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를 듣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경연 과정에 어떤 곡이 출품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대상곡의 앵콜공연만 듣게 되었습니다.
경연시에는 다른 연주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실망이 커도 너무나 큽니다.
밴드의 비트에 피리가 장난스럽게 연주한 곡이 대상이라니....
재미있게 연주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그냥 장난스럽게 분 것으로 들릴 뿐 더 이상의 감흥도 없었고, 해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홍대앞 클럽에서 연주하면 딱 좋을 것입니다.
아니 홍대앞 클럽에도 저보다 훌륭한 곡 넘쳐날 것입니다.
이는 심사위원들이 문제였는지 되돌아볼 일입니다.
출품작 중에서 수준 미달이라면 당연히 상을 주지 말아야 했습니다.
취지에 걸맞는 작품이 상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작품들의 수준이 미달이라면 문을 닫아야 합니다.
허접한 작품들을 양산해내는 제도를 계속 유지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되돌아보면 한국음악이 대중성을 찾아야 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이런 작품이 선정이 된 것은 대중성이 대한 고뇌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국악기가 들어간 강병철과 삼태기가 연주한 '강원도 아리랑'으로 들렸을 뿐
그 시절의 음악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음악이 21세기 한국음악을 대표하는 곡으로 인정해야 하는 현실은 대중성을 얻어야 한다는 국악계 내부의 반성에 어울리지 않는 대중음악에 대한 단순한 항복 선언 이상의 의미가 없습니다. 이렇게 항복함으로 대중성을 얻을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전통음악 선율이 들어간다고 안심하기에는 작품의 완성도 마저도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21세기 한국음악 프로젝트는 미래 한국음악의 길을 제시하고자 하는 공모전 이라고 생각합니다.
항복이 아닌 길을 열어줄 수 있는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국악의 미래에 대한 무책임한 결정에 희망을 놓아버릴 수 밖에 없었음을 한탄합니다.
이제 국악의 미래는 국악 안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일까요?
우리의 미래를 찾아달라고 조아리며 각종 지원의 보호 아래 또와리를 트는 이기주의가
우리의 미래를 좀먹고 있지 않은지요?
스스로 찾지 못하는 미래를 누가 책임져 줄 수 있을까요?
출품한 참가자 각자도 더 치열한 고민으로 좋은 작품을 선보여야 할 것입니다.
부디 수준 미달의 곡을 선정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땅한 작품이 없으면 지속될 이유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