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지 10주년 공연 <傳하여 通하다>은 계통을 이루며 전해 내려오는 양식이나 정신인 전통(傳統)을 넘어, 전해 내려오는 우리 우리음악에 뿌리를 두고 누구에게나 흐르는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뜻을 담아 전통(傳通)이다.
바라지는 온갖 것을 대어주거나 일을 돌보아 준다는 ‘바라지하다’ 뜻의 순 우리말로, 국악에서 판을 이끌어가는 주된 소리에 더해주는 반주자들의 즉흥소리를 의미한다. 이 바라지의 의미를 넘어 반주자들이 무대의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등장하여 우리 전통음악의 맛과 멋을 21세기에 맞게 계승·발전·보급하며 우리 모두에게 두루 통하게 하는 국악 모둠이다.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교수이며 남도소리 명창인 한승석 예술감독의 지도를 받는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선·후배 강민수·조성재·정광윤·이준영·최광일·최은혜 6명의 남녀 혼성 국악반주자와 여성 남도 소리꾼 김율희로 구성된 국악의 미래를 짊어질 바라지 10년 이력의 3,40대 젊은 국악인들이다. 또한 바라지의 무대는 쇠, 북, 장구, 징, 바라, 대금, 피리, 가야금, 아쟁, 정주 등 오직 국악기만 날고 춤추며 울고 농현(弄絃)한다.
국립극장 하늘극장 동쪽 문을 통하여 강민수의 쇠가락을 앞세운 출연자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등장하며 맨 마지막에 특별출연한 송가인이 뒤를 이었다. 우렁차게 허공을 수놓는 태평소 소리와 어우러진 풍요로운 사물타악 소리가 원형극장을 휘감아 돌고, 관객의 마음 속 깊이 파고들며 만복을 빌어주는 아니리와 떼 이 공연장 전체를 뜨겁게 달구어버린 풍어의 기쁨을 음률로 표현한 거문도 뱃노래 “만선”이었다.
출연자들이 동해안별신굿 장단 기악연주에 떼창으로 발원축원을 비는 <별신축원>은 감동과 희열의 정점 그 자체였다. 징을 두들기며 울려 퍼지는 한승석의 비나리가 고요한 장중함으로 관객의 호흡을 가다듬게 하자, 달거리로 정월에서 십이월까지 소망 내용을 서술하며 빌어주어 만복을 받기위해 따라가며 소원하는 기쁨을 누리게 한 김율희였다. 바라 등 쪽에 하얀 천 줄을 달아 양손에 감아쥐고 돌리다 마주쳐 울게 하고 돌리다 멈춰서는 강민수의 바라춤의 아름다움은 눈을 현혹시켰다. 지전을 양손에 들고 흔들며 춤추면서 축원 사설을 노래한 김율희는 신이 입신하여 관객의 혼을 빨아들이는 것 같이 의지를 잃은 몽롱함으로 이끌었다.
“생생함 넘치는 네 고수(鼓手)의 북 가락”이란 뜻의 <생사고락生四鼓樂> 농악놀이, 사물놀이, 판소리, 어디에서든지 단조롭고 단순하게 느껴지며 소리의 변화를 크게 느낄 수 없었던 단순한 북소리는 공연예술의 한 자리를 꽉 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한 편견을 깨뜨려 버렸다. 흥부가 중 <제비노정기> 대목을 앉은 반 자세로 강민수·조성재·정광윤·이준영 고수가 현대적 감흥으로 소리하며 빠른 손놀림에 가락이 춤추는 북이 아닌 장구 놀이였다. 네 고수가 보여주는 일체성과 하나의 북소리는 감탄과 환호를 쏟아내게 했고, 현란하며 다양한 북 놀음의 폭발은 국악의 매력과 무한한 가치를 실증해 보였다. 전통 판소리에서는 조금 벗어나 흥이 담긴 노래 소리와 소리 따라 춤추는 고수들의 율동이 함께 한 신명(神明)이었고, 북이 그냥 두들기는 악기가 아니라, 생활 속 흥을 만들어주는 즐거움의 도구라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바라지의 음반 1집 수록곡 씻김시나위에 2집 수록곡 진혼을 더해 현대인에 맞게 사설을 고치고 씻김굿 어법으로 새롭게 짠 <씻김>, 어둠과 적막 속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야금의 맑은 소리가 정적을 깨뜨리자 따라 우는 대금소리에 이어 가슴을 저미는 애잔한 아쟁소리가 신이 오신 것을 알리는 듯하더니, 징~ 징~ 울며 한의 무게를 얹는 징소리는 “여기가 굿청이요~” 말하는 것 같았다. 둥~ 둥~ 북소리 같이 궁편을 두들기는 장구 소리 따라 신의 영접을 확인하는 듯, 한이 서린 구음의 오묘함이 긴장을 끌어냈고 ‘아아하~ 에헤요~ 아하하~ 에헤요~ 천근이야~ 천근이야~’ 무대를 덮어버리는 주술 노래 가락은 마냥 슬퍼하지만 말고, 망자가 가는 길, 편안하고 복 받는 길이 되라고 망자의 혼을 위로하며 천도했다. ‘신이구나 신이야’ 소리에 빠져 몽한 속으로 빨려가는 순간순간을 잡아 주는 피리소리에 어우러진 화려한 진도 씻김굿 음악이 하나로 펼쳐졌다. 무악(巫樂)은 그 경지가 너무 높아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닌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신들린 듯 무악에 푹 빠져있는 바라지가 마냥 고마웠고 씻김 속으로 빨려들었다.
어릴 적 잠을 자다 이른 새벽녘 소변 마려워 눈을 뜨고 앞마당으로 나서면, 마당 한 모퉁이 우물가에서 정한수 떠놓고 두 손 비비며 ‘그저 복 많이 주십시오.’ 빌고 계시던 할머니의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 <비손>, 무교의 기원(祈願) 형태 하나가 무대 예술의 하나로 훌륭하게 자리 잡을 수 있다니, ‘감탄과 경이(驚異)’ 그 자체이다. 무대 가운데에 자리 잡고 앉자 징을 두들기며 신 내림 받은 무녀가 읊조리는 주술 소리 같은 김율희의 청아한 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지며 비는 자태와 뿜어져 나오는 신기(神氣)가 관객을 몰입으로 이끌었다. 20인으로 구성된 국악 관현악단과 6인의 국악 합창단의 장중한 받침소리는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비손의 예술성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하였다. 바라지의 무대는 혼자가 아니기에 함께 반주하며 뒷소리하는 바라지만의 독특한 공연 형태는 비손에서 한 손에 받쳐 들고 바같면을 채로 빙빙 돌리며 내는 정주의 맑고 은은한 소리처럼 일체된 은은한 맛이 더해져 비손의 몽한감에 더욱 더 빨려들게 한다.
무속가락으로 불고 친다는 뜻으로 무대 위에서 불고치고 한판 놀아난 희로애락의 모음 <무취타巫吹打>, 진도와 경기도 지방의 무속 가락 속에 담긴 신을 부르고 칭송하여, 인간과 교접을 통해 인간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혼(魂)을 들었다 놓는 크고 빠른 음악에 폭풍이 몰아치는 것 같은 뜨거운 열기는 어깨를 들썩이게 하였고 소리의 늪에 빠져 정신을 놓고 허우적거리게 했다. 가만히 있어도 일어나는 흥이 이런 것이며 저절로 따라 부르는 노래의 즐거움이 넘쳐났고 함께 춤추는 관현악단의 연주까지 더해져 관객의 참여와 호응도가 최고였고 색다른 즐거움이 전달된 행복이었다.
한승석이 노랫말과 곡을 만든, 인연을 맺고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서로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 오고 또 되어 가길 바라는 의미의 <되야오소> 기악 연주에 판소리의 아니리와 발림을 실어 출연자 모두가 하나 되어 무대를 채우는 바라지가 소리를 우선으로 ‘되야오소’를 반복하며 노랫말 속에 담긴 삶의 의미를 마음 속에 담아 주고자 하는 떼창이라 표현하는 것이 올바른 것 같다. 무대 중앙에 소리꾼인 한승석과 김율희가 좌장하여 시 한 소절 한 소절씩 번갈아 낭독하듯이 소리를 이어가며 이끌고 후렴에 힘을 실어 노래하는 바라지의 10년 세월의 꽃봉오리가 아름답게 터져 나왔다. 잔잔하면서도 중후한 관현악 반주는 대서사시를 낭독 하듯 잠깐 숨 죽였다 이어가는 긴 사설의 노래 빈틈을 메워주는 훌륭한 동반자였다.
약 120분간의 바라지 10주년 ‘傳하여 通하다’는 막을 내렸고 관객의 앙코르를 <바라지 축원> 중 중중머리 ‘업이야 청청 업이로구나’와 진도 아리랑을 관객과 함께 부르며 신명의 여운을 남겨주었다. 오직 바라지만이 보여준 별신축원·생사고락·씻김, 1부와 국악관현악단과 함께한 2부 비손·무취타·되야오소 사이의 막간시간에 특별출연한 송가인이 본인의 노래 ‘엄마아리랑’과 ‘고문고야’로 바라지 10주년 공연‘ 傳하여 通하다’를 축하하며 관객들에게 행복을 선물했다. 송가인은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출신으로 한승석의 제자이며 바라지 아쟁 연주자 조성재의 동생으로 바라지 10년 세월 후원자이다.
무대 위에 올라오는 국악공연에 악기 두 개면 하나는 서양 악기인 요즘 현실에서, 오직 우리 악기로 우리 소리, 우리 춤을 시대 흐름에 따라 아름답게 표현하며, 국악의 옳은 미래의 길을 보여주고, 즐거운 희망을 선물하는 바라지에 더 없는 고마움을 전한다. 독립 악기인 고문고와 가야금 병창을 빼면 떼를 이루어 기악 연주를 하며 소리를 하고 아니리와 발림을 더해 무대에 올라 관객에게 우리 전통 악·가·무의 멋과 맛을 전달하는 모둠은 바라지뿐이라 생각한다. 바라지가 더 없는 최고, 최상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바라지에게 남은 건 무한함뿐이라 모두가 기쁨이다, 말하고 싶다. 이런 바라지를 바라보며 더 없는 행복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