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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문화유산 시리즈

진행 : 길현주 / 연출 : 김정은
월~금 | 10:55, 19:55(재)

2020-05-01(금)남도문화유산 345회(국가등록문화재 제114호 목포 양동교회 (木浦 陽洞敎會))
  • 작성자남도문화
  • 조회수503
  • 작성일2020.03.31

남도 문화유산을 찾아서 

2020-05-01 () 10:55/19:55(재)

 

 

 

이 시간 함께 할 문화유산은 전라남도 목포에 있는 국가등록문화재 제114

목포 양동교회 (木浦 陽洞敎會)입니다.

목포 양동에 있는 이 오래된 건물은 미국 선교사 유진벨이 목포 양동에 설립했던 장로교회입니다. 선교사 유진벨의 한국어 이름은 배유지인데요, 1895년 한국에 파견된 이후 사망할 때까지 광주,목포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20여개의 교회를 개척한 인물입니다. 그는 1898년 봄 목포 양동에 천막을 치고 한국인 신도 20여명과 함께 예배를 시작하게 되는데요, 이것이 목포 양동교회의 출발이었습니다.

 

같은 해 11월에 의료선교사 오웬이 목포로 와서 합류하면서 교회는 더욱 성장했고 1903년에 3백여명의 교인들이 힘을 합쳐 예배당을 건립합니다. 이후 1906년 목포 부흥운동으로 교세가 더 확장되자 1911년에는 지금 소개해드리는 이 석조예배당을 완공하게 됩니다. 개항기 선교사들은 목포를 기독교 선교의 전진기지로 삼았는데요, 양동교회는 이곳에서도 가장 먼저 세워진 교회로 호남 지역 기독교 선교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 교회는 종탑과 예배공간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서양식 조적조 건물로, 교인들이 유달산에서 직접 날라 온 석재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1982년에는 교회 정문 앞에 있던 종각을 헐고 종탑을 새로 세웠습니다. 출입문은 원래 남녀 신자들이 다른 문을 이용할 수 있도록 측면에 2, 정면에 2개가 있었는데 종탑을 세우면서 1개를 없애고 지금은 3개만 남아 있습니다. 이 출입문 위쪽 부분에는 모두 태극문양이 새겨져 있는데요, 민족주의와 기독교가 결합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종탑 말고는 건축 당시의 외관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양동교회는 1919321일에 일어난 목포 3.1 만세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경필 목사를 비롯한 교인들이 영흥학교, 정명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시위에 나섰습니다. 20년 후에는 박연세 목사가 일제의 신사참배정책에 항거하다 투옥되어 옥중에서 사망합니다. 이렇게 양동교회는 우리나라의 초기 기독교 건물로서 건축사적 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당시 기독교의 사회참여활동을 짐작할 수 있어서 종교사적 가치도 큰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남도 문화유산을 찾아서...

이 시간 함께 한 문화유산은 전라남도 목포에 있는 국가등록문화재 제114

목포 양동교회 (木浦 陽洞敎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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