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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 강혜경 / 연출 : 이세종
금 | 20:00 ~ 21:00

(()).천상에서도 들려주세요,
  • 작성자진아
  • 조회수1517
  • 작성일2018.02.01

[명복을 빕니다]천상에서도 들려주세요, 그 고운 ‘현의 노래’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
한국 음악사의 큰 별이 졌다. 황병기 선생은 신라의 춤 음악을 상상한 ‘침향무’나 페르시아 유리그릇에서 영감을 받은 ‘비단길’ 같은 작품을 작곡하고 연주하며 계승에 급급했던 우리 전통음악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큰 화두였다. 동아일보DB
‘춘설’은 멀었지만 선생은 ‘미궁’이 아닌 ‘비단길’을 향해 갔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이 31일 오전 3시 15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2세. 고인은 지난해 말 뇌중풍(뇌졸중) 치료를 받은 뒤 폐렴을 앓았다.

황 선생은 국악의 현대화와 세계화에 깊은 족적을 남긴 선구자였다. 1962년 사상 최초의 현대 가야금 곡 ‘숲’을 발표했고, 1975년 절규와 굉음을 담은 괴이한 대작 ‘미궁’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백남준, 존 케이지와 교류하며 현대예술의 새 활로를 찾아 나섰다. 허윤정 서울대 국악과 교수(거문고 연주자)는 “함께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늘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분이었다”며 “어르신의 권위나 무거움 없이 젊은이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명쾌한 해답을 줬다. 사유 방식을 가장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임희윤 기자(동아)

 

☞입춘과 겹쳤던 그해 설날은 쓸쓸했네!

 

90여년 전 설날 

 

1935년 동아일보 2월 5일자에 실린 설날 풍경.

그날은 입춘이었다. 그리고 설날이기도 했다. 1924년의 2월 5일.

한 해의 첫 절기인 입춘과 한 해의 첫날인 설날이 겹친 터라 ‘입춘대길’ ‘건양다경’의 글씨가 집집마다 내걸린 가운데 차례를 올리고 세배를 하고 떡국이 돌았다. 동지팥죽 먹을 때부터 설날을 기다린다는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설빔을 차려입었다. 집안 행사가 끝나면 동네 한 바퀴 세배를 도는 순례가 이어졌다. 그날의 서울 풍경은 어땠을까.

‘복조리 파는 소리와 악귀 쫓는 딱총 소리에 음력 섣달 그믐밤을 지새우고 초하룻날이 오자 서울 천지는 일시에 색동저고리 분홍치마의 꽃밭을 이루었다. 종로 일대 상가는 3분의 2 이상 문을 닫았고, 거리마다 고무풍선과 장난감 파는 시장이 열려 세뱃돈을 들고 소년소녀들이 어여삐 모여들었다.’(동아일보 1924년 2월 6일자) 

거기까지였다. 학생들은 평소처럼 학교에 갔다. 음력설은 공휴일이 아니어서 정상 수업이었다. 그래도 관습을 어찌할 수 없었던지 오후 수업은 적당히 생략하고 조기 방과하는 분위기였다. 직장인은 출근하는 날이었다. 그러고 보면 공휴일인 일본식 신정에 대비하여 구정이라 불리는 음력설은 모처럼 입춘과 겹쳐 반짝 성황인 듯 보였을 뿐, 실은 반쪽 명절이라는 점에서 예년과 별 차이가 없었다. 같은 날 신문의 또 다른 기사가 그 내막을 전한다.

‘어제 설은 정말 쓸쓸하였다. 마침 입춘이라 봄날같이 날씨가 화창하여 세배하러 돌아다니기에도 매우 편리하였으나 세배꾼도 별로 많지 않은 듯했고, 새 옷 입은 아이들도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보아 거리나 가정이나 모두 쓸쓸한 바람이 돌 뿐이었다.’

그믐날까지 남대문과 배오개 시장에는 설빔 반찬거리가 수북이 쌓이고, 종로 대로변에 허리띠 대님 댕기가 오색 찬란히 바람에 나부끼며 포목점 진열대에 주단이 휘황하게 시선을 끌어당겼다. 그렇지만 입춘대길의 설날은 한산하고 적막하게 지난 모양이다.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로 시작하는 동요 ‘설날’을 최초의 창작동요 작곡가 윤극영이 머지않아 만들어 낼 무렵이었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쯤은 모든 근심걱정을 잊어버리고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 먹고 마음 편하게 노는 것. 우리의 살림은 일 년에 한 번밖에 안 되는 그 설 놀이조차 만족히 할 수가 없다. 해마다 우리의 살림은 이렇게 졸아들기만 하고 늘어갈 기대가 도무지 보이지 아니한다.’ 만성 빈궁의 살림살이에 명절조차 전통 풍습대로 못 지내는 형편을 개탄함이었다.

설날인 듯 설날 아닌 이날의 울적한 심사를 대변하듯 슬픈 변고까지 겹친 날이었다. 오전 2시에 낙원동 어느 집에서 불이 나 잠자던 어린아이 둘이 희생되었다. 그 참사가 설날 기사들을 밀어내고 신문의 사회면 머리를 차지했다. 골목길이 좁아 소방대 활동이 여의치 못했던 점도 안타까웠지만 불이 난 원인이 사람들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날이 새면 입을 아이들의 설빔을 어머니가 밤늦도록 다리고, 불이 다 꺼지지 않은 숯불 다리미를 마루에 그대로 두었다가 불이 번진 것이라 했다.  

설날에조차 서울 사람들의 마음에 깃든 그늘이 있었다면 그것은 물질적 가난과 정치적 억압 때문이었다고 할 것이다. 물자는 귀하고 전통은 단절된 상황. 일상이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설날이라고 그리 즐겁지만은 않은 듯한 92년 전 풍경이다.

“눈 쌓인 정월 길을 밟으며 누이와 손목을 잡고 할머님 댁에 가서 되지도 않는 세배를 하면 둘러앉은 사람들은 하하 웃음소리를 낼 때, 나는 부끄러워 뛰어나오려면 할머님은 귤과 돈을 손에 쥐여주어 나는 더 큰 기쁨이 없었다.” 

1930년대에 극작가로 활약하게 되는 평양 태생의 주영섭이 어린 시절을 회고한 구절이다. 일제 초기만 해도 아직 덜 훼손된 설날의 전통이 수채화처럼 드러난다.

세월이 흘러 설날은 공식 설로 되돌아 왔다. 90여 년 전 그때 사람들의 소원대로 설을 보내게 된 지금 사람들은 매일이 설날 같은 먹을거리에 둘러싸여 지내며 연휴 기간에 국내와 국외를 이동한다. 전통의 향수와 전통의 구속 사이를 오가며 때로는 고향이라는 성지의 순례를, 때로는 인연이라는 족쇄로부터의 탈출을 벌인다. 그러면서 묻는다. 우리는 설날로 인해 행복한가.

집과 동네를 멀리 떠나지 않고 설을 맞은 궁핍한 시기의 사람들. 그들의 설날에 깃들었던 구속과 그늘에서 이제 우리는 벗어난 것일까. 한 세기에 걸쳐 우여곡절을 겪어온 설날이 지금 우리 곁에 머물며 변해가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오늘은 입춘. 또 설날이 돌아온다. 

박윤석 역사칼럼니스트·‘경성 모던타임스’ 저자

 


☞한복입은 어린이와 강아지         

    

 


한복입은 어린이와 강아지
서울=뉴시스김동민 기자 =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을 10여일
앞둔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마트 용산점에서 어린이 모델과
강아지가 한복을 선보이고 있다. 2016.01.28.


박형진의 시 입춘단상한 대목을 들어 본다.

천 원짜리 한 장 없이 용케도 겨울을 보냈구나

흘러가는 물방울에 봄이 잦아들었다.

 

이해인 수녀는 입춘일기에서 딱딱한 생각을 녹일 때

고운 말씨가 필요할 때라고 노래했다.

 

우리의 겨울이 추운 건 돈의 절대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돈이 제대로 돌지 않기 때문이다.

이웃을 경쟁 상대로만 여기는 딱딱한 생각때문이다.

로또 같은 대길을 바라는 허욕 탓도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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