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15일 스승의 날, 가랑비와 발비가 오락가락하며 대지를 촉촉하게 적셔주고 있었다. 종로 우리소리도서관 4층 강당은 강하면서도 깨끗한 서도소리 흥으로 가득 찼다. 5월 매주 토요일 오후 6시에 열리는 우리소리도서관 국악공연 시리즈 '한국의 소리Ⅱ 민요사색'의 첫 주 남도민요에 이어 두 번째 주 서도민요이다.
봄비가 오지 않았으면 우리소리도서관 5층 루프트탑(Rooftop)에서 펼쳐질 야외 공연이었다. 여덟 폭 모란 병풍을 배경으로 소리꾼이 서고, 조금 떨어진 옆으로 악사가 자리 잡았다. 소리꾼을 마주보고 나무마루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은 사람, 접이식 의자에 앉은 사람, 적당한 거리두기로 자리 잡은, 어린이 포함 20여명의 관객들은 소리꾼의 생생한 소리를 듣는 행운을 누렸다.
시조창에 좀 더 부드러운 음률을 실은 것 같은 한명숙, 박은혜의 ‘긴아리 잦은아리’, ‘연평도 난봉가’/ 한명숙, 박정욱의 ‘수심가’...
평안도 민요가 맑고 깨끗한 소리로 ‘아이고 아이고 성화로다’에서 ‘나나나 산이로구나’로 이어지더니, 조선시대 벼슬길이 막힌 평안도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떨림소리 가락이 가슴에 와 닿았다.
재담소리로 관서지방 판소리라 불리는 배뱅이굿의 아이보리색 도포에 합죽선을 펼쳐보인 박정욱 소리는 장구 하나를 어깨에 걸쳐 메고 편 채로 장구를 두들기며 부르던 이은관 소리와는 다른 매력이었다. 눈을 감고 들으면 스승의 목소리를 제자가 빼어 닮은 것 같은데, 박정욱의 소리에는 여유가 있어 가사말이 귓 속을 파고드는 묘한 맛이 있었다.
김영빈, 김종욱, 박희순의 떼 창 서도 통속민요 개성난봉가(박연폭포)와 양산도는 경기도 통속 민요에 비해 느리고, 백성들의 소리같은 남도 통속 민요와 달리 조선 선비들의 풍류 즐기기 같은 서도 통속 민요가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아 ~하~ 이것이 개성난봉가요, 양산도로구나! '그 이상의 감흥에 빠지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익살스러운 가사와 밝고 경쾌했던 박정욱과 박노환의 개타령은 단조로운 가락, 빠르지 않은 장단, 신명이 덜 하던 소리판에 단비가 내리는 것 같았고, 지금까지 음악을 감상하던 관객에게 음악의 흥에 끌려나오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모든 출연자와 함께 관객들도 손뼉 치며 ‘아리 아리~ 얼쑤 아라리~요, 아리랑 얼씨구 노다~ 가세’ 후렴구를 따라 부른 해주 아리랑, 조금 많이 격하게 내리는 봄비를 뚫고, 서도민요 공연을 즐기러 온 관객들의 가슴을 보람과 함께 행복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코로나 19 펜데믹으로 유튜브 채널 방송중계 환경 속에도 나는 이 자리에 있다는 우쭐함까지 덤으로 받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