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현재 이야기하는 ‘ 국악(國樂) ’이란 단어는 광복 이후 1950년 1월 16일 국립국악원의 직제 공포로 구 왕궁(王宮) 아악(雅樂)부(部)가 국립국악원으로 개칭되어 ‘ 국악 ’이라 확립되었다 한다.
나는 국악이란? 소리꾼이나 노래하는 사람, 악기 연주자가 누구이든, 연주하는 악기가 그 무엇이든 누가 들어도 우리 음악이다, 하고 가슴에 와 닿고 느껴져야 국악 이라 생각 한다.
현재 국악인들과 국악 관심인, 국악 애호가들은 국악 선율 한 대목만 들어 있으면 국악, 국악인이 노래나 연주하면 국악, 국악기(개량 국악기 포함) 하나만 들어가도 국악이라 하며 그것이 시대 흐름이라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 한다.
국악도 그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시간에 따라 변하고 발전해야 하며 세계 음악과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행복한 ‘ 국악 “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한복이 시대 흐름에 따라 편리하고 다양하게 변하여도, 누가 보아도 한복인지 금방 알 수 있듯이 ‘ 국악 ’ 자체를 흔드는 변화는 없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닭 울음소리를 서양인, 아프리카인과 함께 듣고 이를 서양의 5선 악보로 표기하면 똑같이 표시는 되겠지만 각자에게 들리는 ‘ 닭 우는 ’소리와 느낌은 다르기에 음악을 표현하는 방법과 형태는 모두 다 같다 할 수 없다. 즉 국악은 국악만의 색깔과 특징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이후 서양음악 교육의 영향으로 서양음악에 익숙해진 국악인들마저 국악의 기준을 서양음악 기준으로 해석하며 서양음악 식으로 표현하고 서양 음악에 가까워야 생활에 편하다는 근시안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근본을 알 수 없는 창작음악이나 퓨전 음악이 우선 듣기 편하고 익숙하기에 국악이라 하며 점점 국악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또한 국악에 대한 학교 식 교육을 받지 않았거나 덜 받은 국악인 보다는 학교 식 교육을 받았거나 더 많이 받은 국악인 일수록 국악 파괴에 앞장서며 자신의 이름값 내세우기에 앞장서고 있다. 이것이 현재 국악의 아픔이며 심히 걱정 되는 국악의 미래이다.
국악이 외국음악 식으로 연주되더라도 듣기만 좋으면 국악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게다가 국악을 전통음악이라 지칭하는 것은 국악이 ‘ 박물관 전시품 이다 ’ 말 하는 것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국적을 알 수 없는 가치 없는 음악이 ‘ 국악 ’이라 지칭될 것이며 진정한 국악은 세계음악 속에서 하급음악으로 천대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기 전에 국악인, 국악 관심인, 국악 애호가, 우리 모두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잃어버린 ‘ 국악 ’의 제자리를 찾아야한다. 정확한 음 보다는 한 음속의 조화를 더 중요하게 표현하는 우리 음악 ‘국악’으로 되돌아 가야한다.
이제 서양인들은 자신들의 음악에 식상해 하고 경험해 보지 못한 더 좋은 음악, 새로운 음악에 환호 한다. 우리는 지고 있는 서양음악을 스스로 쫓아가며 열광하는 바보짓은 그만 두고 이들에게 아름답고 훌륭한 음악인 ‘ 국악 ’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이것이 ‘ 국악 ’ 사랑이며 세계화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