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이 춤꾼을 얼마나 알까? 우리나라 무대 공연계에서는 이 사람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까? 고성 오광대 초대 무형문화재 보유자였던 외증조부의 대를 이어 4세에 춤에 입문하여 故김창후, 故조용배, 故황무봉, 故김수악, 김진홍, 박성희, 강옥남, 김진홍 선생들에게 우리 춤을 사사받아 회갑을 넘기는 동안 영남교방청 춤의 맥을 있기 위해 묵묵히 오직 한 길을 걸어온 1961년생 춤꾼 ‘박경랑’
박경랑의 춤을 보고 있으면 형식과 격식의 틀 속 조화로 갖추어진 춤의 질서가 물 흐르듯 자유롭게 춤추고 우리 춤의 생명인 선의 율동이 바람결 따라 노니는 것 같아 그저 편안하고 아름다우며, 감동의 벅참이 온 가슴을 가득 채운다. 이 땅에 많은 춤꾼이 있지만 과하다 할 만큼 이런 찬사를 받을 수 있는 춤꾼은 얼마 되지 않는다.
2022년 3월 2일 19시 부산 예술회관 공연장 박경랑의 교방풍류놀음 “범 나비 놀다”를 보고자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간 필자는 코로나 펜데믹의 답답함을 훌훌 털어내고, 넘치는 희열을 주체 할 수 없는 행복에 빠졌다. 역시 ‘박경랑’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자랑한다.
창밖에 국화를 심고 국화 밑에 술을 빚어 놓으니 ‘김신영’의 흥타령 소리에 이진우의 거문고 울음이 깔린 무대 위를 하얀 버선발이 나비가 날개 짓 하듯 사뿐사뿐 내 딛는다. 수건 없이 추는 민살풀이 어깨 넘실거림 따라 숨죽이는 가슴 뜀질처럼, 한 호흡 한 호흡 넘어가는 감동의 물결은 초점 잃어가는 눈망울보다 더 밀착하여 허공을 감질나게 뒤흔드는 팔의 노님에 빠져든다. 겉치마를 걷어 올려 하얀 속치마를 고귀한 선비의 눈앞에 펼쳐 보이자, 선비의 손에 들린 붓은 한 폭의 자연을 그리고 한 줄 시구를 흘리니 풍류의 멋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자유로움 속에 우아함이 담겨 있는 박경랑의 영남교방춤의 자태는 황홀함의 만발이었다.
머리 위 둥근 접시에 놓인 하얀 잔 안의 맑은 술은 거문고 음율을 따라 주인을 찾아 내딛는 디딤 발이 고마운 지 넘치지 않고 살랑거린다. 빙글빙글 돌며 뿜어내는 자태의 화려함은 범이 힘찬 도약을 위해 뛰어오를 때 보여주는 갈기의 용솟음 같은 아름다움으로 넘쳤다. 두 팔 뻗어 어깨를 움찔거리며 그려내는 청조한 손끝 감질은 머리 위 술잔을 받고 싶은 마음을 잡아끌며 가슴을 녹였다. 한발 두발 계단을 밟고 내려와 관중석 어느 분에게 드린 그 한 잔 술의 깊은 의미가 소반 춤의 멋을 일깨우며 온 가슴을 꽉 채웠다. 춤꾼이 나비처럼 날며 임을 향해 꽃 봉우리를 터뜨리는 소반 춤의 절묘한 이치를 그 누가 있어 이리도 화사하게 표현 할 수 있을까? 그냥 춤에 취했다.
헝클어진 머리에 지저분한 얼굴 꾀죄죄한 모습으로 한 아름 볏짚을 보듬고 나와 그 위를 나뒹굴며 몸부림치는 몸짓은 몸으로 표현하는 절규였다. 불편한 한 손에 소고를 힘겹게 감아쥐고 소고춤의 다양한 춤사위를 아름답게 표현해내는 연륜과 내공이 쌓인 동작 하나 하나가 소고춤의 또 다른 장르를 보여주는 것 같아 신선했고 색다름이었다. 이 문동북춤은 고성오광대 놀이의 한 과장으로 박경랑이 고성 오광대 초대 무형문화재 보유자였던 외증조부님을 기리는 마음과 시대의 흐름 속에 변하는 사회 환경에서 사라져가는 전통의 맥을 보존하기 위한 큰 뜻을 담아낸 것 같다. 하지만 분장하지 않고 소품 없이 그냥 박경랑류 소고춤으로 보여주었더라면 더 큰 감동과 아름다움이 넘쳐나지 않았을까? 아쉬움도 남았다.
여기에 한국 서도소리보존회 이사장 박정욱 명창의 구수한 입담의 사회와 서도소리의 맛깔이 더해지고, 특별 출연으로 부산시무형문화재 제3호 동래학춤 예능보유자 이성훈이 하얀 도포 자락을 날개짓하며 무대에 올라 동래 학춤 즉흥춤(덧배기 춤)으로 관객의 눈을 매료시키며, 동래학춤 구음소리 이수자 김신영과 영남소리꾼들의 지나칭칭나네가 무대의 열기를 한층 북돋았다.
박경랑이 오랜 세월 꾸준하게 서울과 부산을 한 주를 반으로 나눠 오가며 박경랑류 영남교방청춤을 전국 규모로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중 2019년 이후 코로나 펜데믹으로 부산에서 무대에 설 기회가 없었는데, “범 나비 놀다”는 영남교방청춤의 정수를 코로나 펜데믹으로 지친 부산 시민들에게 박경랑이 전해준 위로의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