冬至동지
코로나 변이 공포에 마음 둘 곳이 없지만 100년 전에
어릴적 동지 무렵 전해들은 할머니의 민박 이야기를
하고자합니다. 신작로 길옆에 동네 초입에서
길손이 어느 집에 가면 자고 갈 수 있는지 물으면
김 가주서 댁에 가보시오.
동지 무렵 해가 짧아서 저녁 8시경이면 오밤중이지요.
춥고 칠흑 같은 밤 주인장계시요? 계시요?
길손이 찾아와서 하룻밤 유하게 해 달라고 합니다.
겨울에는 밥이 금방 식으니 저녁지은 온기 가마솥에
보리밥이지만 꼭 서너 그릇 담아서 넣어 두셨다합니다.
반찬은 여러 가지 아니어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정성껏 대접 하셨다 합니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운송 교통 대중화로
재워 달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지금 민박은 돈이 없으면 할 수 없지요.
할머니는 손을 대접하면 몸은 좀 고되어도 나는 즐거움으로 하니 그리 피곤한 줄 몰랐다
아침에는 무시래기 된장국에 따뜻한 밥을 지여 손을
대접했었다.
지금 두 며느리에게 저는 덕을 자주 이야기합니다.
덕이란 말로만 덕이 아닌 몸을 움직여야 덕이다.
후손들에게는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람니다.
*추신 사담입니다. 1990년 중반까지 부모님 고향에 계실 때에
보따리 장사꾼이 찾아오면 식사 대접하고 자고 간다고 하면 재워서 보냈습니다.
면 부자는 못되고 동네 부자? 부유한 살림은
아니어도 나눈다는 정신 오래전에는 어디가나 다 그랬습니다.
김 가주서 댁은 1800년대 말 조부 문과 임시벼슬이 가주서여서
면에서 사람들이 그리 불렀다고 합니다.
저는 남에게 베풀지 못해 늘 후회스럽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