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 열 손가락 사이에 6개의 북채를 끼우고 북을 두들기던 타악의 명인이자, 1990년 쌀 한톨에 “반야심경 283자”를 새긴 세서미각(細書微刻)으로 기네스북에 이름이 오른 흑우 김대환은 2004년 3월 1일 세상을 떠났다.
한국 프리 째즈의 최고봉으로, 음악의 형식과 틀을 깨 ‘김대환 타법’이라는 새로운 음악 어법을 창조해낸 ‘Free music’의 선구자이며 독보적 타악(퍼커션) 주자였다. 가왕‘조용필’이 어린 시절 군밤 맞아가며 음악을 배웠고, 한국 록(ROCK)의 대부 ‘신중현’이 ‘한국 그룹사운드의 맏형’이라 부르는 사람이다.
매년 3월 1일이 오면 국악가요 국민가수 <장사익>이 기획하고 중심이 되어 직접 무대에 오르고 김대환을 존경하며 가슴에 품고 사는 한·일(韓日) 최고 예술인들이 헌정하는 공연이 벌써 19회이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2021년과 2022년을 건너뛰고 3년 만에 한국문화재재단 한국문화의집(KOUS) 극장에서 열렸다.
한국 프리뮤직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최고의 트럼팻 연주자 <최선배>, 김덕수와 함께 ‘사물놀이’ 창시자인 꽹과리 명인 <이광수>와 사물광대, 어쿼스틱 기타 최고 연주자들국화 객원 단원 <김광석>, 해금 명인 단국대 국악과 교수 <강은일>, 거문고 달인 서울대 국악과 교수 <허윤정>, 일본 노가쿠(가면음악극) 오쿠라(大倉)류 북 반주자 <오쿠라쇼노스케>, 일본 전통 악기 횡적(橫笛) 가구라부에(神樂笛)와 돌 피리 이와부에(いわぶえ)연주자 <요코자와 가즈야>, 일본 춤 부토(舞踏)의 명인 <카가야 사나에>,
특별 출연한 윤정희·남정임과 함께 대한민국의 여배우 1세대 트로이카로 불린 <문희>, 이들을 지근거리에서 한자리에서 만나 행복을 누리는 공연에 동참자였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이다.
개막전 영상으로 보여준 김대환의 생전 모습이 끝이 나자, 어둠이 깔린 무대 위로 ‘한국문화의 집‘ 예술 감독과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을 역임했고 국악 명인•명무의 삶을 표현한 책 ‘노름마치’의 저자인 사회자 <진옥섭>이 스포트라이트 불빛을 따라 등장하여 늘 그렇듯 국악계 최고의 입담으로 1, 2층 약 230여석 관람석을 꽉 채워 자리 잡은 관객들을 무대에 집중하며 기대치를 잔뜩 부풀게 만들었다.
둥둥 북소리와 함께 문 굿을 시작으로 객석을 지나 무대에 오른 <이광수>가 ‘유인상’ 등 민족음악원 사물광대와 함께 비나리로 고인의 명복과 관객의 만복을 빌며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이광수의 상쇠소리 따라 춤추는 사물광대의 화려한 앉은 반 사물놀이 가락의 아름다움은 황홀했다. 땅땅 때리는 쇠 소리는 맑고 깨끗하게, 퍼짐 없이 통통 튀며 예리하게 가슴을 파고들었고, 청아하게 궁 편과 채 편에 달라붙으며 끊어서 단음을 내는 장구 소리는 뛰는 가슴을 블랙홀 속으로 빨아들였다. 둥둥거리는 북의 울림은 낙뢰와 함께 쏟아지는 천둥이었으며, 댕댕하고 잔잔하게 퍼지는 징 소리의 잔잔함은 뜨거운 열기를 쏟아내는 쇠•장구•북의 열정을 부드럽게 포용하며 조화의 오묘함을 그려냈다. 오로지 소리로만 보여준 대가들의 진수, 관객의 숨소리마저 멈추게 한 최고의 사물놀이였다.
관객들에게 ‘전자 거문고’라는 뜻밖의 놀라움을 선물한 <허윤정>, 여섯 줄 거문고 농현의 아름다움을 기계음에 실어 증폭의 웅장함을 더했다. 현을 휘젓는 술대의 미세 음이 소리의 울림 속으로 파고들었으며 손으로 두들기는 현의 파고(波高)소리는 날카로운 전자음에 평온함을 얹었다. 거문고 소리의 아름다움에 기교의 화려함을 더해 현대적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생동감이 색다름의 묘미를 선물했다.
비파와 기타의 특징을 연결하여 자신이 만든 ‘비타’로, 화려하면서도 현란한 손놀림 으로 들려주는 감미로운 소리는 <김광석>의 기타에 ‘사람들이 왜 감탄하며 감동하는지’를 체험하게 하는 희열이었다. 적막을 뚫고 들려오는, 부드러우면서도 감미로운 울림은 심연 속으로 영혼을 불러들이는 마력(魔力)의 향연(饗筵)이었다.
무대 위 커다란 전면 화면을 둘로 쪼개 대비되며 펼쳐지는 영상 속 ‘김대환’의 애마 할리데이비슨의 부릉거리는 엔진 소리와 생전 김대환이 두들기는 드럼 연주를 반주 삼아 두 줄을 활대로 비벼 관객의 마음을 음률의 파도 위에서 넘실넘실 춤추게 만든 <강은일>의 오묘한 해금소리는 봄날의 따뜻함처럼 포근했다.
강한 쇠 소리에 가까운 한 음의 높고 굵은 소리가 끊어지고 이어지는 돌 피리 이와부에(いわぶえ) 소리에 맞춰 퍼지는 독특한 구음소리와 우리 중금(中笒) 소리가 우는 것 같은 일본 전통 피리 가구라부에(神樂笛) 연주가 어우러진 특별함은 일본 전통 예술을 지켜내는 예인 <요코자와 가즈야>의 멋이 담겨 있었다.
왼팔로 감아쥐고 오른 손바닥과 손가락으로 극히 단순하게 두들기며 간간히 “고호, 이야!” 주문 같은 소리를 내지를 때마다 귀곡성(鬼哭聲)이 귀속을 파고들며 오싹함의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흐르며 공포감마저 불러온 <오쿠라쇼노스케>의 아주 작은 일본 전통 장고 ‘쓰즈미’ 연주는 일본 본연의 향(香)내음과 색깔을 강하게 전달하였다.
<카가야 사나에>의 부토(舞踏)는 1959년 히쓰카타 다쓰마가 일본 전통 예술인 노(能)와 가부키(歌舞伎)를 서양의 현대 무용과 접목하여 탄생시킨 아방가르드 무용으로 ‘암흑의 춤’, ‘죽음의 춤’으로 불린다. 허공에 떠다니는 헛것(귀신)을 잡으려 원초적 본능의 몸짓으로 허공을 휘저으며 초점 없는 눈빛으로 무대와 객석을 떠돌며 허실한 웃음마저 자아냈다. 죽음이란 주제로 아름다운 것만이 미(美)가 아니라는 확장된 무용 의식의 표현으로 신선함과 특별함이 또 하나의 일본 문화를 깨우치게 했다.
특별 출연한 <문희>의 시조 ‘청산리벽계수야’ 열창은 가창자로의 능력과 재주는 미진하여도,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대 배우가 수 십 년 동안 세속에 묻혀 세월을 보냈지만 곱고 아름다우며 우아한 모습으로 뜻이 있는 무대에 올라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관객은 황홀함에 취했다.
막간을 이용해 흘러나온 트롯 한 곡, 언젠가 들었던 노래 같았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가사는 떠오르지 않았고 입으로 흥얼거리다 끝나버렸다. 오늘 공연과는 생뚱한 트롯가요로 흥을 유발하려 했다. 1970년 여러 가수들의 곡이 담긴 LP판 B면에 담긴 ‘장사익’의 유일한 대중가요 “대답이 없네”이었다. 이후 가수의 꿈을 접었다, 1995년 우리나이 마흔 여섯에 데뷔하여 국민가수로 칭송받고 있다,
30대 때 오른손을 다쳐 왼손으로 연주하는 80대 노장 <최현배>의 트럼펫 소리는 귀에 익숙한 힘찬 내디딤과 막연히 타오르는 희망이 담긴 기상 나팔소리가 아니었다. 트럼펫을 처음 배울 때 나오는 ‘쉬쉬“ 소리만 이어지며 탁함의 연속으로 숨과 호흡의 거침이 느껴지는 최고 난이도의 연주였다. 떠나가신 임에 대한 애환과 그리움이 담겨 마냥 아름다웠다. 악보도 없고 정해진 선율은 없어도 경이로웠고 숙연함이 개석을 뒤덮었다. 무대를 끝냈나 했는데 꺼내든 한 손에 쏙 들어가는 작은 하모니카가 뿜어내는 환상의 소리는 열정적이고 감각적이며 감칠 맛의 아름다운 환희였다.
<장사익>은 오늘 이 공연을 빛내기 위해 특별 출연한 ‘문희’를 무대 한쪽 의자에 모시고, 1968년 문희 주연으로 서울국도극장 단관에서 개봉하여 당시 서울 인구 10%가 보았다는 한국영화사 최고의 흥행작 “미워도 다시 한 번” 영화 주제곡을 헌정했다. 너무나 긴 세월이 지나 모두를 기억할 수 없었던 가사를 손바닥에 적어 가끔씩 보고 불렀지만, 고마움과 존경의 혼이 담긴 노래는 관객의 마음을 감동으로 채워주었으며 장사익의 따뜻한 모습이 진하게 전달되었다.
김광석의 어쿼스틱 기타 반주에 온 열정을 담아 관객의 마음을 훔쳐버린 ‘빛과 그림자’와 ‘봄날은 간다’ <장사익>의 소리는 19회를 맞은 ‘김대환 추모 공연’의 힘과 사랑이 실려 있었고 약 3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한 관객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득 채워 주었다. 마지막으로 “정(正) 이월이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 오며는 이 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장사익의 ‘그리운 강남 아리랑’을 전 출연자와 관객이 하나 되어 열창하며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랬다.
공연후기라기보다는 장문의 공연 서사시를 기록했다. 뜻있는 공연이며 최고의 예술인들이 만들어낸 찬란한 보석 같은 위대한 공연을 함께 나누지 못한 그 누구라도 이 글을 읽고 기쁨을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한다.
몇십년동안 국악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시고 표현하시고
특 장애인 국악에 더 힘을 주시는 모습 닮아가고 싶습니다
늘 건강하시길