반주 등에 쓰이는“정악 대금”과 대금 산조나 시나위, 민속무용,민요,굿, 반주 등에 쓰이는 “산조 대금”이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설화에 < 신문왕 때 동해에 작은 산이 있어 그 모양이 자라 머리와 같고, 그 산 위에 대(竹)가 있는데 낮이면 둘이 되고 밤이면 하나가 되매, 임금이 이를 베어오게 하여 그 대나무로 젓대를 만들어 월성(月城) 천존고(天尊庫)에 보관하였다. 젓대를 불면 적군이 물러나고 병이 나았으며, 가물면 비가 오고 장마가 지면 날이 개었으며, 바람이 잠잠해지고 파도가 잔잔해졌다. 그래서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고 부르고 국보로 삼았다.> 하여, 향삼죽(鄕三竹)이 신라에서 기원 했다 하나,『일본후기(日本後紀) 권17』에 < 삼국시대 고구려와 백제의 본국에서 적(笛) 또는 횡적이 연주됐다.> 는 기록으로 보아 통일신라의 삼죽(三竹)은 고구려와 백제의 멸망 이후 그들의 횡적을 수용하여 발전시킨 결과물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고려사 악지(高麗史 樂志)에 대금은 속은 비어 있고 머리는 막힌 대나무 관대(管帶) 하나에 취공(吹孔)1개, 청공(淸孔)1개, 지공(指孔)6개, 칠성공(七星孔)5개를 합해서 13공(孔)이 있다고 기록되어서 있지만, 13공이 무엇인지는 불분명하며, 현재 취구(吹口)1개, 청공1개, 지공6개, 칠성공1개로 이루어져 있다.
독특한 음색을 내기 위해 입김을 불어넣는 취구(吹口)와 손가락으로 막고 때는 지공(指孔) 사이에 묶여 있는 작은 금속판 아래 구멍, 청공(淸孔)은 막이 도톰하고 폭이 널찍하며 색이 하얀 갈대 속의 얇은 막을 채취해 말린 청(淸)을 덮어서 만든다. 맨 아래 칠성공은 악학궤범의 허공(虛孔)으로 민간에서는 바람새 또는 조종구멍으로 대금의 음률을 조정하기 위해서 뚫어놓은 구멍 이다.
악학궤범에 묘사된 대금의 전체적인 구조는 변하지 않았지만, 규격 면에서는 취구는 현재 타원형에 비해 원형에 가까웠고, 그 면적도 현재보다 작았으며 지공도 작았다, 한다. 관대의 길이도 지금보다 짧았고 현재의 대금 음역보다 약 3도 가량 높았을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처럼 대금의 구조는 조선 후기와 현대로 전승되면서 점차 길이가 길어지고 취구가 넓어져 오늘날에는 음역이 낮은 정악용 대금으로 전승되었다. 현행 정악대금(正樂大笒)의 길이는 약 80㎝ 정도이나 산조대금(散調大笒: 일명 시나위젓대)은 정악대금보다 짧고 가늘다.
대금은 대나무 중에서 여러 해 묵은 황죽(黃竹)이나 양쪽에 골이 패인 일종의 병죽(病竹),쌍골죽(雙骨竹)으로 만든다. 쌍골죽을 환영하는 이유는 대나무의 내경(內徑)이 두텁고 단단하여 자유로이 조정하여 음정을 맞출 수 있고, 음색 면에서도 소리가 맑고 여무진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관현악에서 피리(觱篥)와 함께 주선율을 담당하는 관악기이며 독주악기로 도 연주되고 있다. 특히 편종이나 편경처럼 고정 음을 가진 악기가 편성되지 않은 향악을 조율할 때 음정을 결정하여 주는 역할을 하며, 합주를 시작하기에 앞서 대금 연주자가 먼저 임종(林鐘) 소리를 내서 그 소리에 맞추어 다른 악기들이 조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