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50여년 전 어느해 늦은 가을 -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4-5학년 쯤이었던 같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 오니 어머니 혼자서 마당에 콩을 잔뜩 널어 놓고 타작을 하신다.
책 보따리를 마루에 던지고 부엌에 들어가 먹을게 없나? 찾아 보니 가마솥에 고구마가 한 가득이다.
학교갔다가 돌아 오면 항상 배가 고픈것을 예상한 어머니의 선물이다.
(당시 서울 아해들은 뻔데기로 군것질을 했다. - 김상국이 부른 '쾌지나칭칭'을 들어 보면 알 수 있다)
고구마 몇개로 허기를 지운 다음, 어머니 곁에 앉아 콩 타작을 같이 했다.
모자(母子)가 도란도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 우리 동네 '할딱새'라고 불리는 아저씨가 고삿길을 지나 가신다.
'엄마, 저기 할딱새 지나가시네요' - 내가 조용히 말했다.
내 말을 들은 어머니는 고삿길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앉으신다.
(할딱새 아저씨는 외지에서 들어 와 장터에서 돼지를 잡거나 동네 초상일을 거두는 일을 하셨는데, 머리 모양을 볼짝시면 머리카락을 쥐가 뜯어먹은 듯 듬성듬성...아무튼 웃기는 모습이다)
할딱새가 지나간 후 '저 아저씨는 왜 할딱새라고 그래?'하고 어머니께 여쭤 봤다.
어머니는 '호호호호' 웃으시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할딱새가 작은 각시(?)를 두었단다.
할딱새가 작은 각시한테 가면 흰머리가 있으면 늙어 보인다고 흰머리를 뽑고...
본 각시(?)한테 가면 검은머리는 너무 젊어 보인다고 검은 머리 뽑고...
그래서 머리가 듬성듬성 할딱새가 되었단다.
'사내가 작은각시를 두는것은 가래침보다 더 더러운것이란다' 하시며
콩 타작을 하며 잔뜩 먹은 먼지를 가래침과 함께 탁! 뱉으신다.
...
작은각시?
당시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지금 내가 작은각시를 둔다면...나도 할딱새가 될까?ㅎㅎㅎㅎ
산체스의 아이들 - 들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