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공연은 전문가의 눈높이에 맞추는 공연이 아니다. 일반 관객이 만족하고 행복을 누리는 공연이 좋은 공연이다. 2012년 12월 5일 ‘아리랑’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6주년 기념공연으로 2018년 12월 18일(화) 저녁 6시30분,한국의집 민속극장의 ‘진옥섭’ 원작 <판 아리랑>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참 좋은 공연 이었다.
정선아리랑을 모체로 아리랑을 이야기로 풀어내며 음악과 영상, 춤과 소리가 어우러져 표현해낸 종합예술의 멋과 아름다움으로 감탄과 감동이 넘쳐났다. 조금만 다듬으면 일회성 공연이아니라 장기흥행 작품이 될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었다. 우리 전통예술로 가득채운 또 하나의 중(中)극장 인기 음악극(musical)의 태동이었다.
연화무(蓮花舞)가 펼쳐지는 궁중에서 전달된 어명으로 정선 숲속에 전달되어 예단(禮緞)이 걸린 장송(長松)은 베어지고 나무꾼들의 목도로 아우라지에 옮겨져 뗏목으로 한강을 지나 1865년 경복궁 중건에 사용된다. 경복궁 중건에는 팔도 인부들이 동원되고 이들의 노동요(勞動謠) 속에 뗏목과 함께 경복궁 중건 현장에 묻어온 ‘정선아라리’가 있었고 ‘정선아라리’는 입과 입을 통해 각 지방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뗏사공들은 아우라지에서 영월까지 1,000개, 마포까지 10,000개 주막 색시들에게 ‘정선아라리’를 가르쳐주었고 이들 주막색시 중 일제 강점기 ‘전산옥(全山玉)’은‘ 정선아라리’를 잘 불러 인기가 최고였다. 1926년 영화 ‘아리랑’은 이 땅 전체에 한을 풀어냈고 6,25 전쟁은 ‘아리랑’을 영어로 세계에게 알렸다.
베어진 장송을 목도질 하며 부르는 소리꾼의 ‘목도소리’와 ‘운재소리’에 흥을 실어주던 춤꾼들이 양손으로 두들기는 북소리에 취한 내 모습은 현장에서 함께 땀을 흘리고 있었다. 뗏목 위 사공의 ‘긴 아라리’는 무대 앞뒤에 설치된 막에 영상으로 그려져 굽이굽이 흐르는 물줄기에서 출렁이는 진짜 뗏목을 타고 울리는 것 같았다. 화려하며 신명 넘친 ‘한국의집예술단’ 오고무(五鼓舞)와 그 앞에 펼쳐지는 경복궁 중건 모습 영상이 어우러지며 그때 그 현장이 머릿속에 웅장하게 그려졌다. 주막색시들의 씰룩거리는 엉덩이와 요염한 몸짓에서 풍기는 싸구려 분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았고, ‘전산옥’의 구성진 정선아리랑은 뗏사공이 흥청망청 뿌리던 돈의 매력이 묻어났다.
하얀 무명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칠순을 훌쩍 넘긴 ‘김남기’ 명창이 소동(小童)의 손을 잡고 들려준, 우리 귀에 익숙한 오선악보 ‘정선아리랑’이 아닌 소중한 우리소리 ‘정선아라리’는 탁한 ‘정선아리랑’소리에 쪄들었던 귀를 맑게 했다. ‘판 아리랑’ 전체 놀이판에서 현실감 있는 몸짓을 보여주며, 때 창으로 들려준 ‘정선군립아리랑예술단’ 정선 민요들의 아름다운 소리가 아직도 귀가에 맴돈다.
극의 흐름 따라 이야기 속 한 장면을 채우고 몸을 뉘어 허공에서 한 바퀴 돌고 또 돌아내며 감탄을 자아내던 자반뒤집기와 현란한 하얀 줄 상모가 하늘에 황홀한 그림을 그려내며 고개가 따라 움직이게 만든 상모놀이까지 ‘연희단팔산대’의 풍물 굿 한판은 ‘판 아리랑’의 백미(百媚)이었다.
시대흐름과 함께하는 다양한 아리랑들이 LP 판에 담겨 DJ의 손끝에서 춤추는 소리에 이어서 우렁찬 풍물가락이 울려 퍼지며 4명의 소고잡이가 무대 위를 날았고, 앙증맞은 소동(小童)이 12발 상모를 돌리며 관객의 박수를 유도했다. 이렇게 잦아드는 풍물가락 따라 약 1시간의 공연은 관객의 가슴에 희열을 가득 채워주며 막을 내렸다.
일반관객은 세심한 음률의 변화를 잘 알지 못하며, 작은 춤 동작 하나하나를 발견 하지도 않으며, 반 박자 놓친 악기 소리도 듣지 못하지만 무언지 알 수 없는 가슴을 가득 채워주는 기쁨의 포만감으로 최고의 만족을 누리고 행복하다 한다. 나는 이런 공연이 최고의 공연이라 말한다. 수많은 공연들이 전문가 그들만의 아집에 가려 일반관객의 행복과 멀어지고 있기에 ‘판 아리랑’이 더욱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