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국악산책에 조선에 과거에 대해서 방송을 들었습니다.
스승의 전한 말씀과 저의 집안에 내려온
구전과 지금 남아있는 기록으로 말씀드릴까 합니다.
최근에 일고에 가치도 없는 수 많은 말들이 판치는 지금의 세상은 빼고
적어도 1970년 대 이전에는 그래도 글이 대접 받는 시절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시골 동네 잔치가 있어도 초시한 분은 초시영감이라 하여 맨위에 상석에
대과급제 승정원에 주서 영감이 노년을 보낼 때에 신임 도지사가 인사를 오고
주위에서 전 주서 영감 두루마기가 때가 묻고 낡았다고 자식 흉보는 이도 있더랍니다.
스승이 전한 말씀입니다.
광서13년 1887 정혜 3월 18일 가주서입시 자상특선 감귤부 차아 우념궐지지
조부의 기록을 가지고 승정원 일기를 검색하고자 1994년경 서울대 규장각에
간 일이 있습니다. 6.25. 저의 고향 집이 전소 되었기 때문이지요.
1887 3.18일 신시 승정원 일기 내용
신시 상이 건천궁에 나아가 신은을 친히 받아았다.
입시 할때에 도승지 조병세등....등이 차례로 나아가 엎드렸다.
중략 선온을 행하였다 선온한 선비들이 차례로 전에 올라 사배하고 직책과
성명을 아뢰 었다.
손자들 데리고 건천궁 답사 계획 코로나로 계속 미루어집니다.
저에 문과 조부가 증조에게 논 열마지기 지금 이천평 동네 앞 옥토를
팔아달라고 했답니다. 지금 가격으로 친다고 해도 2억 정도 됩니다.
그 돈으로 벼슬아치들에게 잘보이기 위해 잔치 비용이라는 것입니다.
증조부 깜짝 놀라서 아들아 니가 참 대과 급제는 우리 집안 광영이나
조선이 곧 망한다고 하는데 어찌 조상 대대로 내려온 문전 옥답을
팔 수있겠느냐? 서 너 마지기 팔아 줄 것이니 그것으로 해봐라.
나주 촌선비가 한양가서 대과 급제 그 시절 한양 벼슬아치 자식들이 급제 독식하고
매관 매직 하던 시절 조부의 문과 급제는 믿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그 것도 18세입니다.
허망한 가주서 벼슬 조부의 한시가 전합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가주서 출신입니다.
제목 무제
韓尉 調官 十日乍
燕玉 在外 萬里遠
爐中 老火 藏灰宿
惣外 寒風 挾雪驕
해설은 송교수님께서 석학이시니 해설은 생략합니다.
즉 미관 말직 조선의 패망 허망한 인생의 한탄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