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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방송되는 독도홍보 <의용수비대>는 멈추어야 한다.
  • 작성자무상초들녁
  • 조회수3523
  • 작성일2017.11.17

현재 방송되는 독도홍보 <독도의용수비대> 이야기는 경찰청에 의해 이미 거짓으로 판명되었지만, 이 이야기를 사실인양 세상에 공인한  <국가보훈처>가 자신들의 과오를 감추기 위해 시정에 나서지 않고 있어, 국악방송에서도 잘못된 정보를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이 갖는 파급 효과는 겁잡을 수 없기에 지금 당장 멈추어야 한다.


잘못에 대한 근거 자료를 첨부하니  참고하여 진실을 조사하여 실행에 옮겨 주기를 건의 합니다.

 

<첨부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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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처 1.PNG

 

캡처 2-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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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처 4.PNG

<첨부 2 >

 

●‎'홍순칠이 죽어야 독도가 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독도의용수비대 이야기는 홍순칠이 1950년대 독도경비사를 왜곡하고 십수명의 가짜 독도의용수비대원을 만들어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발명계독도개발지원운동본부 한송본 본부장은 홍순칠이 독도의 영웅이라며 동상까지 만들었지만, 문제가 되어 어디에도 설치하지 못하고 있다. 독도의병대, 독도사수연합, 푸른울릉도독도가꾸기 이예균 전회장도 홍순칠 영웅 만들에 눈이 멀어 있다.

 

그럼 어디에서 독도역사의 왜곡이 시작되었을까?

바로 홍순칠이다. 현재 많은 곳에서 독도의 살아 있는 역사로 이용되고 있는 홍순칠이 쓴 수기 '이 땅이 뉘 땅인데!'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맞는게 거의 없다.

 

"9할이 사기다. 아니 99%가 사기다." 울릉도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얘기이다.

독도문제개론(외무부), 조사보고서(경상북도 경찰국), 병적증명서(국방부), 경력증명서(울릉경찰서).... 등등 국가기록이 증명한다.

 

홍순칠이 제2의 안용복으로 그려놓은 할아버지 홍재현의 실체는 조선총독부관보, 친일단체인 동민회가 발행한 '동민회보' 등으로 친일 부역자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홍순칠이 수기에 자신의 공적으로 써놓은 19537월의 헤쿠라호 사건이 한국 정부(외무부 발행 독도문제개론)의 기록에는 울릉경찰서 독도순라반의 공적활동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사건의 주인공 가운데 한 분인 "최헌식"가 아직도 울릉도에 살고 계신다.

 

홍순칠은 수기에 '감옥살이' 5번이라고 썼다. 홍순칠의 부인 박영희(이사람도 가짜 대원, 경상북도 경찰국 조사보고서)5번의 감옥살이 진실을 알고 있다, 홍순칠의 가족에는 불행한 일이지만 수기의 내용은 거짓과 미화로 점철되었고 사실과 다르다.

 

수기에 있는 홍순칠의 병적 내용 특무상사 제대, 기갑연대 입대도 거짓말이다.

홍순칠은 19496월 입대, 625전쟁 고작 4개월만에 부상(원산전투), 후방 병원에서 치료하고 19527월에 특무상사로 제대했다고 했다. 국방부, 군사편찬위원회, 군사전문가 등에 문의해본 결과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아무리 전공이 많아도 1계급 특진, 아주 특별한 경우 2계급 특진의 사례가 있을 뿐이다. 한국전쟁 당시 공군사병으로 입대했는데도 전투기 조종사로 근무했다고 주장하는 독도의병대(경북 구미 소재) 윤상현 대장도 이런 케이스이다.

 

홍순칠의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떠드는 홍순칠의 조카는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 연구원이다. 이 사람은 홍순칠의 수기를 말하며 이렇게 말했다.

'국가기록이라고 다 옳은게 아니다.' 국가의 녹을 먹는 사람이 국가의 기록이 옳지 않다니... 이게 대한민국 독도의 현실이다.

 

국가의 공을 자신을 공으로 둔갑시키고 3대가 지킨 독도지킴이 집안이라고 떠드는 홍씨 일가의 죄악은 이미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의 1950년대 경비사는 홍순칠의 역사로 되어 있다.

국가의 역할은 사라지고 홍순칠과 가짜 의용수비대원의 역사만 남아 있다.

 

2005816, 독도의용수비대원으로 독도에서 일본과 진짜(!!)로 싸웠던 분들이 국가보훈처를 방문해서 진실 규명을 요구했다.

"독도의용수비대 활동기간은 38개월이 아니라 8개월이다. 33명 중에 10여명은 독도에 한 번도 가본적이 없는 가짜들이다."

"진실을 밝혀 달라." 김영호 대원의 유언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울릉경찰서 독도순라반 최헌식씨 '헤쿠라호 사건' 증언

 

(울릉도=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1950년대 초반 독도로 작업 나간 어민들이 일본 순시선에 의해 쫓겨났다는 신고가 한 달에 한 번꼴로 들어왔습니다. 조업 중인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이 수시로 직접 독도에 나갔습니다."

 

7일 울릉도에서 만난 최헌식(89)씨는 고령에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옛 기억을 풀어나갔다.

 

당시 울릉경찰서 소속 독도순라반의 반장(경사)이었던 최씨는 "순라반이 독도에 접근한 일본의 순시선 헤쿠라호를 위협하며 쫓아냈다""배 안에서 일본인 선장과 담판 지을 때 나눈 얘기, 앉은 자리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이른바 '헤쿠라호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한국전쟁으로 혼란한 시기였던 1950년대 초반에도 정부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최씨의 증언은 민간인으로 구성된 독도의용수비대가 19534월 창설돼 38개월간 독도에 상주했다는 기존에 알려진 사실과 다소 차이가 있다. 그동안 정부와 경상북도, 울릉군 등은 독도의용수비대장 고() 홍순칠씨의 수기를 근거로 의용수비대가 헤쿠라호를 격퇴했다고 공식 인정해왔다.

 

그러나 외무부가 1955년 발간한 '독도문제개론'은 독도순라반이 헤쿠라호를 물리친 것으로 기록돼 있어 의용수비대의 활동 내용과 기간이 과장됐다는 논란이 지속돼왔다.

 

최씨는 "당시 일본은 수시로 '시마네현 다케시마'라고 적힌 말뚝을 박아놓고 가거나 시마네현 명의로 '이곳에서 무단 채취를 금한다'는 내용의 표지판을 세웠다""말뚝을 뽑아놓으면 또 심어놓고 가는 등 기 싸움이 치열했다"고 회고했다.

 

1953712일 최씨는 일본이 또 표지판을 세웠다는 주민 신고를 받고 당시 김진성 순찰주임(경위), 최용득 순경과 함께 독도로 향했다. 독도에 관심을 가진 초등학교 교사 2명도 연구차 동행했다.

 

'통통통' 소리를 내며 달렸다는 4.5t 목선은 독도까지 기상이 좋을 때는 7시간, 파도가 거셀 때는 89시간이 걸렸다.

 

최씨는 "200앞바다에 우리 배의 100배 크기(450t)의 일본 배가 있었다""안에 들어가 보니 자신을 일본 보안청장이라 소개하는 사람이 기자 20여명까지 대동하고 왔다"고 회고했다.

 

최씨는 당시 "조선시대에 안용복이 일본까지 가서 일본 정부로부터 독도는 조선의 영토라는 각서를 받아왔다""울릉도 능선에만 올라가도 독도가 보이는데, 대나무 하나 없는 섬에 다케시마(竹島)라는 이름이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이에 일본 선장은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보였다.

 

한참 승강이를 벌이던 중 밖에서 기다리던 김 주임이 배에 올라 고함을 치며 헤쿠라호를 영해 침범혐의로 나포한다고 말했다. 배가 달아나려 하자 기다리던 순경들이 M1 소총으로 위협사격했다고 최씨는 전했다.

 

지금도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에 대해 최씨는 "어불성설"이라며 "예나 지금이나 독도는 우리 경찰력이 미쳤던 우리 땅"이라고 강조했다.

 

※ 첨부 자료  다음 카페 <독도수호대 > 홈페이지 내용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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