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문과와 무과 과거시험 급제자(及第者)에게 임금이 하사하던 종이꽃. 급제한 사람의 이름을 적은 방(榜)을 발표할 때(=方榜儀, 唱榜儀), 홍패(紅牌), 개(蓋, 햇빛가리개)와 더불어 어사화를 하사하여 복두(幞頭:급제자가 쓰는 관冠) 뒤에 꽂게 하였다.
< 용재총화 慵齋叢話 >에 따르면, 2개의 참대오리 맨 다음, 이를 명주와 종이로 감는 도중에 밑 부분을 꽃받침으로 간주되는 커다란 종이로 함께 싸서 묶고, 위에는 군데군데에 다홍색, 보라색, 노란 색 종이꽃을 여러 개 붙여 꿰어 만들고, 대오리가 각각 벌어지도록 하였다. 길이는 175,5cm 이다.
급제한 사람(문과 33명, 무과 28명)은 이러한 어사화의 한쪽 끝을 복두 뒤에 꽂고, 다른 한끝은 명주실로 잡아매어 머리 위로 휘어 넘겨서 입에 물고 3일유가(三日遊街)를 하였다고 한다.
※ 유가(遊街) : 과거 급제자가 광대를 데리고 풍악을 울리면서 시가행진을 벌이고 시험관,
스승, 선배 급제자, 친척 등, 그동안 신세를 진 어른들 을 찾아보던 일. 보통 사흘에 걸쳐 행하였다.
※ 은화(恩化은덕이 백성에게 미침.) : 임금이 베푸는 잔치인 진찬(進饌) 때 임금이 내린 꽃을 신하들이 사모(紗帽)에 꽂고 돌아가는 풍속이 있는데, 이것도 어사화라고 하며 창화(帽花), 사화(賜花)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