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반락(盤樂), 사인사색(四人四色) 그 사람의 음반 이야기 두 번째 무대, 정혜원의 ‘나 홀로 판 더불어 소리’는 2010년에 시작하여 2012년 한 해만 거르고 지금까지 펼쳐졌던 무대에 오른 열 세분의 주인공들이 꾸미고 들려주던 무게감과 흐름에서 벗어나, 40년 조금 넘게 살아온 ‘정혜원’이 사랑하며 생활이 되어버린 ‘판소리’에서, 고르고 고른 소리들의 눈 대목을 짧게 들려주고 이 소리를 들려 준 명창이 누구인가를 밝혀주며 자신의 현재 모습을 보여준 특별한 음악 감상 시간이었다.
정혜원은 어린이 책을 쓰는 작가이지만, 특별히 내세울 스팩(specification)이나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로 ‘반락의 주인공’의 된 것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어느 날 TV에 나오는 창극 < 안향련의 춘향전>에 푹 빠져 보고 있는데, ‘아따, 어린 것이 뭘 안다고 넋을 놓고 보고 있다냐’ 할머니의 한마디를 기억 하듯이, 그냥 판소리에 빠져 이제는 자칭 ‘판소리 알림이’가 되었다. 반락 무대에 오른 것도 관객들에게 ‘판소리를 잘 알려드리자’ 오직 이 한 소망 이루기이었다.
대학 졸업반 때 우연히 들은 김소희 명창의 춘향가 중 ‘십장가’가가 “가슴으로 떨어지는 소리 ”같은 감동을 주어, 종로 신나라 레코드로 달려가 “판소리 음반은 어디 있어요.” 하고 찾기 시작하여 이후 판소리 음반을 모우고, 해설서를 통해 공부하고, 완창 판소리를 들으러 다니 며 오늘까지 왔다 한다.
정권진 명창의 북 반주에 박녹주 명창의 < 흥보가> 완창 테이프를 우편 주문하여 집에 도착하자 마당에 내던지시며 “니가 단골네 되려고 그러냐” 하시던 아버님같이, ‘씨김굿 소리와 판소리’를 구별 하지 못하고 ‘판소리’가 요즘 같으면 ‘트로트’ 같은 유행가로 취급 하는 세태(世態)를 넘어 자라나는 아이들 마음속에 ‘판소리’의 씨앗을 심고 싶단다.
판소리는 소리꾼의 마음의 한(恨)을 승화시켜 얻게 되는 소리 ‘그늘’/ 스승의 소리를 자신의 소리로 만들어 깨우쳐 얻는 소리 ‘득음(得音)’/ 사설과 곡조, 너름새 요소들이 이치에 맞고 조화를 이루는 ‘이면(裏面)’/ 판소리 명창들에 의하여 노랫말과 소리가 새로이 만들어지거나 다듬어져 이루어지는 ‘더늠’으로 이루어 졌는데, 이중 ‘더늠’은 소리꾼이 시대와 호흡하는 숨구멍 같은 것으로 이 ‘더늠’이 현대로 오면서 사라져서 판소리가 쇠퇴 하였단다.
더늠을 살리는 방법으로는 행방 전후부터 불리게 되어 지금은 거의 명맥이 끊어져버린 월북 명창 박동실의 ‘열사가(이준열,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와 ‘김유신 보국가’/ 박동진명창의 ‘예수전, 충무공 이순신전’등과 중견 소리꾼 임진택의 ‘백범 김구’/ 근래 활발하게 활동하는 소리꾼 패 ‘또랑광대’ ‘바닥소리’의 음반/ 소리꾼 ‘김명자의 수퍼댁 씨름대회 출전기’ 같은 창작 판소리가 되살아나고 더 많이 보급되어야 하기에 “판소리 홀씨 퍼트리기” 운동을 한다 했다, 이것이 ‘나 홀로 판 더불어 소리’이란다.
게스트(guest)로 출연한 박봉술 명창 손자인, 젊은 소리꾼 ‘박명언’의 단가 <사창화류(紗窓花柳)>와 <흥보가 中 박타령> 로 흥을 돋우며 막을 열어, 또랑 광대 이일규의 창작 판소리 ‘정자의 꿈’으로 막을 내린 약 2시간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까지 활약하며 판소리 오명창으로 불리는 송만갑(宋萬甲), 이동백(李東伯), 김창환(金昌煥), 정정렬(丁貞烈), 김창룡(金昌龍), 전도성(全道成)과 이날치, 은방울, 박동진, 성창순, 남해성, 안숙선, 오정숙, 박동선, 안해성, 임방울, 강도균, 정권진, 최승희, 성우향, 박송희, 정웅인, 심정순, 심화영, 정정렬, 등 수 많은 명창들의 이름이 가슴을 뛰게 하여 귀가 하여 발자취를 찾아보게 하였다.
더하여, 천구성 목소리를 가진 소리꾼으로 한 없이 올라가는 상성(上聲:고음)의 소유자로 37세에 요절한 ‘안향련(安香蓮)’ 명창의 1981년 창극 춘향전 속 ‘이별가’/ 청아하고 미려한 소리로 감정을 절제한 귀족적인 소리 김소희(金素姬) 명창의 춘향가 중 ‘십장가’ /김유정이 혈서를 보낼 정도로 사랑 했다던 박녹주(朴綠珠) 명창의 춘향전 중 ‘옥중장탄’ / 소리가 독특하고 배우기 어려워 따르는 제자가 없었다는 한승호(韓承鎬) 명창의 ‘적벽가’/ 성균관대 영문과를 졸업한 지식인 김연수(金演洙)명창의 춘향가 중 ‘신연맞이’/ 20대 초반에 독공을 하며 쉰 목을 너무 무리하게 쓴 탓에 소리가 꺾이어 상성이 잘 나지 않아 엄청난 독공으로 상성을 가늘게 뽑아내는 희성을 개발해 이 성음으로 소리를 하면 무대 객석 뒤까지 선명하게 잘 들렸다는 박봉술(朴奉述) 명창의 수궁가 중 ‘ 범 내려오는 대목’/ 가야금 명인, 영화배우, 민요 가수, 가정주부, 등의 길을 버리고 여류 명창의 길을 선택한 한농선(韓弄仙) 명창의 단가 ‘편시춘’등 오래된 음반에서 들려오는 명창들의 최고의 소리는 감동의 숲에서 헤매게 하였고, ‘정혜원’이 왜 판소리에 빠져 버렸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천구성(天口聲) :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소리로 판소리의 기본 성음(聲音)인 수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맑고 고운 데다 애원성(哀怨聲:이별의 슬픔이 담긴 소리)이 끼어 있어, 높은 소리 혹은 슬픈 선율의 소리를 표현하기에 적절한 판소리에서 타고난 이상적인 성음,
※ 수리성 : 수련을 통해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소리로 판소리에서 쉰 목소리와 같이 껄껄한 음색의 성음을 가리킨다. 수리성은 웅장 쾌활한 성량, 웅숭깊고 신중하고 은은하며 너그러운 그늘진 성음, 치열한 발성에서 느껴지는 서슬 등의 미감이 잘 구현된 성음이다. “판소리는 수리성의 미학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판소리 초기 명창들이 주로 구사했던 성음의 특질은 맑은 소리를 더 높이 평가했을 가능성이 있어 수리성을 강조하게 된 것은 비교적 후대의 일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