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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문화유산 시리즈

진행 : 길현주 / 연출 : 김정은
월~금 | 10:55, 19:55(재)

2020-06-19(금)남도문화유산 380회(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2호 수남학구당 (水南學求堂))
  • 작성자남도문화
  • 조회수460
  • 작성일2020.05.28

남도 문화유산을 찾아서 

 

2020-06-19 () 10:55/19:55()

 

 

 

이 시간 함께 할 문화유산은 전라남도 담양에 있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2

수남학구당 (水南學求堂)입니다.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분향리, 광주호 북쪽의 언덕을 조금 올라가다 보면 수남학구당이라는 공간에 들어서게 됩니다. ‘학구당은 유학자를 길러내는 유교 교육기관으로 다른 지역에는 없고 오직 이곳 담양에만 있는 특별한 명칭입니다. 담양 안에서도 수북면에는 수북학구당이, 이곳 고서면에는 수남학구당이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진흥정책에 따라 사찰을 건립했다가, 조선시대가 되면 배불숭유정책에 따라서 사찰이 있던 자리에 새로운 국가이념에 맞는 유교 교육기관을 건립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수남 학구당도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원래 이곳은 고려 말에 건립된 향적사(鄕績寺)라는 절이었지만, 조선이 건국되면서 폐사(幣寺)되게 되자 승려들이 모두 흩어졌다고 합니다. 이에 환학당(換學堂)이란 스님이 승려들을 다시 불러들여 공부했는데요, 훗날 제자들이 스승의 뜻을 받들어 이곳을 학문을 구하는 곳 즉 학구당이라 이름붙였다고 전해집니다.

 

결국 절은 폐사가 되었구요, 조선 중기로 들어선 1570년에는 창평에 살고 있는 25개 성씨가 함께 뜻을 모아서 이곳을 유교교육기관으로 중건합니다. ‘숭고한 도의(道義)와 국가의 문무정책(文武政策)에 따라 학업을 연구하고 유교의 기풍을 간직한다는 목표로 이곳의 명칭을 서원으로 바꿨지만, 광해군 때인 1619년에는 학구당이라는 옛 명칭으로 돌아옵니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중건을 거듭했는데요, 지금의 건물은 4칸 짜리 본당, 그리고 입구를 겸한 2층 건물인 4칸 짜리 강당으로 이루어 있습니다. 현재는 18개 성씨가 함께 운영합니다.

 

조선시대에 관학으로는 성균관과 향교가 있었고 사학으로는 성현에 대한 제향기능과 교육기능을 동시에 가진 서원, 초급교육기관인 서당 등이 있었는데, 이곳 담양에만 유독 강학 즉 교육에 특화된 학구당이 있었던 것을 보면 이곳의 높은 교육열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곳 수남학구당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불교에서 유교로, 즉 새로운 사회질서에 맞는 형태로 바뀐 유적이라는 점에서 당시의 정치·사회적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남도 문화유산을 찾아서...

이 시간 함께 한 문화유산은 전라남도 담양에 있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2

수남학구당 (水南學求堂)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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