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창호에 드린 햇살’에 미안함을 올린다.
국립 극장 해오름 극장에서 4월 27일 ~ 29일 까지 무대에 올린 국립무용단의 ‘시간의 나이’는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안무가 ‘조세 몽탈보’가 연출하고, 국립무용단이 공연한 작품으로 작년에 초연되었고 이번에 다시 무대에 오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년에 즐기고 이미 후기를 남겼지만 ‘창호에 드린 햇살’에 공연관람 신청을 하여 선물을 받아 4월 28일 저녁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공연관람 신청 이유는 다시 오른 작품과 초연 작품과의 변화가 궁금해서였다.
하지만 28일 업무 일정이 늦어져 지인에게 관람권을 양도 할 수밖에 없었다. ‘창호에 드린 햇살’에 미안함을 전하며 저 때문에 관람 기회를 잃은 벗님들께도 죄송함을 올립니다.
이 마음을 담아 벗님네들의 이해를 위해 작년 저의 관람 후기를 남깁니다. 좀 더 많은 관심이 있는 임들은 저와 다른 시각으로 작품을 이해하시는 전문가 평을 국립극장 공연 소개 잡지 ‘미르’ 2016년 5월호 <이제 파리로 향한다, 국립무용단 ‘시간의 나이’>를 찾아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무용, 시간의 나이
한, 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2016년 3월 23부터 27일 까지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에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안무가 ‘조세 몽탈보’가 연출하고, 국립무용단이 공연한 작품이다.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라는 주제아래 프랑스인의 현대 정서 속에 우리 전통 무용이 어떻게 녹아내려 다가올까? 하는 궁금증이 앞서고, 현대무용의 난해함에 누가 보아도 눈에 들오는 우리의 무용의 특징인, 선(線)의 아름다움과 정(靜)을 중심에 두는 동적(動的) 화려함을 접목 시켜 과연 얼마나 감동을 받는 작품이 탄생될까? 하는 의문과 국립극장의 적극적인 홍보로 일찍부터 기다리던 작품이었다.
‘전통과 현대’는 서로 섞여 공존 하는 것이며, 무대에 등장한 우산은 ‘전통과 현대’ 각각의 시간을 서로 보호해 준다는 개념이고, ‘한량무, 부채춤, 살풀이’등 무용수 몸에 익숙한 한국 전통 춤을 새로운 개념의 표현 기법을 사용하여 색다름으로 보여주고, 관객들에게 호기심과 의문을 갖게 하여 스스로 기쁨과 즐거움을 찾는 안무에 대한 내레이션(narration)을 숙지한 작품이었지만 아무것도 생각해 내지 못한 채 지나가버린 약 70분의 시간 이었다.
현대 복장에 우리 전통 춤, 우리가락에 현대 음악 흐름, 나에게는 한마디로 실망 이었다. 마치, 한 작품을 올리기 위해 연습장에서 땀 흘리는 모습이었다, 특별한 메시지 전달도 없었고, 몸으로 표현되는 무용의 정체성도 희미했다. 군무가 주는 절제감과 통일성에서 뿜어나는 매력과 일체성도 돋보이지 않았고, 독무가 전달해주는 심오함과 상상력은 처음부터 빠져 있었다.
무용과 춤은 구별되어야 되는데, 춤을 무용으로 표현 하려하니 양장에 갓을 쓴 것 같은 어색함과 불편함만 공연이 끝날 때 까지 짓누르고 있었다. 우리 정서와 우리문화, 우리 춤을 잘 모르는 프랑스인들에게는 색다르고 신선하게 보여줄 수도 있겠으나, 수 천 년 우리 문화가 몸에 젖어있는 한국인에게는 그저 생뚱맞고 별종(別種)스럽게 비춰진 작품이었다.
다양성과 실험 그리고 새로운 시도, 소품과 보조도구의 이용, 영상의 활용, 현대무용은 기존의 틀을 깨는 ‘파격’이라는 단어를 앞세우지만 ‘무용’의 본질이 관객에게 전달 될 수 있어야 좋은 작품이다. 안무가나 연출자가 스스로 훌륭하다 하며, 관객에게 이해를 강요하는 작품을 좋다 말 할 수 없다, 관객이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전달 받을 수 있어야 생명력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극장, 관람료, 안무가의 이름을 보고 박수를 치는 관객에 취한 작품이 아닌, 막이 내리면 가슴 가득히 희열이 넘쳐나는 정말 행복한 작품에 박수를 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