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가고 봄 오는 3월1일 김대환님 가시고 오신 날” 한·일(韓日) 최고 음악인들이 미망인을 모시고 매년 올리는 헌정 공연이 벌써 13번째이다.
김대환은 7개의 채로 우리 악기 북과 징을 두드리던 한국 프리 째즈의 최고봉으로, 음악의 형식과 틀을 깨 ‘김대환 타법’이라는 새로운 음악 어법을 창조해낸 ‘Free music’의 선구자이며 독보적 타악(퍼커션) 주자였다. 가왕(歌王) ‘조용필’이 어린 시절 군밤 맞아가며 음악을 배웠고, 한국 '록의 대부'로 불리는 ‘신중현’이 ‘한국 그룹 사운드의 맏형’이라 부르는 사람이다.
한국문화재재단 “풍류”극장의 전면 하얀 스크린 아래 마당 형식 무대 좌측에는 드럼 한 대가, 우측에는 김대환이 타계 3개월 전에 썼던 ‘반야심경’ 작품 한 점, 그 옆에 김대환 생전 애마였던 흰색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가 놓여있었다.
장식이라 할 것도 없는 단촐하면서도 꾸밈 없는 무대였지만 국악 가요 국민가수 <장사익>, 해금 명인 <강은일>, 김덕수와 함께 ‘사물놀이’ 창시자인 꽹과리 명인 <이광수>, 한국 프리 뮤직의 창시자중 한 명인 최고의 트럼벳 연주자 <최선배>,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드러머이자 한국 드럼의 대부 <김희연> 어쿼스틱 기타 한국 최고 연주자인 들국화 객원 단원 <김광석> 일본 전통 악기로 횡적(橫笛) 가구라부에(神樂笛)와 일본 돌 피리 이와부에(いわぶえ)연주자 <요코자와 가즈야>, 일본 노가쿠(가면음악극) 오쿠라(大倉)류 북 반주자 <오쿠라쇼노스케>, 일본 춤 부토(舞踏)의 명인 <도모에시즈네>... 이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신기할 정도의 더할 수 없는 행복한 공연이었다.
‘한국문화의 집‘ 예술 감독이며, 국악계 한국 최고 입담가로 명인(名人) 명무(明舞)의 삶을 표현한 책 ‘노름마치’ 저자인 사회자 <진옥섭>은 작은 마당같은 평면 무대와 맞닿은 147석 다섯 줄 관람석을 꽉 채우고 뒷벽 따라 깔아놓은 30여석의 보조석, 심지어 무대 마당에 놓인 20여석의 방석까지 자리 잡은 관객들을 한 번의 입담으로 무대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3시간이라는 긴 공연에 사이다같은 언어의 마술로 관객의 즐거움을 한층 끌어 올렸다.
비나리로 고인의 명복과 관객의 만복을 빌어주며 시작을 알렸던 ‘이광수’가 ‘유인상’ 등 민족음악원 사물놀이 팀과 함께 화려한 가락의 춤으로 3,1절의 아픔과 차가운 겨울을 녹여 내던 뜨거운 열기는 아직도 나의 체온에 담겨 있다.
우리 중금(中笒) 소리가 우는 것 같은 가구라부에(神樂笛) 연주에 이어 강한 쇠 소리에 가까운 한 음의 높고 굵은 소리가 끊어지고 이어지는 돌 피리 이와부에(いわぶえ) 소리에 맞춰 퍼지는 독특한 구음소리가 어우러진 특별함은 전통을 지켜내는 예인 <요코자와 가즈야>의 멋이 담겨 있었다.
할리데이비슨 엔진소리를 배경 음악으로 비파와 기타의 특징을 연결하여 자신이 만든 ‘비타’로 화려하면서도 현란한 손놀림이 들려주는 자작곡 ‘구름 위에서 놀다’의 감미로운 소리는 <김광석>의 기타에 사람들이 왜 감탄과 감동하는지를 체험한 희열이었다.
아주 작은 일본 전통 장고 쓰즈미를 왼팔로 감아쥐고 오른손과 손가락으로 극히 단순하게 두들기며 간간히 “고호, 이야!” 주문같은 소리를 내지를 때마다 ‘경건함과 숙연함’이 가슴을 파고들던 <오쿠라쇼노스케>의 일본 향은 강했다.
커다란 전면 화면에 펼쳐지는 ‘김대환’의 생전 영상을 배경 삼아, 두 줄을 활대로 비벼 혼(魂)을 불러내고 잠든 백(魄)을 일으켜 세우는 귀성(鬼聲)의 울림 따라, 한숨, 한숨, 애련(哀憐)을 더한 <김창현>의 전자기타 소리가 더해진 <강은일>의 오묘한 해금소리는 몽환 속에서 숨소리마저 불편하게 했다.
양손에 두 개의 스틱(stick)을 들고 드럼을 두들기는 것이 아니라 드럼과 함께 춤을 추던 <김희연>의 아름다움은 환희였으며, 혀를 살살 녹이는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이 귀속을 파고들었다. 강은일과 김창현이 함께 한 리베르탱고(Libertango) 즉흥 연주는 열정적이고 감각적이며 감칠 맛 나는 탱고가 자유( freedom)라는 날개를 달고 날고 있는 모습이 그려지는 환상이었다.
일본 전통 예술인 노(能)와 가부키(歌舞伎)가 서양의 현대 무용과 만나 탄생한 ‘암흑의 춤’, ‘죽음의 춤’으로 불리는 <도모에시즈네> 부토(舞踏)는 죽음이란 주제로 아름다운 것만이 미(美)가 아니라는 확장된 무용 의식의 표현의 하나로, 징그럽고 흉물스러운 육체 동작이 역겨움과 허실한 웃음마저 자아내게 했지만 처음 접하는 신선함과 또 하나의 일본 문화를 깨우치는 현장이었다.
<최현배>가 ‘도모에시즈네’와 협주로 먼저 들려준 하모니카 소리에 빠져 아직 깨어나지도 못했는데, 30대 때 오른손을 다쳐 왼손으로 연주하는 80대 노장 의 트럼벳 소리는 힘찬 내디딤과 타오르는 막연한 희망이 담긴 기상 나팔소리가 아니었다. 오직 떠나가신 임에 대한 애환과 그리움이 담긴 무거움, 거침, 탁함의 연속 이었지만 그냥 아름다웠다. 악보도 없고 정해진 선율은 없어도 경이로웠고 숙연함은 ‘풍류’극장을 뒤덮었다.
붉은 색 나비넥타이를 매고 김광석의 어쿼스틱 기타 반주에 온 열정을 담아 관객의 마음을 훔쳐버린 ‘빛과 그림자’를 시작으로 ‘동백아가씨’ ‘봄날은 간다’ ‘봄비’ 노래에 인생이 실린 <장사익>의 소리는 13번을 올린 ‘김대환 추모 공연’의 힘과 사랑이 실려 있었고. 약 3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린 관객들의 요망을 풀어주었고, 함께 하는 기쁨과 행복을 가득 채워 주었다.
마지막으로 “정(正) 이월이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 오며는 이 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장사익의 ‘그리운 강남’ 아리랑을 따라 전 출연자와 관객이 하나 되어 열창하며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소리 소문내지 않고 작은 공간에서 조용히 열린 뜻있는 행사이었지만,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최고의 무대, 훌륭한 공연,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전석 ‘3만원’ 상징적인 관람료는 ‘헌정금’으로 쓰이는 뜻깊은 만남이었다. 이렇게 찬란한 보석 같은 위대한 공연을 좀 더 많은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누지 못한 여운을 남기며 벌써 내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