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황(笙簧) >
17개의 가느다란 대나무 관대가 통에 동글게 박혀 있는 다관식 관악기이다. 포부(匏部), 공명악기(空鳴樂器, aero- phone)로 국악기 중 유일한 화음악기 이다. 아악기(雅樂器)로 아악 외에 당악과 향악에도 편성되었고, 조선 후기에는 풍류방에서도 연주되었지만, 농음(弄音:하나의 음을 흔들어서내는 기교)을 구사 할 수 없는 한계가 우리 정서와 멀어져 자생력이 약했다.
수서(隋書)와 당서(唐書)에 생황이 고구려음악과 백제 음악에서 연주되었으며, 통일신라 상원사(上院寺) 범종(梵鍾)과 봉암사(鳳巖寺) 지증대사적조탑(智證大師寂照塔)에 보인다.
고려사에 고려 예종 때 북송으로부터 연향악에 쓸 생(笙)과 제례악에 쓸 소생(巢笙), 화생(和笙), 우생(竽笙)이 들어왔고 문종 때는 생을 가르치는 악사인 생업사(笙業師)가 왕립음악기관에 있었다.
조선 초기만 해도 몸통에 꽂힌 죽관(竹管)의 수에 따라서 13관의 화, 17관의 생, 그리고 36관의 우 이렇게 세 종류가 있었으나, 후기에 이르러 17관의 생황이 널리 연주되었고 현재까지도 이 생황이 연주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생황은 일본의 쇼(笙, shō)나 중국의 쉥(笙: shêng)과 역사적으로 서로 관련되고, 입으로 부는 오르간(mouth organ)으로 영역되며, 현대음악 따라 24관, 36관, 등으로 개량 되고 있다.
악학궤범에 의하면, 회례연(會禮宴)의 등가와 헌가에서 연주되었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황엽장(簧葉匠)의 사망으로 생황을 만들 수 없어 동지사(冬至使)가 북경(北京)으로 떠날 때 악사(樂師)를 동행시켜 중국 북경에서 구입하여 사용한 기록이 악장등록(樂掌謄錄)과 영조실록에 전한다. 조선후기 진연(進宴), 진작(進爵), 진찬(進饌) 때 생황 연주가 여러 의궤(儀軌)에 나오며,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의 풍속도(風俗圖)에서 민간에서도 널리 연주됐음이 확인된다.
현재 단소와의 병주, 즉 생소병주로 수룡음(水龍吟:기녀들이 포구희(抛毬戱)를 하는 모습), 염양춘(艶陽春:무르익어가는 봄)과 같은 곡에서 연주되며 시대 분위기에 어울려 독주 악기로 발전 하고 있다.
◼ 생황의 구조
몸통과 취구(吹口), 죽관 세 부분으로 구성됐다. 연주자가 취구로 바람을 불어 넣고 죽관의 지공을 막으면, 나무로 된 공명통에 연결된 쇠청에서 만들어진 금속 음색이 다시 대나무관을 통과하면서 아주 미묘하고 부드러운 음색을 낸다. 동시에 두 음 이상의 음을 내는 화성효과를 낸다는 점도 아주 특별하다.
• 공명통
본래의 재료는 박이었다. 8음 분류법에 따라 포부에 들지만 습기에 약하고 잘 깨지는 성질 때문에 박 대신 나무로 만드는 경우가 많아졌고. 최근에는 금속제 통을 많이 사용한다. 또한 옛날에 바가지였기 때문에 아악기 8음 중 포부(匏部)로 분류한다.
• 취구
부리 모양으로 통 가운데 달려 입김을 불어 넣는 곳으로 구리 또는 나무로 만드는데, 길이와 모양은 여러 가지이다.
• 관
오죽의 속을 파내 만들고 여러 개의 관대는 두석(놋쇠)으로 띠를 만들어 한데 묶는다. 통에 꽂은 관대의 길이는 대개 음높이에 따라 들쭉날쭉한데, 관의 길이가 같은 경우에는 지공을 뚫는 위치를 달리한다. 관의 길이가 서로 다른 모양은 봄볕에 돋아나는 초목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봉황새의 날개에 비유되는 경우도 많다.
• 쇠청
관대 밑 부분에 백동과 놋쇠로 만든 쇠붙이로 된 떨림판(황簧,reed)으로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이 쇠청이 울린다. 쇠청을 붙일 때에는 녹각을 태운 것과 밀(꿀벌 집을 끓여 짜낸 기름) 등을 함께 끓여 만든 재료로 사용한다. 이렇게 만든 특수 접착제는 밀을 섞는 농도에 따라 생황의 음정을 바로 잡는 기능도 한다.
• 지공
통 약간 위쪽에 위치하는 관대에 구멍을 뚫은 것으로 손가락으로 이 구멍을 막으면 소리가 다르게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