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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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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천지윤 - 천지윤의 해금 : 잊었던 마음 그리고 편지
  • 작성자국악방송
  • 조회수230
  • 작성일202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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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금. 2022

 

    CD1

    1. 산유화
    2. 진달래꽃
    3. 자장가1
    4. 엄마야 누나야
    5. 월정명(月正明)
    6. 잊었던 마음
    7. 자장가3
 

    CD2
    1. 그네
    2. 고풍의상
    3. 달무리
    4. 나그네
    5. 편지
    6. La Memoria de Yun Isang 
    7. 새야새야

 

 

♬ 음반소개

 

해금으로 노래를 ‘연주’한다는 것

‘노래를 부른다’라는 말은 자연스러워도 ‘노래를 연주한다’라는 말은 조금 낯설다. 하지만 ‘부르는 노래’와 ‘연주하는 음악’은 서로 몸을 섞고 교감하며 음악의 역사를 일구어왔다. 일례로 모차르트가 남긴 오페라 속의 아리아는 그의 협주곡이나 실내악곡으로 녹아들었고, 악기를 위해 태어난 선율들은 오페라 속의 노래로 안착했다.
이번 음반은 천지윤이 해금으로 연주한 김순남과 윤이상의 가곡이 각각 5곡씩 담겨 있다. 두 작곡가의 존재를 인식하지 않고 마냥 들으면, 어느 순간 천지윤의 창작곡처럼 다가온다. 그의 해금이 김순남과 윤이상이 펼쳐놓은 선율의 길을 그대로 따라 걷지 않기 때문이다. 해금과 함께 하는 클라리넷(여현우), 기타(박윤우), 피아노(조윤성)도 해금의 갈지자 걸음에 보폭을 맞추고 있다.
누군가는 이 음반이 가곡의 선율을 단순히 악기로 재연(再演)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이럴 때 악기는 노래의 선율을 모방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천지윤의 해금은 다르다.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 푸른색 염료는 쪽에서 얻지만 쪽보다 더 푸르다는 의미처럼, 김순남과 윤이상의 가곡으로부터 나온 음악이지만, 천지윤의 음악과 연주는 가곡들보다 어떤 분위기와 소리의 향기를 더 많이 지니고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가곡은 시어(詩語)와 함께 태어난다. 작곡가들은 가곡을 지을 때, 시에 탐침을 밀어 넣어 노래로 태어날 가능성을 일깨운다. 한편 선율의 기둥을 세운 미완의 집에 시를 초대하여 노래의 집을 완성하기도 한다. 세상의 가곡들은 보통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태어났다. 따라서 가곡은 음악과 문학이 공존하는 집이다. 성악가에게 이러한 가곡은 ‘부르는 노래’이자, ‘읊는 시’이다.
가곡을 악기로 연주할 때, 가사와 시어는 사라진다. 악기에는 입이 없기 때문이다. 악기는 가사가 떨어져 나간 반쪽짜리 가곡을 자신의 소리로 연주할 뿐이다. 하지만 가곡에 매료된 음악가들은 떨어져나간 가사가 남긴 공백을 그냥 두지 않았다. 그 공백에 인간의 목소리가 낼 수 없었던 특별한 선율이나 화성, 꾸밈음 등이 만개하도록 했다. 슈만의 가곡 ‘헌정’을 피아노로 연주했던 리스트는 리케르트의 시까지 챙기지는 못했지만, 가사가 사라진 곳에 자신만의 상상력을 녹여 넣어 세상에 두 곡의 ‘헌정’이 공존할 수 있도록 재창조했다. 비단 서양음악뿐만 아니다. 한국 전통음악의 역사를 살펴보면 노래에서 태어난 곡들이 많다. 사람들은 노랫가락을 악기로 연주하다가 가사를 덜어냈다. 사람의 목소리를 위해 태어난 곡은 이렇게 악기를 위한 음악을 자리를 잡았다. 오늘날 창작국악을 위한 창조적 원료로 사용되는 산조(散調)의 탄생 내력도 이러한 과정과 역사를 품고 있다.
천지윤의 해금은 김순남과 윤이상의 가락이 품고 있는 가사까지 노래하진 못한다. 하지만 ‘가사 없는 노래’의 공백을 그녀는 마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오히려 해금은 가사의 옷을 벗은 선율들을 모티프로 삼아 자신만의 노래를 만들어 부른다. 그래서 김순남과 윤이상의 원곡에 천지윤의 해금-노래도 함께 흐른다. 그 노래는 어쩌면 천지윤이 해금으로 부르고 싶은 노래였을지도 모른다. 김순남과 윤이상가 만든 노래의 숲길로 걷는 척하다가 자신만의 길을 내는 천지윤의 발걸음… 다 불린 가곡이 선율의 잔상을 남기고, 시어의 아름다움을 남기듯, 천지윤의 해금-노래가 끝나는 자리마다 ‘천지윤의 노래’가 남는다. 이 음반이 지닌 매력이다.
또 다른 매력은 천지윤이 들려주는 해금-노래의 ‘자연스러움’이다. 이 음반에 수록된 김순남의 ‘자장가’를 개인적으로 처음 들었던 것은 가야금 앙상블 사계(四季)가 발매했던 2001년 음반을 통해서였다. 25현 가야금과 22현 저음가야금이 피아노를 대신하고, 사계의 멤버 조수현과 송정민이 노래를 부르도록 편곡된 음악이었다. 가야금 소리는 피아노 소리보다 헐거웠고, 그 위에 얹어진 노래는 잠든 아이의 옅은 심장 소리와 결을 같이하듯 잔잔하게 흘렀다. 하지만 훗날 소프라노나 테너가 부른 ‘자장가’를 듣다가 깜짝 놀랐다. 테너가 서양식 성악 발성으로 음악회장을 가득 채우며 부른 ‘자장가’는 더는 잔잔한 노래가 아니었고, 자장가에 스며 있는 밤의 소리도 아니었다. 오늘날 윤학준?최진?이원주?김효근 등의 작곡가들이 발표한 2000년대의 한국 가곡이 인기를 얻게 된 데에는 과거의 이러한 풍을 벗어버리고 대중과 쉽게 호흡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노래’의 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음반에 담긴 천지윤의 해금-노래는 성악가들의 노래와 달리 자연스러운 흐름과 공기를 품고 있다. 성악가들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열기’보다, 천지윤이 쥔 두 현 사이로 숨 쉬는 ‘온기’를 통해 김순남과 윤이상의 노래가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그 온기는, 정치적 ‘냉기’로 인해 멀어졌던 두 작곡가를 일상의 음악으로 끌어오는 ‘온기’이기도 하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월간객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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