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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문화유산 시리즈

진행 : 길현주 / 연출 : 김정은
월~금 | 10:55, 19:55(재)

2020-07-15(수)남도문화유산 398회(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0호 취가정 (醉歌亭))
  • 작성자남도문화
  • 조회수330
  • 작성일2020.06.18

남도 문화유산을 찾아서 

2020-07-15 () 10:55, 19:55

 

 

 

이 시간 함께 할 문화유산은 광주광역시에 있는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0

취가정 (醉歌亭)입니다.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광주호 옆 증암천 줄기를 따라 가다보면 환벽당의 남쪽 언덕 위에 세워진 취가정이라는 정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은 충장로라는 광주의 거리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는 임진왜란 때의 유명한 의병장, 충장공 김덕령 장군이 나고 자란 장소입니다. 그 혼을 위로하고 충정을 기리기 위해서 고종 때이던 1890년 후손들이 세운 정자가 바로 취가정인데요, 현재의 건물은 6.25 전쟁 때 불탔던 것을 1955년에 재건한 것입니다.

 

1567년 광주에서 출생한 김덕령 장군은 스물여섯되던 해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과 함께 의병을 일으킵니다. 고경명, 곽재우 등과 함께 의병장으로 대활약하며 전장에서 왜적을 크게 물리치는 공을 세우고 그 지략과 용맹이 알려져 선조로부터 초승장군 등의 군호를 하사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몽학의 반란이 일어나자 그와 내통했다는 무고로 혹독한 고문을 받고 옥사합니다. 그 억울함은 160여년이 흐른 뒤 현종 때가 되어서야 밝혀졌고 벼슬이 추증되면서 충장공의 시호가 내려졌습니다.

 

이 정자의 이름 취가정은 김덕령 장군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문인이었던 권필의 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어느 날 권필의 꿈에 김덕령이 술 취한 모습으로 나타나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를 읊었는데, 권필은 이에 화답하는 시를 지어 그의 원혼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취가정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습니다. 권필은 나중에 꿈 속의 시들을 옮겨적었구요, 그렇게 기록된 취시가와 권필의 화답시 등이 이 정자에 걸려있습니다.

 

이 정자는 정면 3,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으로 중앙의 방 한 칸을 제외한 좌우 양 칸은 모두 마루로 꾸며져 있습니다. 부근의 다른 정자들이 대부분 하천 쪽을 향하고 있는데 반해 이 정자는 널리 펼쳐진 논밭을 바라보고 있는데요, 10여개의 오래된 소나무들과 화초들이 주변에 가득해서 운치를 더합니다. 이곳 취가정은 역사 속 김덕령 장군의 자취와 함께 후손들의 추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남도 문화유산을 찾아서...

이 시간 함께 한 문화유산은 광주광역시에 있는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0

취가정 (醉歌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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