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롱은 남산국악당 기획공연으로 ‘정가악회’가 2016년 12월 23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펼치는 국악공연이다. 우리전통 음악을 현대적 색채로 표현하여 대중문화 속으로 스며들고자 3년째 하는 노력이다. 정가악회는 가곡, 줄풍류, 판소리 등의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국악이 동시대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연구하며 실천하는 통로를 찾아 노력하는 젊고 수준 높은 국악단체이다.
국악에서 ‘평롱’은 전통 성악곡인 가곡의 하나로, 남창(男唱)과 여창(女唱)에 두루 불린다. 슬프고 애타는 느낌을 주는 계면조(界面調)로 긴 시조시를 노랫말로 사용하기도 하고, 거문고, 가야금, 해금, 대금, 세피리, 장구, 북, 징 등의 관현 반주에 맞추어 독창으로 부른다.
정가악회 ‘평롱’은 한문으로 뜻을 풀어 “그 편안한 떨림”이라 해석하고, 국악 평롱의 형식과 구성, 노래와 연주 형태를 차용하여, 사람살이 삶의 이야기를 시작, 만남, 고독과 그리움, 방황, 소망, 사랑, 돌아감, 7개의 시간공간으로 구분하여 3D 영상 맵핑(mapping)을 배경 화면 삼아 국악으로 보여주었다. “떨림”이란 표현은 시간 공간 속 격변의 삶을 표현한 것 같다.
“악(樂)이란, 하늘에서 나와서 사람에게 깃든 것이요, 허(虛)에서 발하여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피와 맥박을 뛰게 하고 정신을 유통케 하는 것이다.” 무대 뒤 모든 벽면에 태초의 세상이 열리 듯 빛과 별이 쏟아지며 악학궤범 서문이 화면에 수를 놓았다. 수사(修士)같은 복장의 연주자들이 무대 위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두들기는 북과 장구의 둥둥거림은 무대를 짓누르며 뜻을 알 수 없는 노래 소리가 이어지는 환상적 중량감은 관객의 숨소리마저 멈추게 하는 ‘시작’이었다.
거문고, 가야금, 소리북, 꽹과리에 2명의 여성 소리꾼이 주고받는 경서도민요 “긴 아리랑”에 담긴 ‘만남’/ 대금, 해금, 장구, 징, 두 개의 피리 선율에 화면을 채우는 춘앵무(春鶯舞)가 보여주는 ‘고독과 그리움’/ 양금, 대아쟁, 징, 꽹과리, 바라, 무악장구, 놋주발이 만들어내는 무악(巫樂) 음률에 현란하게 변하는 영상이 어우러져 저절로 떠올리게 하던 ‘방황’/ 가야금, 징, 바라, 무속장구, 놋주발, 화음에 “알리오 알리오 있고 내 맘을 알리오 있고” 소리의 반복이, 아직 끝나지 않은 ‘세월호’ 아픔의 기원 까지도 담아내는데 부족함 없었던 ‘소망’/ 생황과 피리가 하나 되어 어우러진 아름다운 음악 시간 ‘사랑’/ 25현 가야금, 산조가야금, 거문고, 해금, 아쟁, 대금, 피리, 생황, 장구, 바라, 소리북, 우리 관현악기 모두가 한꺼번에 쏟아내는 강렬함으로 밀어내던 ‘돌아감’/ 사람살이 삶의 이어짐이 음악과 3D 영상 맵핑을 통해 느낌으로 피부에 와 닿았다.
주변에서 쉽게 접하던 사물놀이가 우리 전통음악의 전부 인줄 알고, 어쩌다 TV에서 스치듯 경험했던 느린 궁중 음악의 답답함에 식상했던 일반인들에게 신선함과 새로움을 보여주었다. ‘국악’도 즐겁게 가까이 할 수 있는 음악이라는 것을 깨달게 하였다.
서양악기를 배제한 우리악기 편성이었지만 마치 서양음악 같이 표현되고 한편의 연극 같은 연출은 국악이 나아갈 미래를 보여주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3D 영상 맵핑의 화려함과 현실감이 담긴 이야기가 있어 관객의 집중도와 탐구심을 끌어냈었다.
하지만 약 70여분의 시간에 다양한 이야기, 큰 감동, 색다른 느낌, 쉬운 국악, 등 참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욕심이 앞서 아쉬웠다. 욕심이 과하다보니 7번째 음악 ‘길’은 2% 넘쳐 귀에 거슬렸고 연주의 화려한 기교, 창작음악과 다양한 편곡의 시도는 좋았으나 음악의 깊이는 부족하여 오래 기억될 음악이 없다는 것은 숙제로 남았다.
그렇지만 ‘정가악회’ 수준의 국악집단이 많지 않은 현실에서 이들에게 더 많은 찬사를 보내고 싶고, 더 따뜻한 애정으로 응원 하고 싶다, 즐거운 공연, 행복한 시간을 선물해준 ‘평롱’에게 커다란 박수와 함께 훌륭한 공연이었다, 칭찬하고 싶다.
더하여 ‘평롱’에 초대해준 ‘바투의상사디야’ 제작팀 모든 분께 고마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