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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문화유산 시리즈

진행 : 길현주 / 연출 : 김정은
월~금 | 10:55, 19:55(재)

2020-06-29(월)남도문화유산 386회(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37호 목포진지 (木浦鎭址))
  • 작성자남도문화
  • 조회수374
  • 작성일2020.06.11

남도 문화유산을 찾아서 

2020-06-29 () 10:55, 19:55

 

 

 

이 시간 함께 할 문화유산은 전라남도 목포에 있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37

목포진지 (木浦鎭址)입니다.

 

목포지역은 예부터 내륙과 해상을 연결하는 군사상의 요충지였습니다. 목포진은 조선시대 수군의 진영으로 목포영 혹은 목포대라고도 합니다. 왜구들이 많이 침입하는 지역의 수군진에는 만호라는 종4품의 무관이 부임했었는데요, 이곳 목포진에도 만호가 배치되었기 때문에 이곳은 만호영, 만호진, 만호청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곳 목포진은 조선 전기에 만들어졌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세종 15년인 1433년에 목포병선을 황원, 그러니까 현재의 해남으로 옮겼다고 하구요, 세종 21년이던 1439년에는 지금 자리에 목포 만호진을 설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원래 목포에 있던 전라수영을 해남으로 옮기면서 목포에 별도의 수군진을 다시 둔 셈입니다. 이후에도 400년이 넘도록 왜적을 물리치는 군사요충지로 잘 활용되던 이 목포진은 고종 21년인 1895, 목포 개항과 함께 폐진되었습니다.

 

목포진이 이렇게 폐진된 직후만 해도 청사의 일부는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에 무안감리서, 일본영사관, 해관 등 여러 용도로 임시 사용되었습니다. 나중에 진지 주변은 영국영사관 기지로 편입되었고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결국 민간으로 귀속되면서 청사도 허물어집니다. 원래 위치는 대략 현재의 목포시 만호동 일대일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이 만호동이라는 이름 자체가 목포 만호진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일대 민가의 담장이나 축대 등을 보면 당시의 성돌로 쌓아올린 것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 현재 목포 만호진의 성이나 청사 또 기타 유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만호동의 한 공터에는 목포진 유적비라는 석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목포진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 후 배를 정비하고 군량미를 확보하기 위해 약 100일 가량 머물렀던 곳이기도 한데요, 이렇게 이 목포진지는 조선시대 초기부터 근대까지 목포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남도 문화유산을 찾아서...

이 시간 함께 한 문화유산은 전라남도 목포에 있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37

목포진지 (木浦鎭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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