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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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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서은영 - 서은영의 창작음악 심연(深淵)
  • 작성자국악방송
  • 조회수1545
  • 작성일2020.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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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은뮤직. 2020

 

    1. 독주해금과 타악을 위한 '마른비나리' 1악장 <비나리> 07:19
    2. 독주해금과 타악을 위한 '마른비나리' 2악장 <발원문> 05:32
    3. 독주해금과 타악을 위한 '마른비나리' 3악장 <고사덕담> 06:04
    4. 해금과 Cello 그리고 타악기를 위한 'Patrick S?skind' 1악장 05:20
    5. 해금과 Cello 그리고 타악기를 위한 'Patrick S?skind' 2악장 07:23
    6. 해금과 타악기를 위한 Mirror-rorriM 14:20
    7. Abyss-a bottomless 15:47

 

 

♬ 음반소개

 

깊은 심연에서 길어 올려, 온 마음으로 만든 해금 음악,
그것 자체로 서은영의 브랜드가 되었다.

서은영의 음반 <심연>의 첫인상은 깊고 진한 모더니즘이다. 더욱 신비하고 오묘한 해금 음악의 세계를 구축한 이 음반은, 깊은 내면의 세계에 켜켜이 쌓인 음악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마음의 심연 속에 깊이 간직한 우울하고 소심했던 과거의 모습을 첨단의 해금 음악으로 고스란히 담아냈다. 마치 거울에 비친 현대인들을 보는 듯, 무의식 중에 비틀어진 자아를 보는 듯 드라마틱한 해금 가락 너머에 30년 음악 인생의 궤적과 더불어 미래를 조망하는 해금 연주자 서은영이 서 있다.

깊은 심연에서 길어 올려, 온 마음으로 만든 해금 음악은 그것 자체로 서은영의 브랜드가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자신과 결을 함께하는 작곡가들에게 해금 음악을 위촉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내 브랜드는 내가 만든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것으로 해석되는 일련의 작업은 2019년 10월 1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개최된 서은영의 열두 번째 독주회에서 방점을 찍었고, 그 모든 과정과 내용을 이번 음 반에 소중하게 담아냈다.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은 문화적 층위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강준일 작곡의 <마른 비나리>는 전통음악을 세밀하게 분석한 후 이것을 작곡가의 양식 속에 녹여낸 작품이고, 작곡가 장석진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극도로 꺼렸던 독일의 작가 파트리크_쥐스킨트의 복잡한 내면을 음악이라는 언어로 유추하여 해금 음악으로 작곡된 작품이다. 박영란은 일제 강점기였던 1930년대 현대인의 소외된 내면을 표현한 한국 현대 시인 이상의 시 "거울"(1933년)로부터 영감을 받아 분열된 두 자아를 음악으로 담아냈고, 그리고 이경은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연의 바다처럼 어둡고 무거운 카오스 안의 무질서한 음색의 간극을 해금으로 표현했는데, 서은영은 자신만의 음악 언어로 풀어냈고, 이것은 서은영의 산조로 완성되었다.

색깔이 다른 네 분 작곡가의 해금 작품은 음악적으로는 확연하게 다르지만 모두서사를 담고 있고, 섬세하며 단호함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흥미롭다. 각기 다른 복잡한 심리구조를 해금으로 소화해야 하는 서은영은 다른 배역을 연기해야 하는 성격파 배우처럼 순간 집중과 캐릭터의 변환이 요구되기에 극한의 경험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것을 놓아주어야만 신세계를 볼 수 있다는 점이고, 연습실에서의 고독은 우리의 성장판이라는 것이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해야 할 일을 할 때 인간은 자기보다 큰 존재가 된다.

한국 전통음악을 세밀하게 분석해 작품에 적용한 독특한 음악 스타일의 작곡가 강준일과의 만남은 해금 독주와 타악을 위한 <마른 비나리>(2012 위촉초연)로 완성되었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한국적 정서와 이것을 강준일 만의 양식 속에 절묘하게 녹여내는 작품 기법은 특별하다. 강준일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출신으로, 그의 음악 작품에는 물리학자가 한 이론을 완성해 가듯이 하나의 음악적 주제가 집요하게 수학적으로 연산되어 치밀한 조직으로 짜여 있다. 처음 받아 든 악보 속의 <마른 비나리>는 복잡한 음표의 어려운 현대음악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작곡가와 함께한 첫 번째 악보 리딩 미팅에서 치밀한 구조와 흐름의 파악하게 된 서은영은 작곡가의 천재성에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이 곡은 유경화의 타악과 만나 낯설음의 현대 음악이 아닌 치유의 '비나리'로 완성되었다. 비나리는 삶의 애환을 풀고 소원을 기원하는 소리굿이고, 노래 없이 악기 연주되는 비나리를 '마른' 비나리로 부른다.

작곡가 장석진의 해금과 첼로 그리고 타악기를 위한 <Patrick S?skind : 파트리크_쥐스킨트>(2019 위촉초연)은 사진도 별로 없고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던 독일 소설가의 내면을 그린 작품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극도로 꺼려서 상 받는 것도 마다했으며, 인터뷰도 거절한 은둔자로 천성적으로 우울하고 소심했던 작가는 친구들 사이에 있을 때는 유머도 구사하고, 와인을 마시면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했다고 전하는 인물이다. 강한 어조의 첼로(장은령)와 작정하고 어필하는 해금의 대결 구조가 서수복의 타악 연주와 함께했다. 근육질의 현대 무용가의 춤사위가 상상되는 강한 에너지의 음악이다.

현대음악을 아름답게 혹은 위트 있게 표현하는 작곡가 박영란의 해금과 타악기를 위한<Mirror-rorri M>(2019 위촉초연)는 1930년대 현대인의 소외된 내면을 표현한 시인 이상의 시 "거울"(1933년)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곡된 음악이다. 이 작품에는 분열된 두 자아 -거울 속의 나와 거울 밖의 나- 라는 설정으로 작고 가느다란 줄에 매달린 작은 소리로 시작되는데, 표현력이 강한 연주자 유경화의 타악 연주와 목소리 연기가 연극성으로 되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전과 고도의 집중력으로 중첩되는 치밀한 구조는 숨 막히는 슬픔과 더불어 극단의 아름다움으로 표현되었다.

서은영의 장점은 작곡가의 손을 떠난 악보의 음표 하나하나에 영혼을 불어넣어 꿈틀거리는 생명체로 만드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특히 이경은작곡가의 <Abyss - a bottomless>(2019 위촉초연)에서 극대화되었다. 작곡가가 그린 큰 그림에 살을 붙이고 유현과 중현 사이에 놓인 활과 손의 움직임으로 저음에서 고음을 넘나들며 서은영표 음악으로 완성하였다. 대단한 내공이다. 서은영은 작곡가들과 함께하며,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해금 현대음악의 소우주를 만들었다. 작곡가는 그녀 안에 있는 특별한 기운을 밖으로 표출하는 수단으로 작곡적인 기법을 사용하였고, 연주자는 안에 있는 자신을 발현시키는 작업을 혼신으로 연주했다. 작곡가는 양식의 실험으로서 접근했고, 연주자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고, 음악의 본질적 이유를 재발견하여 해금 음악의 생태계를 확장했다는 점에서 이 음반이 가치 있다.

서은영은 현대 해금 음악의 흐름에서 알레고리를 운용하는 구조와 방식의 진일보에 이바지했다. 그녀의 이러한 행보는 해금 연주자 개인의 노력을 넘어 해금 창작 음악의 지평을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다. 드라마틱하고, 강한 에너지의 현대 해금 음악을 찾는다면 이 음반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음악평론가 현 경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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