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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문화유산 시리즈

진행 : 길현주 / 연출 : 김정은
월~금 | 10:55, 19:55(재)

2020-09-18(금)남도문화유산 459회(사적 제272호 남원 만인의총 (南原 萬人義塚))
  • 작성자남도문화
  • 조회수253
  • 작성일2020.09.09

남도 문화유산을 찾아서 

 

2020-09-18 () 10:55 / 19:55()

 

 

 

이 시간 함께 할 문화유산은 전라북도 남원에 있는 사적 제272

남원 만인의총 (南原 萬人義塚)입니다.

 

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는 만인의총이라는 큰 무덤과 여기 묻힌 넋들을 기리는 사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대군을 투입해 남원성을 공격했던 왜적에 맞서 남원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사람들을 함께 묻은 무덤입니다. , , 관 구분없이 수많은 시신이 합장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임진왜란 때 결국 패하고 물러갔던 왜군은 전쟁에서 진 것이 전라도지방을 차지하지 못해서였다고 원인분석을 하게 됩니다. 전라도를 먼저 정복해야 전장에서 안정되게 군량을 조달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는데요, 그래서 정유재란 때는 이곳을 먼저 점령한 뒤 북상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에 따라 선조 30년인 15977월말 왜군은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황석산성과 남원을 공격합니다. 남원은 지역적으로 전라도와 충청도를 연결하는 요충지로 국가에서도 이곳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명나라와 연합하여 방비 태세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곳에는 전라병사 이복남, 광양현감 이원춘, 조방장 김경로, 명나라 부총병 양원 등이 있었고, 이들의 지휘체계 아래 우리나라 병사 1천명, 명군 3천명 등 4천명의 병사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56천명이라는 병력을 집중시켰던 왜군과의 싸움에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814일과 15일 이틀 간 군··민이 합심하여 싸웠지만 셋째날이던 16, 남원성은 마침내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이 싸움에서 수많은 관리들, 장수들, 병사들, 명나라 원군들, 그리고 백성들 등 무려 120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전해집니다.

 

난이 끝난 후 남은 이들은 전사한 사람들의 시신을 한곳에 묻었습니다. 광해군 4년이던 1612년에는 이곳에 충렬사를 세워 충신들을 모셨습니다. 원래 이 무덤은 남원역 부근에 있었지만 주변이 민가로 둘러싸이게 되자 1964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습니다. 이곳 남원 만인의총은 나라와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몸바쳤던 수많은 분들의 희생을 숙연하게 되돌아보게 되는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남도 문화유산을 찾아서...

이 시간 함께 한 문화유산은 전라북도 남원에 있는 사적 제272

남원 만인의총 (南原 萬人義塚)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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