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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문화유산 시리즈

진행 : 길현주 / 연출 : 김정은
월~금 | 10:55, 19:55(재)

2020-06-12(금)남도문화유산 375회(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6호 순천 팔마비 (順天八馬碑))
  • 작성자남도문화
  • 조회수417
  • 작성일2020.05.21

남도 문화유산을 찾아서

 


2020-06-12 (금) 10:55 / 19:55(재)

 

이 시간 함께 할 문화유산은 전라남도 순천에 있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6호
순천 팔마비 (順天八馬碑)입니다.

 

전라남도 순천시 영동의 도로변에는 고려 말의 청백리였던 최석(崔碩)의 덕을 기리는 유명한 송덕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바로 ‘팔마비’인데요, 이 비석 앞면에는 여덟마리의 말을 뜻하는 팔마비八馬碑 라는 글자가 양각되어 있구요, 비의 뒷면에는 이 팔마비의 건립내역을 적은 내용이 음각되어 있습니다. 건립내역은 마모되어 내용 판독이 힘들지만 고려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이 비석에 얽힌 훈훈한 미담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최석은 고려 충렬왕 때 승평부사를 지냈습니다. 승평은 순천의 옛 명칭인데요, 당시 승평에서는 부사가 그곳에 있다가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으면 말 8필을 바치는 관례가 있었습니다. 최석이 승평부사를 지내고 비서랑으로 전직하자 이번에도 고을 사람들은 최석에게 말을 바치려고 맘에 드는 것을 고르시라고 청합니다. 하지만 최석은 이같은 관례를 폐습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개성까지 가기만 하면 되니, 굳이 말을 고를 필요가 없다”고 말하며 거절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을 사람들은 상경하는 최석에게 억지로 말 8필을 딸려보냈습니다. 하지만 최석은 개성에 도착한 후 이 말들을 다시 승평으로 돌려보냅니다. 상경하던 중 한 마리가 새끼를 낳았기 때문에, 돌려보낼 때는 8마리가 아니라 그 망아지까지 포함해서 9필을 돌려주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 뒤부터는 승평에서 부사가 오고갈 때 이렇게 말을 바치는 폐단이 없어졌습니다. 이에 고을 사람들이 그 덕을 칭송하며 비석을 세우고 팔마비라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이 비석의 크기는 높이 160cm, 너비 78cm이며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고려 충렬왕 때인 1308년에 처음 세워졌던 팔마비는 이후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크게 훼손되었는데요, 광해군9년인 1617년에 승주부사 이수광이 아래쪽 대석은 원래 것을 그대로 쓰고 그 위에 비석을 새로 올려서 복원했습니다. 이 비는 지방관의 선정과 청렴을 기리는 청덕비의 효시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남도 문화유산을 찾아서...
이 시간 함께 한 문화유산은 전라남도 순천에 있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6호
순천 팔마비 (順天八馬碑)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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